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큰 계명 , 큰 사랑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07-06-07 조회수535 추천수1 반대(0) 신고

 

가끔씩 뉴스에서 들려오는 소식들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지하철로 떨어진 사람을 구하고서는 그 자신은 피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물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사람을 건져내고서는 자기 자신은 목숨을 잃었다. 

우리는 흔히 이들을 '살신성인'이라고 말합니다.

 

세속에 사는 사람들은 시기와 질투와 의심이 강하여

남의 선행을 접하면 일단 자기 보호 본능부터 움직여져서

이를 두고 자기 자랑, 자기 영광이라며 깎아 내리기가 먼저 앞섭니다.

 

자신의 모습(거짓자아)이 드러나는 것이 내심 좋지 않아

비아냥거리고 조롱까지 하며 더 나아가서는 모독까지 합니다.

혹은 자신의 거짓자아를 근거로 이를 남을 향해 대비시키기도 합니다.

 

위선과 가식과 형식에 사로 잡혀 살았던 유대의 지도층들이

예수님의 행적에 대한 세속적인 판단과 기준이 그랬던 것입니다.

어둠이 빛으로 드러나자 피할 곳이 없어 모략하는데만 급급했습니다.

 

질문하면서, 시험하면서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옭아 맬까하고 전전긍긍했습니다.

자신들의 현실적인 이해타산이 깔려 있었지만 우선은 마음들이 완고했기 때문입니다.

 

문물이 번성하고 이교도들의 미신이 밑바닥으로부터 침투해 오고

인간의 지성을 일깨우는 세상철학이 풍요와 쾌락의 욕정들을 자극시켰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신앙은 오직 성전건물 속으로 들어가 안위를 얻고자만 하였습니다.

 

오늘의 세속도 그 시대의 세속적인 상황과는 변함이 없습니다. 

개인의 이기심이 근간을 이루고, 끝없는 욕망과 돈이 행복을 준다는 사고방식이 판을 칩니다.

교회의 성전에 들어가면 모두가 의인처럼 되었다가 다시 거기서 나오면 그 반대로 변합니다.

 

이중성의 생활이 당연시 습관화 되고 어쩌다 자신을 쳐다보면 이를 생각하기 조차 싫어집니다.

이중성을 없애 보려고 하나의 연결점을 찾아내기 위해 온갖 종교와 여러 철학들을 접목시키고자 합니다.

하지만 점점 더 단순성과 순수성 그리고 진실성은 가려지고 거짓 원리들만 생성되어 졌습니다.

 

머리의 '개념들'이 수없이 만들어 져서 기존의 것들과의 상충, 분열, 혼란을 가중시킵니다.

개인의 풍요와 개인의 테두리 안의 안락함이 마치 절대적인 가치인 것처럼 변질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랑과 신앙심이 조금이라도 드러나면 옛 사람들처럼 가만히 있지를 못합니다.

 

빛이 어둠 속에서 비추어 지면 그 빛을 가리려고 안달이 나는 것입니다.

세속 욕망에 의해 거짓된 자아의 어둠이 참된 자아를 억누르고 있었는데 뒤집어 지는 것입니다.

자신의 세상 사고방식, 자기의 신앙이라며 성전처럼 스스로 구축한 지혜에 반대가 나타난 것입니다.

 

빛이 비추어 지자 다시 어둠 속으로 들기 위해 자신의 이중성을 재점검하는 과정을 밟습니다.

이중성의 또다른 하나의 연결점을 찾아 보면서 자기 '신'을 자기 안에서 온갖 것으로 '공동화' 냅니다.

자기의 '신'을 섬기기 위해 빛으로 오시는 예수님과 닮은 형상들을 거짓과 형식으로 몰아버립니다.

 

살신성인에 대해서는 감동을 겉으로 표현하면서도 죽지 않은 사랑의 형상들은 모두 걷어 치워버립니다.

자신의 성전에다 자기가 온갖 세상의 것(개념들, 원리)들로 섞어 만든 자신의 '신'을 위해 적대시 합니다.

결국 이 시대에서도 온순한 어린 양의 그리스도 십자가는 옛 마음들에 의해 매일처럼 세워지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용서하고 섬기며 축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벗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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