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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미사의 소프트웨어 I[제 76회]/ 정훈 베르나르도 신부님.
작성자양춘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7-06-09 조회수698 추천수10 반대(0) 신고

 

미사의 소프트웨어 I[제 76회]/ 정훈 베르나르도 신부님.


▶ 하느님 아버지와 나의 관계 ◀

미사 중에 이런 작업을 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소프트웨어를 하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인격적이고 실천적인 관점에서 미사의 흐름에 합류하는 방법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지만, 하느님 아버지를 인격적으로 느끼면서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 일은 쉽지가 않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가 나에게 어떤 분인지 인식하고 있는 사람은 밤새 우린 사골 국물처럼 주님의 기도를 진하게 바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아버지가 나에게 어떤 분인지 정돈하지 않은 사람은 그냥 꽉 막힌 느낌 속에서 맹탕으로 이 부분을 건너뛰게 됩니다.

이런 일은 주님의 기도를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부르는 일에도 영향을 줍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하며 같은 말로 함께 기도하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아버지’에 대한 상각은 제 각각입니다.

하느님과 인격적인 체험이 없는 분은 그냥 밋밋하게 나와 상관없는 아버지로 지나치기도 하고, 심한 경우에는 인간적인 체험의 찌꺼기 때문에 불순한 경우까지 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로 육친의 아버지와 내 관계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철없는 아이일 때는 아버지라고 하면, 마냥 매달리고 세상에서 제일 힘세고 커다란 존재라고 믿습니다.

반대로 매일 술만 마시고 가족을 때리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갖고 계신 분은 영 다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잔뼈가 좀 굵어져 반항하는 나이가 되면, 아버지가 야단치거나 반대로 매달리며 애원해도“아버지나 잘 하세요!”하고 덤벼들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버지에 대한 우리 생각은 여러 체험의 찌꺼기로 얼룩져 있습니다.


힘이나 돈으로 제압당한 쓰라린 기억도 있고, 다른 문제로 서로 깊은 상처를 주고받은 경우도 있습니다.

한 마디로 아버지는 고마운 존재이면서 우습게 보이기도 하고, 운명적인 웃어른 이시면서도 무시 하고 싶은 존재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이러다가 철이 들게 되면, 아버지가 나에게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이제 아버지를 내가 보호하고 돌보아야 할 때가 된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가정을 들여다보면, 유교적인 가부장 질서, 자유방임적 태도, 힘의 논리, 금전만능적인 사고가 뒤섞여서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복음적인 이해 단계까지 발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불러야 하는 우리 생각도 뒤엉켜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여러 재앙을 통하여 벌하시는 무서운 이미지와 하느님 아버지를 핫바지 정도로 여기는 생각까지 다양합니다.

진심에서 나를 창조하신 분‘, 그리고 이제’내가 돌보아야 할 분‘을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 바로 우리의 문제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하고 제대로 부르지 못하니까, 주님의 기도가 처음부터 삐걱거리는 것입니다.

죄악과 얽힌 아픔과 상처가 남아있다면, 하느님 아버지가 나에게 진정한 아버지라고 느낄 수 없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올바른 관계도 맺지 못하면서 어떻게 약점 투성이인 육친의 아버지를 제대로 이해하겠습니까?

따라서 어릴 때 무조건 매달릴 수 있는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이나 엄하게 나를 교육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넘어 이제 아버지를 돌보아드리겠다는 철든 모습이 될 때,“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하는 기도의 의미가 살아납니다.


그런데 철이 든 상태로 이 부분을 기도 하지 못하니까, 내가 아버지의 이름에 먹칠이나 똥칠을 하는지, 아버지 혼자 거룩히 빛나든지 말든지, 별 상관이 없습니다.

사실 아버지의 나라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려면,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가 된 나도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고 살아야 하는 사명감을 느껴야 합니다. 철부지가 아니라면 이렇게 피와 살이 섞인 운명적인 일치감을 느끼면서 이 부분을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수직적으로 오르내리면서 통교하는 느낌이 있어야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기도 전반부에서 가져야하는 기본적인 소프트웨어의 모습입니다.

이런 흐름이 있어야 주님의 기도 후반부에서 수평적인 시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선“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하며 기도합니다.

여기서 일용할 양식은 ‘자장면’이나 ‘돈가스’가 아닙니다.

앞서 기도한‘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하고 아버지의 나라와 뜻을 땅에서’ 이루기 위해 나에게 영육 간에 힘을 주시도록 청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할 때에는 용서에 대한 쓸데없는 강박관념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이 부분만 되면 맨 날 미워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용서하지 못하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분들이 많으신데, 여기서는 용서하지 않는 인격은 죄악의 온상이 된다는 것이 더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그리고 용서는 죄악과 싸우기 위한 우리 신앙인의 강력한 무기라는 것을 떠올릴 수 있어야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부분에서 느껴야 하는 것은 엄하게 꾸짖으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라, 자식의 죄를 뒤집어쓰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맨 마지막에 어린아이가 아버지에게 매달리듯이, 하느님 아버지를 전적으로 신뢰하며“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어린아이를 자비로이 돌보시는 아버지 하느님, 또 사춘기처럼 방황이나 잘못된 길을 갈 때 엄하게 꾸짖어서 붙잡아 주시는 아버지 하느님, 그리고 철든 다음 오히려 내가 보살펴드려야 하는 아버지 하느님을 떠올리며 되새길 수도 있습니다......♣†


           [77회: 주님의기도 후로 이어 집니다.] 

     

          

  천주교 서울 대교구 중림동[약현]성당 주임 정훈 베르나르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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