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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꿈 이야기 . . . . . . . . . . . [배달하 신부님]
작성자김혜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06-16 조회수885 추천수12 반대(0) 신고

 

 

                                                                   천 리 향

 

             

열대야,

도심의 이야기인줄로만 알았는데  

다른 곳 보다 시원하다는 이곳도 예외가 아닌가보다.

지난밤이 가장 심했었는지 밤새 뒤척거리며 꿈을 꾸다가

새벽에 어느 님의 풀 매는 호미질 소리와 함께 잠을 깨고 말았다.

좀처럼 드문 일이다.

나는 일단 한번 잠들면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까지

도중에 깨는 일이 거의 없다.

그래서 어쩌다 가끔 일어날 시간보다 일찍 잠이 깨는 날은

서운하기까지 하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그래서인지 깨어진 꿈은 빨리 잊으려 했건만

오늘은 왠지 아쉬움의 여운에서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한다.

실로 오랜만에 꾼 문제의 꿈 때문이다.

나는 잠들기 전에 내일 해야 할 일에 대하여

지나치게 생각을 하거나 혹은 그날의 일을 다 마무리 못해서

부담을 가지고 잠자리에 들게 되면

그런 날은 습관적으로 어떤 꽃 이름이 생각이 나면서

그 꽃 생각과 함께 잠이 들고

그리고 그 날은 자는 동안 늘 같은 내용의 꿈을 꾼다.

 

그렇게 내일의 일에 대한 부담을 가지고 잠드는 저녁에

생각나는 꽃은

천리향과 만리향이라는 이름을 지닌 꽃이다.

사실 나는 이 꽃들을 두 눈으로 직접 본적도 없고,

책을 찾아 연구해 본적도 없다.

다만 어디선가 주워들었을 뿐이다.

아주 어릴 적에 누군가가

'저 꽃이 천리향이다' 라는 말을 했던 사실은

분명히 기억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꽃도 사람도 기억에 없다.

 

때문에 사실상 나는 그런 꽃이 실재하는지

아니면 상상 속의 이름만의 꽃 이름인지 어쩐지 알지 못한다.

천리향 만리향 생각과 함께 꾸는 꿈의 내용은

아주 오래 전에 외국 여행지에서 보았던 풍경들이다.

90년 초에 태국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잊지 못할 풍경을 보았다.

이른 아침에 사람들이 한참 출근할 시간에

어디선가 주홍색 가사적삼을 두른 스님들이 수도 없이 나와서

길가에 서있었다.

 

출근하는 시민들은 출근길에 그렇게 연도에 늘어선 스님들께

무엇인가를 건네주고는 넙죽 혹은 꾸벅 절이나 합장을 한 후

가던 길을 갔다.

 

사람들의 모습과는 달리 스님들의 모습은 전혀 움직임이 없는

무표정에 가깝게 보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출근길 사람들이 스님들께 준 것은

스님들이 기도하며 하루 동안 먹을 음식이란다.

내용인즉,

음식 같은 건 우리가 세속에서 벌어 알아서 매일같이

출근길에 줄 터이니...

스님들은 우리처럼 살지 말고 수행하면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함에 전념하시오.

 

즉 수행에 전념하여

우리가 못하는 향기로운 인간의 모습을 보여 달라는 얘기다.

참으로 무서운 얘기가 아닌가.

 

아무튼, 천리향 만리향을 생각하는 날 밤에 꾸는 나의 꿈은

그렇게 이국적인 아침의 풍경과 함께

그 속에서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교차되어 나타난다.

꿈속에서 나는 게으른 인간의 유토피아를 꿈꾼다.

그래서 특별히 일하지 아니하고도

주는 밥 당당하게 얻어먹으며 살아가는 그런 세상의 나를

지금 현재의 나와 교차시켜 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사제를 비롯한 모든 인간이

밤낮없이 열심히 일하고 생산해내야만

인정받으며 떳떳하게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왜곡된 생각이라 본다.

만일 교회의 누군가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신앙적으로도 신학적으로도 잘못된 생각이라고 본다.

 

어린왕자 이야기를 빌리자면,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보아뱀이

교회를 통째로 삼켜버린 결과의 사고방식이다.

오히려 이 세상에는 태국의 스님들처럼

주는 것을 당당하게 받아먹고 사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스스로 무위도식하는 듯 보이지만

사람들이 하루라도 못 맡으면 병이 나는

향기를 지닌 사람들이 있어야한다.

 

그런 사람들이 있는 세상이 제대로 된 세상이다.

그가 어디에 있어도 그 향기가 천리만리를 퍼져나가

벌 나비가 찾아드니 그 스스로 온데를 찾아다니며

자신을 내세우고 떠버리고 자랑할 필요가 없는

그런 사람이 많은 세상이 제대로 된 세상이다.

그런데 슬프게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더 이상 놀고먹는 것처럼 보이는

향기로운 사람들이 설자리가 별로 없어 보인다.

세상은 말할 것도 없고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오직 능력과 생산성을 지닌 사람만이 인정받는 세상이다.

그러니 사제로 수년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천리 만리는커녕 십리를 날아갈 만한 향기도 지니지 못한

오랑캐꽃 같은 나 같은 사람은 어찌 살 것인가!

 

향기가 없으면 농사짓는 호미질을 잘 하든가 아니면,

유능하고 능숙한 처세술이나

혹은 뭔가에 탁월한 능력이라도 있어서 사목이라도 제대로 하던가...

이도 저도 시원치 않으니 이를 또한 어쩔 것인가!

에라,

꿈같은 얘기 그만하고 향기 대신에 화장수라도 몸에 뿌리고

얼른 나가봐야겠다.

 

나가서

내가 꿈꾸던 그 이른 새벽에 오시어 기도하시고

지금은 성당 마당의 풀을 매시는 님들의 향기라도 맡고 꿈 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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