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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미사의 소프트웨어 I[제 79회]/ 정훈 베르나르도 신부님.
작성자양춘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7-06-11 조회수612 추천수9 반대(0) 신고

 

미사의 소프트웨어 I[제 79회]/ 정훈 베르나르도 신부님.


▶ 평화에 대한 생각 바꾸기 ◀

그런데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평화는 너무 안일하거나 환상적인 면이 있습니다.

불의한 일을 보고도“에이, 그냥 좋게 넘어가지, 뭐.”,“모난 돌이 정말 맞는다.”하면서 무조건 무마하는 것을 평화라고 여기거나, 그냥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발에 흙 안 묻히고, 무위도식 하면서 속 썩는 일 하나 없는, 마냥 태평스러운 상태를 평화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세속 죄악이 왜곡한 평화입니다.


당시 제자들의 처지는 어떻게 보면 우리와 비슷합니다.

예수님을 믿지만 매 한 몸 지키기도 벅차고,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할 엄두도 못 내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평화를 위해 다락방에 숨었는데, 오히려 불안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평화를 받은 다음, 다락방에서 누리지 못한 평화를 거리로 뛰쳐나가 복음을 전하다가 죽어 가면서 누리게 됩니다.

이런 장면이 눈앞에 어른거려야 이 부분이 살아납니다.


사도들은 인간적으로 천수를 부리지 못하고 모두 비명횡사하였습니다.

그러나 살고자 하는 욕구를 극복한 거룩한 모습으로 죽어가면서도 그 모습이 평화로 가득 찼기 때문에, 점점 신자가 늘어나 현재 가톨릭교회에 이른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온갖 호강을 하며 장수한 사람들보다 사도들이 가치있게 살았다고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우리가 발견해야 하는 것은 그들이 사람의 삶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완전한 평화를 만끽했다는 점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하셨듯이, 이 순간 우리를 마주 보시고 평화를 주신다고 하십니다.

앞서 살펴본 대로 예수님께서 주시는 당신 평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러한 평화가 아닙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셔서 부활하신 평화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느껴야 하는 참된 평화는 하느님의 뜻이라면 섶을 지고 불 속이라도 뛰어들 때, 그 불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악 가득한 세상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평화를 누리며 사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평화는 구원을 깨달아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저희 죄를 헤아리지 마시고 교회의 믿음을 보시어, 주님의 뜻대로 교회를 평화롭게 하시고 하나 되게 하소서.”하고 기도합니다.

이 부분에서는 가톨릭교회의 역사 안에서 무수한 성인이 증명한 십자가의 평화 대열에 합류하여, 지금 나와 동시대에 살고 있는 유명 무명의 가톨릭신자와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진군 하는 모습이 떠오르면 됩니다.


마치 영화처럼 이러한 장면이 연출될 때, 세속이 주는 거짓 평화가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 평화가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에서“주님께서는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하는 기도에“아~멘!”이라고 화답하는 의미를 알게 됩니다.

그래야 이 부분에 영적인 힘이 실립니다.


이런 분위기는 그 다음 부분에서 교송으로 고조됩니다.

“주님의 평화가 항상 여러분과 함께.”하고 사제가 인사하면,“또한 사제와 함께.”하고 신자들이 화답하고,“평화의 인사를 나누십시오.”하면, 서로“평화를 빕니다.”하고 인사를 나눕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보통 서로 웃고 악수하면서“아이고 반갑습니다.”하는 정도로 인사를 나눕니다.

따라서 대부분 세속적인 의미에서 인사치레를 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기적이고 기능적으로 아예 평화를 기원할 생각이 없는 신자도 있습니다.

심지어“괜히 친해지면, 나중에 빚보증 서달라겠지.”하면서 인사하지 않는 분도 가끔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미사 중에 서로 평화를 빌어주는 인사는 길 가다가, 아니면 술집에서 누구를 무처럼 만나서“오랜만이야!”하면서 인사하는 것과는 다름 차원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서로 빌어 주는 평화를 세속적인 언어로 풀이 한다면,“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라.”아니면“명복을 빕니다.”하는 정도가 될 것입니다.


이런 험한 말을 웃으면서 하는 것은 세속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세속적인 악담도 십자가의 평화를 아는 사람에게는 덕담이 됩니다.

세속에 나아가 죄악과 싸우다가 죽어 가면서 누리게 되는 평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얻을 수 있는 진정한 평화는 예수님의 부활로 제대로 믿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80회: 빵 나눔, 하느님의 어린양, 영성체 전 기도, 영성체송으로 이어 집니다.] 

     

          

  천주교 서울 대교구 중림동[약현]성당 주임 정훈 베르나르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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