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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용서하는 행동은 주저 말고 즉시 옮겨야 합니다.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6-24 조회수707 추천수5 반대(0) 신고

 

 

 

<용서하는 행동은 주저 말고 즉시 옮겨야 합니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마태 18,19-22)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여러 가지 가르침 중에서 용서만큼 확고하며 독특한 가르침이 없습니다. 이 세상 어느 종교나 사상가들이 주장하는 내용에서도 예수님처럼 용서를 확고부동하고 보편적으로 베풀라는 가르침은 없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교만 해도 정, 부정을 엄격하게 가르는 가르침뿐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부정한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말고 내치라고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이슬람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태복수규정이 아직도 살아있고 불교에서도 인연연기설에 의해 선업은 좋은 열매를 맺으며 악업은 악한 결과를 낳을 뿐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느 의미로 남을 용서하는 것은 나와 상관없으니 자기 마음만 다스리면 된다는 뜻입니다. 용서의 행동을 굳이 내보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용서는 제한 규정이 없습니다. 나에게 죄를 지은 사람이 용서를 청하거나 말거나 일단은 용서해주어야 했습니다. 상대가 용서를 청하고 잘못을 빌 때 그에 상응하는 용서를 베푸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조건 없이 베풀어야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용서의 규정에 대해 깊은 이해가 부족하여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용서는 이미 발생한 일을 없었던 일로 간주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만 잊어버리자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는 것과 그 사람이 한 일을 잊어버리는 것이 전혀 다른 것인데도 자주 같은 것으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간혹 ‘내가 진심으로 용서했으니 곧 잊게 될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고서는 그렇지 못한 자신을 발견하고, 심리적으로 영성적으로 갈등을 겪습니다. 스스로 기꺼이 용서했는데도 불구하고 잊어버리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것을 무엇인가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자신이 위선적인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주님께서 용서하라고 하신 계명을 어기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게 됩니다. 이런 감정은 모든 신앙인에게서 나타납니다. 아무리 지식이 높고 경험이 많고 나이가 들었더라도 이런 갈등을 누구나 겪게 됩니다.

 

  사람들이 용서하는 행위와 용서하는 감정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구분하지 못해서 생기는 것입니다. 용서한다는 행위는 그리스도교 신앙에 의해 내린 결정입니다. 이성에 근거한 행위로 상대방에게 다가가 이전 관계로 회복하자는 권유를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려운 결정이지만 반드시 실천해야하는 행동입니다.

 

  물론 이때 혹시 부정적인 마음의 앙금이 남아 있더라도 상관없습니다. 먼저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우선하는 것입니다. 감정상의 용서는 때가 되어야 오는 것입니다. 우리마음 속에 혹시 ‘용서하지 않는 마음’이 남아 있더라도 이것을 솔직히 인정해야 합니다. 잊는다는 것은 여러 가지 과정을 겪고 나서야 찾아오는 심리적 해소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시키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용서의 행위는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즉시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의지로 보일 수 있는 행동입니다.

 

  용서를 겉으로 옮기는 행동과 마음으로 용서하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 스스로가 용서라는 행위를 어렵게만 여기고 주저하여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 또 마음과 행동이 다르게 느껴지는데서 오는 혼란과 자책감, 자기모순과 같은 감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됩니다. 용서를 즉각 실천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상처 받았을 때 느끼는 분노와 원망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하는 행동을 즉각 실천할 수 있는 것도 또한 사실입니다.

 

  물론 내 마음 속에서 모든 앙금이 사라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용서하는 행위를 지체한다면 그것은 용서할 수 있는 기회마저 잃어버리는 결과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숨을 거두시는 십자가상에서 바로 용서하시는 행동을 보여 주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이처럼 우리도 용서하는 행동은 빠르게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완전히 잊는다는 것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때부터는 주님께 기도하며 기다려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용서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반드시 실천해야 하기 때문에 지체할 이유가 없습니다.

 

  먼저 용서라는 행위를 보여야 잊을 수 있다고 합니다. 잊는다는 것은 우리가 받은 상처를 치유하려고 애쓰는 가운데 마침내 용서의 기쁨을 느끼는 경지에 이르렀을 때 가능한 것이라고 합니다.

 

  용서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잊음은 상한 감정을 치유하지 않고 그냥 덮어 두는 것이기 때문에 아주 위험하다고 합니다. 때가 되어 더 나쁜 감정으로 변해 부정적인 태도로 표출 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우리가 마음 깊숙이 용서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듯, 우리가 남에게 잘못하여 용서를 빌어야 할 때 그들에게도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합니다. 겉으로 드러난 용서 행위보다 마음속에 앙금이 남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 그 마음까지 어루만질 수 있는 진실 된 화해를 청해야 합니다.

 

  요새 나온 영화 밀양에서 보면 과연 용서를 청하고, 용서 받아야 하는 사람이 어떤 행동을 보여야 하는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생각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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