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371) 5월은 결코 잔인하지만은 않았다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7-06-14 조회수599 추천수7 반대(0) 신고

 

 

 

 

지난 5월에 외국으로 문학기행을 가는 행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3월부터 갈 사람은 미리 신청을 받았으나 비행기 탈 자신이 없어 나는 일찌감치 포기를 했다.

그런데 4월 중에 주위분들의 권고로 여행을 함께 가기로 어렵사리 결심하고 급히 여권을 만들게 되었다.

여권복사를 해서 여행사에 넘기는 마감 날짜가 임박했던지라 가장 빨리 나오는 구청을 수소문하고 그 앞에 있는 사진관에서 5분 만에 나오는 속성사진을 찍어 접수하니 간신히 날짜에 맞춰 나온다고 했다. 

 

여권 찾던 날  구청에서 가까운 곳에 여행사가 있다고 하여  물어물어 찾아가 여권복사를 하고 계약금을 직접 주고 왔는데......

그런데 여행갈 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비행기 타고 가다 사고 나면 어쩌나?

여행지에 가서 버스타고 다니다 사고 나면 어쩌나?

소위 안전염려증이 또 발동되기 시작한 것이다.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는 내 안전염려증이 병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만일 사고가 나면 우리집이 보통 복잡한 게 아니었다.

지금 재건축하고 있는 아파트에 관한 건도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고 입주 날짜는 두어달 밖에 안남았고 집안의 모든 제반사를 내가 관장(?)하고 있는데, 갑자기 사고라도 나면 보통 일이 아닌 것이다.

 

난 사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평소에 대단한 비중을 두지 않았었다.

그런데  만일 내가 없어진다고 가정을 하고 생각해 보니 우리집은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될 것 같았다. 무척 게으름에도 불구하고 한마디로 내가 차지하고 있는 노동력(?)의 상실이 적지 않더라는 거였다. ㅎㅎㅎ

 

수년 전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난 인척 생각이 새삼스레 떠오르기도 하고 시간이 갈수록 마음은 가기 싫다는 쪽으로 기우는데, 한편으론 끊을 수 없는 유혹 한가닥이 놓아주지 않았다. 왜냐면 그 문학기행은 다시 오기 어려운 기회였기 때문이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성격이 우유부단한 데가 있어 더 그랬다.

남들은 비행기도 배도 잘 타고 외국도 잘만 가는데 왜 그리 간이 콩알만한지.....

 

잔금 내는 마감 날이 드디어 왔는데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데 새벽에 걸려온 전화 한통은 아들의 교통사고 소식이었다.

순간 벼락을 맞은듯 내 딜레마는 간단하게 반토막이 났다.

어디가 부러진 정도는 아니고 좀 심한 타박상이라고는 했지만, 순간 급격히 기력이 다운되면서 '아들이 사고가 났는데 기행은 무슨 기행?' 하는 쪽으로 간단하게 결론이 나버리고 만 것이다. 그렇게 한순간에 결론이 나는 것을 무려 20일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으니..

 

아들이 날 살렸다.

그 심한 갈림길에서 그 심각한 고민에서 단번에 날 구해주었다.

제 몸을 던져(?) 엄마를 단박에 구제해 주었으니 세상에 이런 효자가 어디 있을까.

ㅎㅎㅎ

그때부터 내 마음은 평화 그 자체였다.

여행 취소통보를 하고 나니 그순간부터 마음이 푸욱 놓이고 편안해지는 것이었다.

 

크게 다치지는 않았으니 걱정말라던 아들은 막상 병원에 가보니 얼굴이 많이 부어있고 시퍼런 멍이 여기저기 들고 얼굴도 허리도 아프고 무릎과 다리는 통증이 심해 계단을 오르내리지 못했다.

 

심한 타박상이었다.

엄마를 구해준 것 까지는 좋은데 골병이 들지 않았나 싶어 근심이 되었다.

아들은 16일동안을 입원했으니 5월의 절반을 병원에서 지낸 셈이다.

어차피 근무처가 병원이긴 하지만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에서 환자로 16일을 보낸 것이다.

 

무사하게 여행을 갔다 온 분들은 함께 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며 여행지의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그리고 아들은 큰 후유증없이 퇴원을 했다.

그냥 따라갔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도 이젠 해보지만 사람이 어찌 앞일을 알랴!

한치 앞도 못보는 게 인생인데 그때는 그 결단이 최상이었음을....

 

그래도 한가지 분명하게 깨달은 건 있다.

내 존재가 우리집에서는 매우 중요한 존재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내가 하는 일이 정말로 많더라는 거였다.

일하기 싫어하고 게으른 나지만 막상 내가 없어지고 나면 그 빈 자리가 상당히 클 거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비록 어렵게 결정했던 여행도 못 가고 급하게 여권 만드느라 숨이 턱에 닿게 뛰어 다녔지만, 그리고 아들은 사고를 당해 고통을 겪었지만, 그래도 5월 한 달이 결코 잔인한 것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인정하는 계기가 되었으므로.....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