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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70) 화장실 핑계 대고 / 장영일 신부님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7-06-11 조회수913 추천수9 반대(0) 신고

 

 

 

                   화장실 핑계 대고

 

 

                                                       글쓴이 : 대구 효목성당 장영일 신부님

 

 

1977년 11월 중순 어느 겨울날 입대를 했다.

의정부의 보충대에서 강원도 철원으로 배치받아 트럭 뒤에 실려갔다.

철원 훈련소는 첩첩산중 골짜기에 있었다.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 막연한 두려움에 떨고 있던 훈련병들은 트럭에서 내리기 무섭게 더불백을 입에 물고 달리다가 언 땅에 엎드렸다 일어섰다를 하며 그 두려움을 날렸다.

 

 

성당도 갈 수 없었던 4주간의 교육훈련 중에 몸이 아파 훈련소 의무병의 인솔하에 사단본부 의무대에 가게 되었다.

어둠이 깔릴 즈음, 돌아오는 길에 식당에서 밥을 먹고 가자는 의무병의 명령에 입대 후 처음으로 식당엘 갔다.

 

내가 가톨릭 신학생임을 알고 있던 그 의무병은 가까운 곳에 있는 성당을 가리키며 성당 앞에 헌병대 검문소가 있으니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들어갈 생각은 절대 말라고 미리 경고를 주었다.

 

밥을 먹다가 화장실에 가도 되냐고 물었다.

갔다 오라는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밖으로 나가 성당으로 냅다 달렸다.

헌병대 검문소가 성당 정문 조금 못 미쳐 있었고 거리는 온통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술렁거렸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고 태연히 걸어 검문소를 지나 성당에 들어서서 사제관을 찾았다.

 

벽안의 늙으신 신부님이 계셨다.

신학생 출신 훈련병 처지임을 말씀드렸다.

이등병 계급장,

꼬질꼬질한 복장,

글썽이는 눈매.....

한마디도 묻지 않고 성당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감실문을 열고 성체를 모셔다가 내 입에 넣어주셨다.

 

처음으로 미사없이 모신 성체의 체험이었다.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감사하다는 한마디만 남기고 식당으로 달렸다.

 

화장실에 간 이등병이 한참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자 걱정이 된 의무병은 급기야 밥을 먹다 말고 식당 문밖에 나와 있었다. 그 다음은 ..... .

 

 

그 후 최전방 철책선으로 자대배치를 받았다.

휴전선 너머 대형 스피커를 통해 장병 여러분을 환영한다는 북한군의 목소리를 들으며 졸병생활은 이어졌다.

1년간 아무런 신앙생활을 할 수 없었다

 

군복무 중 휴가를 받고도 신학교를 한번도 찾아가지 않았다.

학교에 가면 다시는 지긋지긋한 고생이 기다리고 있는 부대로 돌아가 생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33개월의 복무 후 복학한 내게 동급생이나 선배들은 하나같이 "너 신학교 그만둔 거 아니었냐?" 하고 물었다.

 

자신도 천주교 신자라던 서울말씨의 그 의무병은 지금쯤 성당에 잘 다니고 있을까?

눈물 젖은 성체를 모셨던 그때의 그 감격을 한번씩 떠올려본다.

 

모든 사람이, 심지어 유치부 아이들조차 주일학교에 안 나오는 이유를 물어보면 시간이 없어서, 바빠서라고 대답한다.

무엇때문에 바쁠까?

 

"나는 생명의 빵이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한다.

나는 무엇으로 살고 있을까?

 

 

 

                           <가톨릭 다이제스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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