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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76) 우울했던 세례식 날 / 장영일 신부님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7-07-09 조회수929 추천수12 반대(0) 신고
 
 
 
 
 
 
7월 둘째주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순교자 대축일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마태 10,17-22)
 
 
 
                              우울했던 세례식 날
 
 
                                                      글쓴이: 대구 효목성당 장영일 주임신부
 
 
보좌신부 생활 2년 반 만에 본당 주임신부로 발령을 받았다.
너무 설레어 잠이 오질 않았다.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된 곳이었는데 성당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어른 키만큼 자란 풀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성당 벽에 달아서 낸 슬레이트를 씌운 작은 방에 짐을 풀고 1m폭의 주방 겸 샤워장의 사제관 생활이 시작되었다.
 
한여름 뙤약볕에 달아오른 슬레이트가 식기 전에는 잘 수가 없어 새벽 서너 시에야 겨우 잠들곤 했다.
성당 마당 가운데쯤 덩그렇게 세워진 화장실은 일찍 가지 않으면 사람들 틈에 끼어 줄을 서야 하기에 늦잠도 잘 수 없었다.
 
등에 업힌 아이까지 헤아려 겨우 100명이 될까 말까 한 본당 식구들과 함께 참 많은 일을 했다.
 
 
교리실 한 칸을 지으려고 온갖 궁리를 할 때 어떤 회사가 쓰고 있던 조립식 건물을 철거한다고 하여 그 건물을 밤새 성당으로 옮겼다.
성당 한켠에 시멘트 콘크리트를 치고 그 위에 뜯어 온 조립식 건물을 재조립했다.
그리고 신자들과 집집마다 예비자 교리반 안내서를 돌렸다.
 
인근의 선배 신부님이 영세식을 할 때마다 나를 불렀는데 매번 400여 명이 세례를 받았다
우리 본당 전체 신자보다 더 많은 세례자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동네가 커져서 전입자도 늘고 영세자도 늘었다.
성당이 좁아서 한쪽 벽을 허물고 건물을 넓히기로 했다.
 
남자교우들은 퇴근 후 피곤한 몸에도 성당에 와서 시멘트를 비벼서 콘크리트를 만들어 부었고 자매님들은 매일 밤마다 국수를 삶아내었다.
성당은 기역자 모양이 되었다.
할머니들은 리어카를 끌고 읍내의 온갖 고물과 폐지를 모아 성당으로 날랐다.
3년간 머물렀던 그 본당을 떠날 때 예비자 교리반의 숫자는 100명이 넘었다.
 
 
지난 주일, 130명이 넘는 예비자 세례식이 있었다.
저마다 많은 숫자라고 기뻐했지만 나는 많이 우울했다.
'어떻게 이 큰 성당에서 150명도 못되는 세례식을 하고도 이렇게 대견해 하는가?
 
우리가 이제는 저마다 종교를 가지고 있어서 전교할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 동안
개신교회는 주변에 수도 셀 수 없을 만큼 늘어났다.
개신교 신자들이
술,
담배,
제사금지에
십일조 의무까지
지키기 어려운 사항까지 가르쳐가며 선교하려면
얼마나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까 상상해 본다.
 
 
만일 천주교 신자에게도
술과
담배를 금하고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하고
십일조의 교무금을 바치라고 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오늘날 우리들의 어디에서 순교성인들의 정신을 확인할 수 있을까?
박해의 그 시절에도 선교는 이루어졌다.
 
                ㅡ 가톨릭 다이제스트 중에서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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