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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용기를 내어라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7-05 조회수1,009 추천수12 반대(0) 신고
 
 
 
 

<용기를 내어라> ... 윤경재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에 악한 생각을 품느냐?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마태 9,1-8)



  이 대목은 마르코, 루카 복음서에 나오는 병행 구절을 비교해보면 실감이 더 납니다. 고향에 돌아 오셨다는 소문이 나자 사람들이 병자들을 데리고 몰려들었습니다. 사람들에게 하느님나라를 선포하시고 병자치유 은사를 베푸시며 계셨습니다. 그런 중에 중풍에 걸려 일어서지도 걷지도 못하는 환자를 친지들이 침상에 눕혀 들고 왔습니다. 마르코와 루카 복음서에는 지붕을 뜯고 내렸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보이는 깊은 믿음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렇게 썼습니다. 그러나 마태오 저자는 유대인이었고 독자들도 유대인들이었기에 굳이 그렇게까지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집 구조를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대개 사람들이 중한 병에 걸리거나 불구가 되면 우선 심신이 나약해집니다. 만사가 귀찮고 우울해지며 짜증이 늘어 가게 됩니다. 그리고 곁에 있는 친지들을 들볶기도 합니다. 그와 온 집안에 그늘이 드리워지게 됩니다. 서로 소원하게 되기도 합니다.


  유대인들은 사람들이 중병에 걸리면 죄를 지은 결과로 생기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치유가 어려운 병으로 오래 고생하게 되면 육신의 병만 괴로운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죄인이라 더 이상 하느님께 구원 받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더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몸만 괴로운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중병이 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중풍병자와 친지들은 태도가 남달랐습니다. 병을 낫고 싶다는 의지도 강했으며 환자와 유대관계에도 사랑이 넘쳐 났습니다. 그랬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움을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모습을 보시고 대번에 넘치는 사랑과 굳센 믿음을 알아 보셨습니다. 그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까닭 없이 짓누르고 있는 죄의식을 덜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와 그를 데리고 온 사람들에게는 조금 다르게 접근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그에게 “용기를 내어라. 아들아.”하고 부르십니다.


  마태오 저자는 다른 복음서와 달리 용기를 불러 일으키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적었습니다. 저는 마태오저자의 깊은 뜻을 새기고 싶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용기를 내라는 단어(tharseo)는 두려움과 낙담한 상태에서 일으켜 주시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오직 예수님과의 관계에서만 쓰였습니다. 마태오복음서에서는 하혈하는 여인이 두려워하며 몰래 주님의 옷자락을 만질 때, 또 호수 위를 건너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놀라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안심하라는 뜻으로 쓰셨습니다. 이렇게 3 번 쓰였습니다.

  요한복음 16,33에서는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행전 23,11에서는 바오로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너는 예루살렘에서 나를 위하여 증언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한다.”


  인간이 지니는 두려움은 주로 알지 못하는 것에서 나옵니다. 실상 우리가 두려워하는 대상은 아마  그다지 영향력이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분명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두려운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바로 주님뿐입니다. 다른 것들을 두려워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실제로 두려워해야 할 존재이신 하느님과 주님께서는 오히려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내라고 위로해 주시고 힘을 북돋워 주십니다. 그 말씀은 주님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주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되면 굳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 어느 사건 어떤 지경에 이르더라도 주님을 믿고 따른다면 안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우선 그 환자에게 용기를 불어주십니다. 그리고 나서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용기를 부여받고 죄를 용서받은 상태에서 주님께서는 전혀 불가능할 것만 같은 명령을 내리십니다. 그의 손을 잡아주시지 않으시고 오직 그의 의지로 행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라고 꿈에도 생각지 못한 행동을 하라고 이르십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전혀 불가능할 것만 같은 일을 행하라고 시키실 때가 많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그런 명령을 들었다면 그것은 이미 용기와 죄 용서하는 예수님의 권능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안심하고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어느 형제님께서는 입교하고 견진 받은지 얼마 되지 않아 구역장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고 두려워 망설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처음엔 시간도 없고 신앙심도 부족하니 다른 분께 맡겨달라고 말했답니다. 그래도 워낙 친분이 있고 신심이 깊은 형제님께서 권하는 일인지라 더 이상 거절하지 못하고 수락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힘들게 구역장직을 일 년쯤 하고 나니 얼마나 귀중한 은총을 받았는지 깨닫게 되었답니다. 만약 그때 그 일을 거절했다면 아마도 냉담에 빠지지나 않았을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대개 그렇게 되면 기분이 상해 성당에 다니는 것도 멀리하게 됩니다. 그 형제님은 그 체험을 아주 기쁘게 나누어 주십니다. 자신 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따라 은총을 받게 되었다고 말하십니다.

 
 “이 일을 보고 군중은 두려워하며,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마태오저자는 의식적으로 ‘사람들에게’라고 복수 형태로 사용했습니다. 바로 그런 권한이 예수님께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 그분을 믿고 따르는 교회와 은사를 받은 사람들에게도 나온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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