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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분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06-15 조회수1,017 추천수13 반대(0) 신고

 

2007년 6월 15일 예수 성심 대축일

 

 

I tell you, in just the same way
there will be more joy in heaven over one sinner who repents
than over ninety-nine righteous people
who have no need of repentance."
(Lk.15.7)

 

제1독서 에제키엘 34,11-16

제2독서 로마서 5,5ㄴ-11

복음 루카 15,3-7

 

요즘 저는 가정방문 중입니다. 그런데 이 가정방문이 상당한 시간을 요구하더군요. 이번 주에는 지난 화요일부터 3일 연속으로 가정방문을 했는데, 특히 어제 같은 경우는 12시 30분부터 저녁 7시까지 방문을 했는데도 겨우 1개 구역을 마쳤을 뿐입니다. 하긴 집에 계시지 않으면 집 밖에서 기도를 한 뒤에 다른 집을 방문했고, 만약 냉담자를 만나게 되면 어떻게든 고해성사를 보게 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 같기도 합니다.

가정방문을 할 때, 어떠한 가정을 중심으로 방문해야 할까요? 당연히 열심하지 않은 가정, 지금 쉬고 있는 가정을 중심으로 방문하여 다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가정방문을 하다 보면, 열심한 가정을 중심으로 방문하고 싶은 인간적인 마음이 자주 일어납니다.

때로는 문밖에서 마치 싸구려 책 외판원 취급당하듯이 얼굴도 보지 못한 채 거부를 당합니다. 그리고 그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답답한 마음이 계속 생기깁니다. 왜냐하면 성당에 못나가는 이유가 외적인 것에 있다고 하시거든요. 즉, 자기 때문에 성당 못나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외적 이유 때문에 성당에 못나간다는 핑계만 계속해서 반복하시기에 그 이야기가 그리 좋게 들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냉담자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고해성사를 통해서 냉담을 푸는 순간, 그 순간은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돌아오는 주일날 나오셔서 제게 “신부님, 저 왔습니다.”하면서 환하게 웃으실 때의 모습은 세상의 그 어떤 아름다움과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저의 약간의 수고로 이들이 성당에 다시 나왔다는 사실, 물론 얼마 뒤 다시 냉담하시는 분들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정말로 열심한 신앙인으로 바뀐 분들을 만나게 되면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기도가 저절로 나오게 됩니다.

저는 사실 오늘 복음 말씀을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서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광야에 놓아 두냐는 것이지요. 한 마리를 찾는 동안 광야에 내 팽개쳐진 아흔아홉 마리의 양이 잘못되면 어떻게 합니까? 그런데 가정 방문을 통해서 그 예수님의 마음을 아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저 역시 한 분이라도 다시 신앙생활로 이끌었을 때, 그 기쁨이 훨씬 더 크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다른 양들을 그냥 광야에 팽개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흔아홉 마리가 똘똘 뭉쳐있기 때문에, 굳이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똘똘 뭉쳐져 있지요. 중요한 것은 그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간 분들을 찾아뵙고 그들을 다시 아흔아홉 마리의 양 무리에 함께 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곁에 있는 너무나도 많은 냉담자들. 이제는 그들을 하나씩 주님 앞으로 모시고 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때 우리 역시 이렇게 큰 소리로 외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잠시 쉬고 있는 교우들을 찾아서 이야기를 해 봅시다.



 
이황의 버선('행복한 동행' 중에서)

세상일은 그 일을 어떻게 바라보고, 마음먹느냐에 따라 천국이 될 수도, 지옥이 될 수도 있다.

퇴계 이황이 첫째 부인을 잃고 혼자 살 때의 일이다. 평소 존경하던 선비 권질이 퇴계 이황을 불러 술 한잔을 권하며 한참을 주저하다 말했다.

"정신이 맑지 못하고, 영리하지 못한 나의 딸과 혼인해 줄 수 있겠는가? 부족한 내 딸을 믿고 맡길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네밖에 없네."

한참을 생각하던 이황은 정중하게 말했다.

"저는 오히려 꾸미지 않은 순수한 모습이 마음에 듭니다. 기꺼이 혼례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이황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모자란 권씨 부인을 두고 말이 많았지만 정작 이황 자신은 부인을 한결같이 공경하고 격려했다.

조정에 나가 왕을 알현하는 어느 날, 권씨 부인이 이황에게 버선을 내밀었다. 권씨 부인이 난생처음 만든 그 버선은 빗자루를 본으로 삼아 그 생김새가 아주 이상했다. 하지만 직접 버선을 지어 준 부인의 정성을 알기에 이황은 그 버선을 신고 임금 앞에 나섰고, 그것을 본 중종과 함께 웃었다. 중종이 아내를 공경하는 퇴계의 인품을 높이 샀음은 물론이다.

권씨 부인은 지금도 후손들에게 '바보할매'라는 별명으로 통한다. 그러나 이황은 그 부인과 16년을 함께 살면서 수많은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 천국을 만드는 것은 결국 긍정적인 마음이다.


 

What man among you having a hundred sheep

and losing one of them
would not leave the ninety-nine in the desert
and go after the lost one until he finds it?
And when he does find it,
he sets it on his shoulders with great joy
and, upon his arrival home,
he calls together his friends and neighbors and says to them,
'Rejoice with me because I have found my lost sheep.'
(Lk.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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