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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금 여기’에 충실한 삶' --- 2007.7.13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7-07-13 조회수603 추천수6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7.7.13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창세46,1-7.28-30 마태10,16-23

                                                    
 
 
 
 ‘지금 여기’에 충실한 삶'


세상 어디에도 이상적인 유토피아 공동체는 없습니다.

이상적인 공동체,
다분히 환상일 뿐
어디서나 양상만 다를 뿐
문제들 지닌 불완전한 공동체입니다.
 
하나하나 만나면 좋은 사람들인데
모이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공동체가 되기도 합니다.
 
아무리 거룩한 사람들도 모이면 세속이 되는 이치와 흡사합니다.
 
밀과 가라지의 비유에서
주인에게 아뢰는 종들의 탄식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주인님,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이래서 공동체의 신비입니다.
 
선과 악,
밀과 가라지,
양과 이리가 공존하는 공동체입니다.
 
비단 공동체만 아니라
우리 안에도 선과 악, 밀과 가라지, 양과 이리가 공존하니
우리 또한 사회의 축소판 같기도 합니다.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주님은 이리떼 세상 가운데서 생존 비법으로
뱀 같은 지혜와 비둘기 같은 순박함을 겸비할 것을 가르치십니다.
 
죽어서만 순교가 아니라 살아서도 순교입니다.
 
사람들을 조심해야하는 상황,
오늘 복음의 경우나 오늘의 살벌한 세상이 똑같습니다.
 
약육강식의
이리떼 세상 가운데서 살아간다는 자체가 순교적 삶입니다.

과연 이런 이리떼 세상 가운데서
어떻게 인간 품위를 유지하며 아름답게,
몸과 마음 다치지니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지금 여기를 살 때입니다.
 
있어야 할 제자리에서 갈림 없는 마음으로
본질적 삶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1독서 창세기의 야곱,
늘 깨어 지금 여기를 살았음을 다음 묘사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야곱아, 야곱아!”하고 부르시자,
“예, 여기 있습니다.”하고 그가 대답하였다.’

과연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께서 부르신다면
“예, 여기 있습니다.”하고 대답할 수 있겠는지요?
 
진정 힘든 것은 몸 약함이 아니라 마음 갈림입니다.
 
몸이 약하고 병이 있어도 마음 하나로 모아져 있으면 살지만,
몸 건강해도 마음 갈라져 있어
몸은 여기 있는데 마음 ‘저기’ 있으면 참 살기 힘듭니다.
 
진정 갈림 없는 마음으로
지금 여기 본질적 삶에 충실할 때
아름답고 풍위 있는 삶입니다.

이런 삶, 아무런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 안에 계신 아버지의 영이 뱀 같은 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또 복음 말씀대로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습니다.
 
지금 여기에 깨어 충실할 때
주님은 끝까지 견딜 수 있는 힘과
비둘기 같은 순박함을 선물로 주십니다.

알고 보면 지금 여기가 영원이요,
하느님의 집이자 하늘 문입니다.
 
하느님을 만나는 구원의 장소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주님의 부르심에 “예, 여기 있습니다.” 응답하는 우리 모두에게
주님은 뱀 같은 지혜와 비둘기 같은 순박함을 선사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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