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용서는 자신을 위해 필요한 것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6-14 조회수1,009 추천수7 반대(0) 신고

 

 

<용서는 자신을 위해 필요한 것> ... 윤경재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마태 5,20-26)



  우리 몸에 생기는 상처는 사고나 상해로 인해 피부가 찢어지고 조직이 갈라진 것입니다. 그 갈라진 사이로 생긴 이물질과 독성물질을 깨끗하게 제거해주면 우리 몸 안의 자연치유력이 작용하여 그 갈라진 틈새를 메우고 조직을 되살려 낫게 된답니다. 마음에 생긴 상처도 이와 같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생긴 틈새를 메우고 있던 독소를 깨끗이 제거해야만 새살이 돋고 상처가 나을 수 있답니다.


  몸에 난 상처를 방치하면 계속 오염된 이물질이 작용하여 곪아 터지듯이 마음의 상처도 이와 같이 곪아 터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곪은 독소가 자신만이 아니라 타인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우리들은 흔히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서 주고받는 상처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런 상처는 일회성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점점 깊어지는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정도쯤이야 이해해주겠지 하고 넘어가지만, 상대는 무의식적으로 다른 기회에 나도 그 만큼 갚아 주리라하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예 관계를 차단하는 방법을 떠올린다고 합니다. 우리의 모습을 반성해 보면 이 말이 사실이고, 우리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증오가 담기지 않은 무심한 말 한마디라도 우리에게 상처가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어렸을 때는 주로 가정환경, 학교 성적이나, 외모를 가지고 놀림을 주고 또 받습니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서는 보다 예민해져서 오만가지 것들이 다 상처가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말로 표현하지 않고 행동만으로도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특히 자존심을 건드리면 되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일어나는 형제간의 불화, 부자모녀간의 갈등, 상속 재산다툼 등등은 모두 그동안에 받았던 마음의 상처가 한꺼번에 폭발하여 생긴 것입니다.


  또 가족에게서 받은 마음의 상처는 대물림까지 한다고 합니다. 조부모에게서 받은 마음의 상처가 손자 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그러니 무엇인가 잘못되어 간다고 느낄 때, 그 때 바로 서로 용서를 청하고 화해하여 마음의 그늘이 대물림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정신 심리학자들이 충고합니다.


  우리가 용서하지 못할 것 같은 상태에서 상처를 준 상대방을 용서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고 합니다.


  먼저 그도 어렸을 때는 착하고 꿈 많은 아이였을 것이며, 부모와 이웃에게서 사랑받고 자랐는데 어느 날인가부터 상처를 받아 그렇게 경우 없고 모진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고 상상해 보는 것이랍니다. 그러면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용서는 자신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대를 용서하지 못하고 넘어가면 그 증오의 독소가 우리 안에서 생겨나 먼저 자신을 괴롭힌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용서하는 것을 어려워한다는 것을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용서하지 못하면 그 피해가 우리에게 돌아오도록 만드셨습니다. 자식을 죽인 살인범을 용서하는 일, 자신을 성폭행한 범인을 용서하는 일 만큼 어려운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느님께 이렇게 항변합니다. 왜 상처를 입은 사람이 먼저 용서해야 합니까?


  우리 생각에는 지극히 불합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우리가 남을 용서할 때 얻는 기쁨이 우리 자신에게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이웃에게까지 미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용서는 사랑을 낳는 사랑의 어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어느 부자지간에 평소에 잔정이 없고 폭력만 휘둘렀던 아버지가 임종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카운슬러가 그 가족 내력을 알고서 아들에게 그런 아버지라도 용서해 보라고 그리고 나를 낳아 주어서 고맙다고 이야기 해보길 권했습니다. 아들은 도저히 그럴 수 없었습니다.

  술만 마시면 개처럼 변해 어머니도 때리고 자신을 포함한 아이들을 학대했던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어 수년간 남처럼 지내왔는데 이제 와서 무슨 용서며, 고맙다고 말하겠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도저히 못할 것이라고 고집을 피우니 그 카운슬러는 그럼 아버지 입장에서 혹시 아드님은 아버지의 기대에 꼭 맞는 아들이었는지 생각해보라고 충고했습니다. 사실 그 점에서는 아들도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렵게 병원을 방문하고 망설임 끝에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아버지 그동안 아버지의 기대에 못 미치는 자식노릇만해서 죄송하다고 용서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아버지도 그동안 너무나 자신이 지은 죄가 컸다며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렇게 서로 용서하고 고맙다는 이야기를 꺼내니 이제는 사랑한다는 고백도 쉽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몇 칠 뒤 아버지는 임종하였고 그 아들은 그 용서와 사랑을 고백한 체험이후 자신이 가족들에게도 정겹게 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이유 없이 짜증나고 화를 내었던 자신이 많이 변한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모두 아버지와 화해한 덕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용서는 과거의 일을 없었던 것으로 만들라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는 자신의 현재를 어루만져주는 일이며 밝은 미래를 향해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 이상의 일은 하느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자신이 할 일이 아닙니다. 용서는 가해자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가 어떻게 행동하든 또 그 사건으로 어떤 영향을 받던 간에 하느님께 맡기고 자신에게 맡겨진 용서를 하기만하면 되는 것입니다.


  용서는 자신을 위해 자신이 하는 것이지 누구를 위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상대를 용서하기 어려워하는 심리의 기저에는 바로 이런 오해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는 내가 용서했으니 상대도 뉘우치고 용서를 구해야만 한다고 여깁니다. 그러기 전에는 용서할 수 없다고 강변합니다. 이것마저도 핑게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님은 일깨워 주십니다.


  주님께서 일흔 번씩 일곱 번 용서하라고, 무조건 용서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바로 우리의 잘못된 용서의식을 깨우쳐 주시는 것입니다.

 

  또 주님께서는 우리가 남을 용서해 주는 것에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는 먼저 나서서 화해를 청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남에게 원한을 살 일을 하였다면 제단에 예물을 올리기 전에 용서를 먼저 청하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의 법정에서라도 그 책임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