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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한다.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6-23 조회수654 추천수7 반대(0) 신고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마태 6,24-34)




  저는 새로 번역된 성경을 읽으며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라는 구절에 이르면 한참이나 머물고 있습니다. 번역이 얼마나 훌륭하게 되었는지, 아! 하고 무릎을 칠만큼 깊이 감탄하고 있습니다. ‘내일’이라는 시간에 주체성을 부여하여 번역하신 그 의도가 얼마나 참신하면서도 시적이며, 깊은 철학적 사색의 결과인지 정말 읽을수록 임승필 신부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공동번역에서는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200주년 기념 성서에서는 “내일은 내일대로 걱정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번역 되어 있습니다. 두 번역 모두 사람이 걱정하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 임승필 신부님께서 번역하신 표현은 아예 걱정을 내일이라는 그것이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번역이 얼마나 깊고 웅변적으로 예수님께서 의도하시는 점을 꿰뚫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야말로 얼마나 예수님께서 示唆하시는 바를 정확하게 끄집어냈는지 모릅니다. 시간은 인간의 것이 아니며 시간 그 자체의 것입니다.


  인간은 시간에 대해 많은 부분 오해하고 있습니다. 시간이란 과거에서 미래로 흘러가는 것이며 자기와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간은 사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이라고 말하는 순간 벌써 멀리 도망쳐 버렸습니다. 또 시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인간이 지배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현재를 살고 있지 못합니다. 과거에는 얽매어 있고 미래에다가는 불확실한 약속을 담보하고서 현재를 포기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루카 17,21)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요한 4,23)

“죽은 이들이 하느님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렇게 들은 이들이 살아날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요한 5,25)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내용은 확실한 지금이라는 시간, 그것에다 살아 숨 쉬는 생명을 부여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종말의 때도 지금이라는 확고한 것에 뿌리를 박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곧이곧대로 믿지 못하고 막연한 두려움과 의심을 함께 부여한 채, 다시 오실 재림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미래를 의심하며 현재를 살기 때문에 현재를 충실히 살지 못하고 두려워하며 걱정하는 것입니다.


“너희들 작은 양 떼야,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 나라를 너희에게 기꺼이 주기로 하셨다.” (루카 12,32)


  하느님께서 하느님나라를 미래에 주시겠다고 미루어 두신 것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니 하늘나라는 이미 우리 가운데 와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나라가 이미 들어와 있다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는 말씀이 얼마나 절실한지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늘을 나는 새도 들에 핀 나리꽃도 충실히 그 생명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다른 피조물과 달리 현재를 충실히 살고 있지 못합니다.


  어느 동물학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이 사용하는 말 중에 ‘동물적이다’라는 말처럼 잘못 쓰고 있는 말이 없다. 그 말은 인간이 얼마나 오만하고 무식한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말이다. 동물들은 자기의 삶에 언제나 충실하며 찰라에 충실한지 모른다. 한낱 토끼를 잡아먹으려는 호랑이도 최선을 다해 뛰고 달린다. 또 수 초 뒤에 잡아먹히는 한이 있더라도 작은 토끼는 최선을 다해 도망친다. 그리고 호랑이는 장난삼아 사냥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명에 충실하여 살뿐이다. 이처럼 동물들은 누구도 원망하지 않으며 걱정도 하지 않는다. 또 슬퍼하지도 교만하거나 자랑하려고 들지도 않는다. 어쩌면 그네들은 창조주께 항상 감사하며 기쁘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참으로 배울 점이 많은 이야기입니다.


  시간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만 선물로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고 모든 것을 그분께 맡기며 현재에 충실하게 사는 것뿐입니다. 태양이 서쪽으로 졌다가 정확히 동쪽에서 떠오르는 것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도 아무 의심 없이 주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안에 평화와 기쁨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아멘.


  

제주의왕자-양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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