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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밖에서 본 한국인... ........ (펌)
작성자홍선애 쪽지 캡슐 작성일2007-06-19 조회수687 추천수6 반대(0) 신고
밖에서 본 한국인...

밖에서 본 한국인(韓國人) 오래 전부터, 다른 나라에서 본 한국인에 관한 글이 있었는데 내용도 재미있지만, 그동안 가려졌던 참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과제가 무엇인지를 생각게 한다. -IMF를 2년 만에 벗어난 희한한 종족 -경제 강국인 일본을 ‘쪽바리’라 우습게 보는 유일한 종족 -월드컵에서 1승도 못하다가 4강까지 올라간 미스테리 종족 -유태인을 게으름뱅이로 바꾸어 버린 엄청난 생활패턴의 종족 -조기영어 교육비는 세계 1위나 실력은 100위 수준의 종족 -기름 한 방울 없으면서 자동차는 다 갖고 있는 간 큰 종족 -땅은 좁지만 우수한 인재가 많이 나오는 종족 등등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인은 상식적(常識的)으로 이해하기 힘들고, 또한 분명히 우수한 종족임에도 왠지 무언가가 석연치 않는 이상한 민족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는 세계1위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분야들이 일등박물관을 차려도 될 만큼 풍성해졌다. OECD 자살률, 국가 평균 IQ, 교통사고율, 출산율과 낙태율, 술 소비량과 간암사망률, 세계반도체산업, 컴퓨터게임 중독 등등에서 모조리 일등(一等)을 석권했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끄러운 세계 일등이 더 많다. 우리가 왜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외적(外的)으로 볼 때는 종합국력 세계9위로 선진국에 들어섰지만, 밖에서 볼 때는 아직도 우리는 여전히 후진국의 모습이다. 선진국이란 기술과 달라가 많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세워나가는 가장 중요한 세 가지 동력, 규칙과 계획성, 협동심이 바탕에 깔려있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 세 가지가 다 약(弱)하다. 우리에게는 다른 민족들에게 없는 열정(熱情)과 행동력 그리고 국민적 결속이라는 장점을 갖고 있다 해도, 방향(方向) 없이 달리는 선수처럼 계획 없이 규칙에 벗어나 화합할 줄 모르고 열정만 갖고 뛴다고 과연 세계 속에 한국이 되겠는가. 그러므로 먼저 가장 기본적인 규칙(規則)들을 지켜야만 한국은 명실상부 21c 주인이 될 수 있다. 얼마 전 학부모 2명이 소방 교육을 받다 추락하여 사망한 일이 있었다.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소방훈련에서조차 최소한의 기본도 지켜지고 있지 않은 우리에게 교통사고 1위는 당연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지하철 폭발, KTX 차량 사고 등 대형(大型)사고 들은 하나같이 기본적인 규칙들을 안 지키는 것이 관행화함으로 생겨난 일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사실을 증명(證明)이라도 하듯이, 우리나라는 세계 50여개 중에서 준법정신이 최하위권이라는 최근 보도가 있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을 들었던 우리가 이제 가장 법을 무시하는 나라로 각인되고 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하지만 그 변화(變化) 속에서, 가장 큰 손실은 인간에 대해 기본적인 존엄성과 존경심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 모든 영역에서 너무나 자기중심적인 사고와 행동으로 기본이 지켜지지 않으면서 약자들은 갈수록 살아갈 버팀목을 잃고서 고통 받고 있다. 최소한의 기본적인 규칙들이 지켜지기 않기에 목숨도 위태롭지만, 최소한의 예의가 무시되기에 이 사회는 자꾸만 미래를 포기하고 사회적인 일탈현상들이 자주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기본(基本)을 기초단계로만 알고서 하잖게 여기지만 모든 성공과 실패란 여기에서 시작되고 있다. 행복한 사람은 좋은 환경에서 살아서가 아니라, 기본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그 바탕 위에 성실하게 살았던 사람들이요, 불행(不幸)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인생의 기본 바탕이 잘못 형성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기본이란 ‘사람이 되는 일’이다. 흔히 사람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存在)라고 말하듯이, 내가 어떤 일을 하느냐 보다는 어떤 존재로서 그 일을 하느냐가 사람의 본질(本質)이다. 곧 기본이 된 사람은, 그 분처럼 모든 사람을 ‘섬김’으로 사람을 사람 되게 하므로 사랑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들어 준다. 둘째는 계획성(計劃性)이라는 민족의 과제다. 우리나라는 고령(高齡)화 속도가 세계최고 수준임에도, 노후준비는 최하 수준에 머물러 있다. 백년대계(百年大計)라는 교육은 길거리 보도 불럭 옷 갈아입듯이 매년마다 정책들이 널뛰기 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장점은 신바람나면 미친 듯이 일하는 행동력은 따라올 민족이 없지만 거기에 준해 계획성(計劃性)이란 최하위 수준이 문제다.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해 본질적인 변화(變化)가 없다면, 세계화란 우물 안의 개구리 밖에 안 된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처럼, 무슨 일이든지 위대(偉大)한 일은 하루에 완성되지 않고 오랜 기간 동안 열과 성(誠)을 다할 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가 아무리 길고 인생이 아무리 장구(長久)하다해도,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이든지 하루하루라는 시간들이 모여짐으로 성취 되므로, 모든 일은 계획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남자보다 적금통장이 좋다’라는 책을 쓴 어느 방송작가는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1억 원이 아니라 계획성(計劃性) 있는 삶이라고 했다. 세상에서 성공했다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렇듯 무슨 일을 하든, 시간(時間) 관리에 철저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함으로 중, 장기 인생 계획들을 성취했던 것이다. 곧 어떤 일이든지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대로 실천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든 사회든 개인이든 계획을 세워 전략적으로 살아가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기본적인 일이다. 먼저 비전(vision)을 전략(戰略)화 해야 한다. 비전이란 ‘자신이 원하는 내일의 모습’이다. 인생에서 비전이 없다면 목표지점도 없이 무조건 달리는 주자와 같다. 그 비전을 전략 화하는 것이 인생계획이요, 인생을 자신에게 맞게 디자인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그런 후에 그 비전을 실천(實踐)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계획이라도 행함이 없다면 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 후에 비전을 성취하기 위해 철저한 과정(課程) 속에서 날마다 점검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비전을 관리(管理)하는 일이다. 비전과 전략이 아무리 잘 되어가도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실질적인 효과를 얻을 수가 없다. 이러한 전체적인 인생 계획 속에서 최선을 다할 때 이미 그 사람은 성공(成功)한 사람이요, 행복(幸福)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다. 셋째는 협력(協力)의 과제다. 우리나라는 아시아에서 이혼(離婚)율 1위라는 어처구니없는 기이한 기록을 갖고 있다. 거기에 끝나지 않고 아예 장가 시집조차 안 가려는 풍조가 팽배(彭排)하다. 또 부모와 자식 간의 불화는 이제는 예사로운 이야기도 되어 버렸고, 노사(勞使)간의 밥그릇 다툼은 우리 모두를 지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와 일본을 늘 모래와 진흙으로 비유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개인적으론 뛰어나도 서로 협력(協力)하는 단계에선 너무나 유치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단일민족임이다. 그래서 콩 하나를 갖고도 온 식구가 나눠 먹을 정도로 형제애가 돈독(敦篤)했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 이기주의가 팽배하고 계층 간의 반목현상이 일어나면서, 경쟁의식이 강하고 비협조적으로 바뀐 것이다. 먼저 근대화(近代化)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가장 짧은 기간 동안 근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끈 대표적인 케이스다. 문제는 삶의 질(質)이 향상된 것만큼 물질우상화가 들어오면서, 애 어른 할 것 없이 돈과 쾌락(快樂)에 빠지면서 각종 중독현상들이 나타난 것이다. 덕분에 근대화를 통해 가난은 벗어났지만, 계층 간에 반목(反目)현상이 일어나며 이웃은 원수가 되기 시작했다. 다음으로 민주화(民主化)에서 찾아야 한다. 민주화는 4․19혁명부터 동학혁명까지 거슬러 올라 갈 수 있을 것이다. 근대화는 물질적인 풍요로움뿐만 아니라, 권위적인 관계에서 민주주의를 가져다주면서부터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곧 근대화 과정에서 국민들의 의견을 다 수렴하여 진행할 수가 없어 밀어붙이기 식으로 한 것이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갈등(葛藤)구조를 만들었던 것이다. 문제는 민주화적인 세상이 되다보니 자기 권리만 주장하고 의무를 도외시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사회 도처에 갈등은 첨예화(尖銳化) 되었던 것이다. 이렇듯 근대화와 민주화의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갈등과 반목의 보냈다 해도, 이제는 오랜 질곡(桎梏)을 넘어 새 시대로 가야 한다. 남북에서 동서시대가 되면서 냉전에서 평화로, 갈등에서 화합의 전환점에 서게 되었다. 갈등은 오히려 기회(機會)가 될 수 있다. 더 이상 파당을 이루지 말고 서로를 보듬고 이해하므로, 끈끈한 우리만의 동질감으로 당면한 위기들을 극복하고 내일을 향한 도약(跳躍)의 발판을 마련해보자는 것이다. 주여, 밖에서 보는 우리의 어설픈 모습처럼, 가장 기본적인 규칙과 계획성 그리고 조화(調和)를 제대로 이루지 못해, 더 이상 나가지 못하고 주저 않아있는 저를 보고, 당신은 얼마나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십니까. 다시 일어나, 하늘을 바라보는 새의 눈을 갖고 기본에 충실하므로, 당신이나 저들이나 자신이나 같은 마음을 갖게 하소서... 2007년 6월 17일 단오제가 시작되는 강릉에서 피러한 드립니다.
사진허락작가ꁾ투가리님 lovenphoto님 크로스맵사이트 포남님 출처; 경포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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