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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시의적절한 질문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7-03 조회수921 추천수16 반대(0) 신고
 
 
 
 

<시의적절한 질문>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4-29)



  경험이 많은 노련한 의사는 환자 얼굴만 바라보고도 그 사람이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환자들은 용한 의사라고 입소문을 낸다고 합니다.


  그러나 겸손한 의사는 다 알고 있으면서도 또 다시 환자에게 어디가 어떻게 아프냐고 질문 한다고 합니다. 환자들은 의사들이 아픈 데가 어딘지 물어 주는 것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고 혹시라도 오진하는 실수를 저지를까 염려해서 랍니다. 그래서 넉넉한 성품을 지닌 의사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문진(問診)시간을 아끼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환자가 하소연하는 사연을 알맞게 들어주어 환자가 처한 상황과 정신건강 상태를 알아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여 치료에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의심하는 토마스에게 나타나셔서 주님 손바닥과 옆구리에 난 상처에 손가락을 넣어 보라고 말씀하시는 모습은 영락없이 자상한 의사와 같습니다. 사랑하는 제자가 빠져있는 병을 치유하시러 몸소 왕진오신 것입니다.


  또 우리가 어렸을 때 병이 들라치면 할머님께서 곁에 앉아 배를 문지르면서 “할미 손은 약손, 손주 배는 똥배” 하시던 가락이 생각납니다. 그러면 정말 신기하게도 아픈 배가 언제 아팠냐고 사르르 풀리며 나아졌습니다.


  이처럼 의심하는 토마스 사도 모습보다 한 마리 길 잃은 양을 찾아오시는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이 더 살갑게 느껴집니다.


  학교 선생님이나 남을 지도한 경험이 있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수업이나 강의를 하다가 알맞은 질문을 받았을 때 얼마나 기분 좋고 고마운지요. 아무 질문도 없으면 실제로 잘 아셔서 그런 것인지 무관심해서 그런지 구분이 안 될 때가 많습니다.


  저는 날카로운 질문을 받을 때 오히려 새로운 영감이 떠오르는 경험을 해 보았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그 질문자가 얼마나 고맙게 느껴지는지 모릅니다. 특히 성경 봉사를 하다가 멋들어지고 사려 깊은 질문을 받아 응답했을 때 저는 제 안에 계신 성령께서 저에게 지혜를 주신다는 체험을 여러 번 했습니다. 까다로운 질문에 대답을 하면서도 이것은 도저히 내 목소리가 아니라 성령의 목소리구나 하고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20)


  그럴 때 한 방안에 있던 다른 모든 교우님들도 어떤 은사체험을 하였다고 말하십니다. 질문 하셨던 분도 대답하는 저도 듣는 교우들도 모두 성령께서 움직이셨다는 것을 알아챈 것입니다. 처음에는 잘 알아채지 못하셨지만 몇 개월 몇 년을 함께 하다보면 예수님 말씀을 몸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저는 토마스 사도의 질문이 바로 이런 경우라고 묵상합니다. 시의적절하고, 사려 깊으며, 솔직한 질문입니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체하고 넘어 가면 그것은 영원히 모르는 것으로 남습니다. 잘 모르겠으면 체면 생각하지 말고 지혜롭게 질문할 줄 아는 것이 더 슬기로운 행동입니다.


  토마스 사도의 질문은 분위기 망치는 엉뚱한 질문이 아니라 그 상황에 꼭 맞는 질문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는 다른 제자들의 전언은 정말 눈으로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할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에 토마스 사도의 행동이 부족하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처음 발생한 놀라운 이변인데 어찌 말 한마디로 믿겠습니까? 누구라도 그렇게 행동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토마스 사도는 복음서에서 가장 놀랍고도 중요한 고백을 즉시 말합니다. 아마도 이것은 성령께서 사도 안에서 대신 고백 했을 것입니다.


“Ho kyrios mou kai ho theos mou”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성경에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이라고 고백을 하는 대목은 많지만 예수님을 하느님(theos)이시라고 고백하는 대목은 모두 8군데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 대목처럼 분명하고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대목이 없습니다.


  바로 시의적절하고 지혜로우며 체면을 차리지 않은 솔직한 질문 덕분에 우리가 고백하여야 될 신앙이 분명해 진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토마스 사도

  그 이름은 영원히 만세에

  기려질 것입니다. 아멘.


*예수님을 하느님이라고 언급한 구절; 요한 1,1; 1,18; 20,28 요한1서 5,20   로마 9,5 히브 1,8-9 티토 2,13 베드2서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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