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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병든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합니다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7-06 조회수634 추천수7 반대(0) 신고
 
 
 

<병든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합니다.> ... 윤경재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마침 많은 세리와 죄인도 와서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태 9,9-13)



  오늘 아침 묵상글을 작성하고 있는데 갑자기 컴퓨터가 전원이 나갔습니다. 사무실 전체 전원이 일시적으로 중단된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곧 전원이 들어와 전등과 다른 기계들은 정상작동이 되었지만 제 컴퓨터만은 묵묵부답 고장이 났습니다. 전원공급 장치가 나갔다고 여겨 전담 AS직원을 불렀지만 지방출장 중이라 오늘은 오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한시라도 바쁜 마음에 직원을 시켜 부품을 사러 보내고, 또 다른 AS 사무실에 연락을 하고 한바탕 난리를 쳤습니다.


  제가 컴퓨터에 대해 문외한이라 어디가 고장 났는지 모르겠어서 답답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기술자가 와서 컴퓨터를 열고서 여러 연결부분을 한번 씩 뺐다가 다시 끼기만 했는데도 정상 작동을 하더군요. 저는 기계고장인줄 짐작하고 부품을 갈아 껴볼 요량으로 부품을 사다 놓았습니다. 막상 그 기사는 직원이 사온 부품도 알맞은 규격이 아니랍니다. 그는 정확하고도 양심적인 기사인 것이 분명했습니다.


  왜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컴퓨터 내부에 있는 복잡한 부품들이 갑자기 과부하가 걸리면 정전기가 발생하는데 그 정전기를 없애 주어야 다시 작동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때는 연결 장치를 분리하여 정전기를 내보내 주면 된다고 합니다. 실제로 부품이 고장 나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경우도 많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해서 쓸데없는 부품사오느냐고 돈 쓰고, 기사에게 출장비로 돈을 지불했지만 덕분에 한두 가지는 배웠습니다. 고장의 원인을 정확히 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대부분 고장이 나는 원인이 원활하게 연결되고 소통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또 쓸데없이 여기저기 고치고 돈을 청구하지 않는 양심적인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점도 배웠습니다.


  우리 몸이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장애도 먼저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고 정확하게 처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개 사람들은 죄라는 용어에 거부감을 느낍니다. 자기가 의인은 못 된다 할지라도 죄인이라고 하면 심리적으로 저항감을 느끼게 됩니다. 특히 많이 배우고 나름대로 법을 지키며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은 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들은 남에게 빚을 지고는 못사는 심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면 용납이 안 되기 때문에 즉시 죄를 푸는 보상행위나 희생제물을 바침으로 죄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만큼 온전하고 완벽한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 가지 이상 상처가 있고 결함이 있습니다. 다만 그 상처를 자기 자신에게도 감추고 있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을 뿐입니다. 그 마음에 드리워진 상처는 무의식 속에 깊이깊이 숨어 있다가 불쑥 솟아오릅니다. 해소시켜 주지 않으면 언제라도 다시 고개를 든다고 현대 심리학자나 정신과 의사들은 말합니다.


  복음서에서 나타나는 율법학자들이 보여주는 행동은 ‘완벽주의자 콤플렉스’, ‘세심증’ 등등 여러 가지 장애를 지닌 사람들에게서도 나타납니다. 그들은 자기가 부족한 것을 타인에게 요구하여 허물을 돌리는 ‘탓 콤플렉스’에 걸려 있습니다. 자기는 아니라고 언제나 광고하고 다닙니다. 제 탓이 아니라 모두 남의 탓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남이 잘못하는 것은 눈에 잘 뜨이고 자기가 잘못하는 것에는 둔감합니다.


  부부사이에도 서로 상대방이 잘못했고 아이들도 웬만해서는 잘했다고 칭찬하지 못합니다. 꼭 지적할 점을 찾아내고 맙니다.


  우리는 스스로 어디에 병이 들었는지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의사를 찾게 되고 상담하는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몸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의사를 찾고 약을 먹고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을 진찰하고 치료하려면 어디로 가나하나요? 점을 치고 무당을 찾거나 스스로 병든 곳을 찾아 헤맨다고 무슨 효과가 있을까요? 아무 소용없습니다.


  저는 분명히 말하고 싶습니다.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보다 더 온전하고 완벽한 스승님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으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을 꿰뚫어 보시고 아셨습니다. 상처 나고 고통 받는 곳을 정확하게 집으시고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완벽하게 용서해 주셨습니다. 오히려 병들고 죄인이라 소외 받은 사람을 찾아 오셨습니다. 그들을 치료하고 어루만져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마태오복음 18장에 나오는 “매정한 종의 비유”에서 왕이 만 달란트의 빚을 진 종을 아무 조건 없이 용서해 주듯이 우리의 죄도 용서해 주십니다. 여기서 나오는 왕과 종의 대화를 자세하게 묵상해보면 주님께서 얼마나 깊이 우리를 용서해 주시는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선 만 달란트가 어느 정도 큰돈인가 하면 그 당시 팔레스타인 전 지역에서 거두어 드리는 조세 수입이 일 년에 약 천 달란트가 못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큰 액수 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종(나라에서 재무담당 신하정도 됨)은 왕에게 빚을 줄여달라거나 탕감해 달라고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나중에라도 갚아 드리겠으니 상환기일만 늘려달라고 매달렸습니다. 떼먹겠다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사용된 ‘참아달라는’ 그리스어 ‘makrothymeo’ 동사가 그 뜻입니다. 그는 이 세상에 공짜는 없고 빚을 졌으면 꼭 갚아야만 한다는 사고방식에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왕이 탕감해 주겠다는 말을 해도 그 말씀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는 열심히 돈을 모아서 기어코 갚으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는 왕과 제대로 의사소통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 종은 빚진 돈을 갚기 위해서 애썼습니다. 우연히 만난 다른 동료에게 빚진 돈 100 데나리온을 받기 위해 온갖 짓을 다합니다. 1 달란트가 6000 데나리온 이니 두 돈의 차이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60만 배를 탕감 받고서도 그는 악랄한 노릇을 한 것입니다. (어느 책에서는 1달란트를 1만 데나리온이라고도 함)


  그 이유는 자기가 모든 빚을 탕감 받았다는 것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빚을 갚으려고 생각했기에 어떻게 해서라도 돈을 모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혹시 그 매정한 종과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 자신의 죄를 완벽하게 용서하셨다는 것을 믿지 못하고 언젠가는 갚아야할 채무로 여기고 있지나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진의를 오해하고 소통에 장애가 있지나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그 채무를 갚으려 하다 보니 남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남이 잘못한 점을 기어코 밝혀내야 직성이 풀리는 것입니다. 자기를 용서하지 못하기 때문에 남도 용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자는 남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는 율법학자나 바리사이처럼 사람들을 단죄라고 내치려고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받아들이시는 진정한 의사입니다. 양심적인 의사를 뛰어넘어 아무 대가도 받지 않고 공짜로 고쳐 주시는 의사입니다. 그러니 주님을 두고 어디에 찾아가서 병을 낫게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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