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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원 아들 보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 이인주 신부님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7-09 조회수877 추천수10 반대(0) 신고
 
 
원 아들 보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아들 때문에 이렇게 생고생을 한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는 늦둥이를 보느라 온갖 수난을 당해야만 했다. 물론 행복한 고민일 수는 있긴 하지만, 그 진행과정이 안타깝다.
 
그냥 하느님을 잘 믿어왔던 사람답게 과학적으로 믿기지 않았어도, 하느님이 전지전능하신 분임을 그냥 신뢰하고 믿었으면 적어도 벙어리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을, 아들 보는 기쁨 이전에 졸지에 수난을 겪어야만 했다.
 
세상에 나오는 아들을 보고 아버지 즈가리야는 아마도 이렇게 이야기 하지 않았을까 싶다. “원 아들 보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요한의 탄생을 보며 우리가 깊게 깨달을 수 있음은 믿음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음이다.
 

늦둥이, 태어난 늦둥이 이름 짓기는 나름대로 힘이 들 것이다. 아이를 낳아 봤어야 이름을 지을 것이 아닌가? 뭔 일이든지 처음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째는 덜 어려운 것이 상식이다. 그래 나름대로 고민도 했겠지만, 전통을 따라 즈가리야라 지으려 했는데, 그걸 못하게 한 것이 바로 하느님이시다.
 
이건 무엇을 의미함일까? 하느님과 직접 연관 되었다함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분과 밀접한 그만큼 그분의 말씀을 안 들으면 안 됨을 의미함이다. 이런 상황을 더 처절하게 느끼게 한 것은 요나서의 요나가 아니었던가?
 
그는 아예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반대로 갔다. 그러나 지 맘대로 갈 곳에 가질 못했다. 왜인가? 하느님을 거역하고 가는데 하느님께서 그 사람을 그냥 둘 것이라 생각했는가? 절대로 그대로 안 두셨기에 바다 속에 삼주야 집어 쳐 넣어졌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를 죽이지는 않으셨다. 그건 또 왜일까? 하느님은 사람을 절대로 벌하시려는 분이 아니시다. 어떤 방법으로든지 그 사람이 제대로 된 사람으로 나가게 하는 그런 분이시다. 그럼으로 그를 죽음으로부터 살려 내시어 올바른 사람으로 거듭나게 만드신 것이다.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이시다. 뿌리 있는 가문의 사람이긴 하지만, 그 가문을 통해 하느님의 아들의 길을 닦는 사람을 탄생시키려 하심이니, 그 정도의 통과제의는 치러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싶다.
 
물론 하느님은 절대로 벌하시는 그런 분이 아니시기에, 먼저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거나, 벌하시는 그런 분이 아님을 직관할 줄 알아야한다. 하느님은 우리의 잔 머리로 헤아릴 수 있는 그런 분이 아니시기에, 그분의 넓음 안에서 나오는 배려 안에 숨어 있는 도구로 씀의 모습을 잘 알아들으려 해야 한다.
 
물론 즈가리야를 뭐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라면 어느 선에선 의심을 가진다. 그러나 하느님은 즈가리야가 그 정도는 인내해 낼 사람임을 아시고 그에게 벙어리 몇 달을 허락하신 것이라고 본다.
 
대신 그 늙은 나이에 아들을 얻음과 동시에 영광의 아들을 얻은 것이 아닌가? 세례자 요한이 보통의 아들인가? 예수님께서 뭐라 표현하셨는가? 사람 중에 가장 으뜸의 사람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의 아버지 됨이 그리 간단하겠는가 말이다.

말은 좀 다르지만, 인간이 육에서 영으로 거듭나는 과정엔 반드시 치러야 할 통과제의들이 있다. 예수회의 경우, 수련원에 입회하여 2년의 수련을 세속과 완전히 끊고 살아야하는데, 그때 여차여차 사유로 사람들이 무작정 면회를 오는 경우가 있다.
 
물론 부모도 허락된 시간이 아니면 면회가 안 된다. 그런데 내 경우엔 친한 벗이 먼저 사제가 되어, 고생하는 늙은 수련자를 만나러 왔는데, 수련장 신부님께서 허락을 안 하시자, 같은 신부끼리 뭘 그렇게 박하게 하시느냐고 하는 그런 모습을 이층 공부방 창가에서 보면서, 아! 이것이 육에서 영으로 나아가는 통과제의 중에 하나구나 생각하니 좀 가벼워지긴 했지만, 그 때 그 기억은 평생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허긴 이런 통과제의 없이 쉽게 모든 일들이 이뤄진다면 그것도 은총이긴 하지만 좀 싱겁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분이 주시는 그 느낌대로 뭔가를 제대로 해 나갈 수 있도록 함이 옳다고 본다. 그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영적인 삶을 허락하는 것이다.
 
그것을 달리 표현한다면 통과제의를 통과한 이들은 수사나 신부의 타이틀을 가지고 살아가는 영광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즈가리야가 그런 벙어리 됨의 통과제의 없이 과연 그런 훌륭한 아들을 둘 수 있었을까 생각하니, 세상엔 공짜 없고, 하느님은 참으로 공평하신 분임이 드러난다. 하느님께 감사가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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