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07-08 조회수874 추천수13 반대(0) 신고
 
 
2007년 7월 8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He who stands firm to the end will be saved.
(Mt.10.22)
 
제1독서 열왕기 하권 24,18-22
제2독서 로마서 5,1-5
복음 마태오 10,17-22
 
요즘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기말시험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시험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학생들을 바라보면서 문득 저의 학창시절이 하나 떠올려졌습니다.

보통 시험을 보고나면 곧바로 시험답안을 친구들과 맞춰봅니다. 그래서 내 점수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아보지요. 그런데 이렇게 점수를 맞추다보면 서로 언성이 높아질 때가 있습니다. ‘내가 적은 1번이 맞는 답니다. 아니다 4번이 정답이다.’라면서 언성을 높여서 말을 합니다.

저 역시 이러한 경우가 있었지요. 저는 1번이 확실한 정답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른 친구들은 모두 4번이 정답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 근거를 제가 가지고 있는 문제지를 들었습니다. 그 문제지에 똑같은 문제가 나왔거든요. 그리고 뒷면에 적혀 있는 해답은 분명 1번이었습니다. 저는 의기양양했지요. 다 틀리고 저만 맞았으니까요. 그런데 친구들은 교과서를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교과서의 내용을 근거로 답을 생각해보니 4번이 정답이네요. 그러나 저는 저의 주장을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주장을 꺾으면, 저만 한 문제 틀리는 것이 되니까요. 그래서 저는 선생님을 찾아가서 문제지의 답이 이래서 이렇게 답을 썼다고, 따라서 이 답도 맞게 해주면 안 되냐고 여쭈었지요.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당연히 저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문제지는 교과서를 보충할 뿐이지, 교과서가 문제를 보충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따라서 문제지에 똑같은 문제가 나왔고 그 문제지에서 제시하는 해답이 1번이라 할지라도, 교과서의 내용으로 4번이 맞다면 4번이 정답인 것입니다.

당연히 주 텍스트를 따라야 함이 올바른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들은 마치 제가 선생님께 문제지를 내세워서 억지 주장을 했던 것처럼 억지 주장을 펼칠 때가 참으로 많았던 것 같습니다. 특히 세속적인 부와 명예와 권력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세상의 법칙을 쫓을 때가 얼마나 많았던지요? 그러나 이 세상의 법칙이 정답은 분명히 아닙니다. 그보다 우리들이 주 텍스트로 삼아야 할 것은 바로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법칙입니다.

사실 세상의 법칙을 따르면 겉으로 보기에는 행복한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답이 아니기에 순간의 만족만 있을 뿐, 영원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 박해에 대한 경고를 하시면서 이러한 말씀으로 희망을 주십니다.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오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는 바로 주님께서 제시하는 정답만을 쫓아가셨던 분이지요. 바로 진리의 길,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는 참 행복의 길만을 따라 가시면서 우리들이 어떤 길을 가야할 지를 제시하여 주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그러한 박해가 없다는 것이지요. 지금도 박해가 있다면, 열심히 주님을 증거 할 텐데……. 하지만 현대에도 똑같은 박해가 계속됩니다. 내가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 많은 유혹들, 그래서 주님의 뜻과는 정반대로 행동하게끔 하는 유혹에 넘어갈 때, 우리들은 또 한 번의 배교를 하는 것입니다.

나는 과연 어떤 길을 가고 있을까요? 배교의 길인가요? 아니면 순교의 길인가요? 바로 순교의 길이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정답의 길입니다.


참 진리를 따라 걷는 우리가 됩시다.




나를 생각하게 하는 글(정용철, '마음이 쉬는 의자' 중에서)

나는 믿는다고 하면서 의심도 합니다.
나는 부족하다고 하면서 잘난 체도 합니다.

나는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하면서 닫기도 합니다.
나는 정직하자고 다짐하면서 꾀를 내기도 합니다.

나는 떠난다고 하면서 돌아와 있고 다시
떠날 생각을 합니다. 나는 참아야 한다고
하면서 화를 내고 시원해 합니다.

나는 눈물을 흘리다가 우스운 일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나는 외로울수록 바쁜 척합니다.

나는 같이 가자고 하면 혼자 있고 싶고
혼자 있으라 하면 같이 가고 싶어집니다.

나는 봄에는 봄이 좋다 하고 가을에는
가을이 좋다 합니다. 나는 남에게는 쉬는 것이
좋다고 말하면서 계속 일만 합니다.

나는 희망을 품으면서 불안해하기도 합니다.
나는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 소속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변화를 좋아하지만 안정도 좋아합니다.

나는 절약하자고 하지만 낭비할 때도 있습니다.
나는 약속을 하고나서
지키고 싶지 않아 핑계를 찾기도 합니다.

나는 남의 성공에 박수를 치지만 속으로는
질투도 합니다. 나는 실패도 도움이 된다고
말하지만 내가 실패하는 것은 두렵습니다.

나는 너그러운 척하지만 까다롭습니다.
나는 감사의 인사를 하지만 불평도 털어놓고 싶습니다.

나는 사람들 만나기를 좋아하지만 두렵기도 합니다.
나는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미워할 때도 있습니다.

흔들리고 괴로워하면서 오늘은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다음이 있습니다. 그 내일을 품고
오늘은 이렇게 청개구리로 살고 있습니다.

 

 

 

 

When they hand you over, do not worry about

how you are to speak or what you are to say.

You will be given at that moment what you are to say.

For it will not be you who speak

but the Spirit of your Father speaking through you.

 (Mt.10.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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