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07-14 조회수827 추천수14 반대(0) 신고
 
2007년 7월 14일 연중 제14주간 토요일
 
 
 
 
Do not be afraid of those who kill the body but cannot kill the soul.
(Mt.10.28)
 
 
제1독서 창세기 49,29-31.33; 50,15-26ㄱ
복음 마태오 10,24-33
 
내년이면 우리 본당이 설립된 지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꽤 오래된 성당이지요? 그런데 오래된 성당이다 보니 연세 드신 분들도 많고, 따라서 환자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씩 있는 환자 봉성체는 보통 2시간 30분에서 3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사실 적은 시간이 아닙니다. 이 정도의 시간을 수녀님과 봉사자들이 함께 다니고 난 뒤에는 모두 피곤함으로 힘들어하지요. 또한 봉성체 대상자인 환자와 그 환자가 있는 구역과 반원들도 언제 올지 모르는 저를 기다리느라 힘들어 하십니다. 그래도 어떻게 합니까? 신부가 저 혼자밖에 없으니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려도 기다릴 수밖에요.

그런데 어제는 봉성체 하는 시간이 1시간 30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봉성체를 신청하신 환자가 줄었을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2명 더 늘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성의 없이 속성으로 했을까요? 아닙니다. 전과 똑같이 아니 전보다도 더 천천히 정성을 다해서 봉성체를 했습니다. 그렇다면 시간이 왜 줄었을까요?

바로 우리 본당에 사목실습을 나온 부제님과 함께 봉성체를 했기 때문입니다. 한 명이 하는 봉성체를 두 명이 나눠서 하다 보니 천천히 해도 시간이 절약이 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지요. 그러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우선 봉성체를 함께 다니는 수녀님과 봉사자들이 빨리 끝나니 좋아하지요. 그리고 봉성체 대상자인 환자와 그 환자의 구역반원들도 기다리는 시간이 짧아서 좋아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가 빨리 끝나서 너무나도 좋습니다. 단지 부제님 한 분이 우리 성당에 오셨을 뿐인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편함과 혜택을 줄 수 있네요.

문득 이러한 생각을 해 봅니다. ‘나’라는 인물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정말로 많은 사람들에게 편함과 혜택을 주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많은 사람들에게 아픔과 상처를 주는 사람일까요?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당신의 사랑을 전하는 일꾼들이 많아지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하는 복음 선포의 사명이 우리 각자에게 주어졌습니다. 이로써 세상 사람들에게 기쁨과 평화와 행복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걱정만 할 뿐,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이 모습이 과연 하느님의 창조 목적과 맞아 떨어질까요?

오늘 복음을 통해서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거꾸로 영혼을 죽이고 심판할 수 있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라는 말과도 같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나의 모습은 과연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일까요?

사랑을 전하고 실천하라는 그래서 이 세상에 주님의 기쁜 소식이 선포되는데 큰 힘이 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창조 목적에 부합되는 것이며, 하느님을 두려워하면서 열심히 생활하는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아이(홍성중 엮음, '행복을 나르는 배달부'중에서)



한 아이가 운동 도중 넘어져 오른팔이 부러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람들이 구급차를 부르러 달려가는 동안 소년은 옆에 있던 친구에게 말했다.

"연필 좀 빌려줄래?"

친구가 의아해서 물었다.

"연필은 왜?"

"오른팔이 부러졌으니 왼팔을 사용해야 하잖아. 지금부터라도 왼손으로 글씨 쓰는 법을 연습하려고."

사람들은 인생을 살면서 보통 몇 차례의 커다란 위기와 부닥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한탄만 하고 주저앉아 있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절망과 같은 높은 벽 앞에서도 위험을 벗어나는 비상구를 찾아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어떤 절망적인 상황도 기회가 됩니다.

 

 

"No disciple is above his teacher,
no slave above his master.
It is enough for the disciple that he become like his teacher,
for the slave that he become like his master.
(Mt.10.24-25)

 

 
사랑의 속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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