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성호 신부(수원교구 모산골 천주교회)
◆신학생 때 복음 묵상을 하면서 적어놓은 노트를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어떻게 저런 묵상을 할 수 있는지 스스로 대견스러울 정도로 훌륭한 묵상이 있는가 하면, 말 그대로 ‘유치 뽕짝’인 내용을 담고 있는 부분도 있다. 그만큼 순수하고 열정 가득했던 신학생의 모습을 담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다시 그때로 돌아가 초심을 잃지 않고 나를 다잡으려고 노력한다.
그때도 오늘 복음과 동일한 부분을 읽고 묵상했다. 내 머리카락 한 가닥까지도 모두 다 세어놓으셨다는 주님의 말씀이 무척 두렵고 겁나서 조심조심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은근히 소심해지기도 했고, 아침에 머리를 감고 나면 세면대 위에 빠져 있는 머리카락을 세어보면서 ‘오늘은 몇 가닥이 빠졌는데 주님도 잘 헤아리고 계시려나.’ 하면서 혼자 거울을 보며 히죽거렸던 기억도 새롭다. 그런데 이제는 주님 말씀 때문에 소심해지거나 그분께서 두려운 분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내 머리카락 하나까지도 다 세어두실 정도로 나를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분이 하느님이시며, 그 누구보다도 나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신 분이 또한 하느님이심을 마음속 깊이 느끼게 되었으니 말이다.
사제 수품을 앞두고 피정을 할 때 ‘하느님께서는 내가 죄를 짓고 있는 순간에도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해주시기 위해서 망을 보고 계신다.’는 말씀을 듣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만큼 나를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시는 분이 하느님이심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사람들에게 그분을 알고 있다고 증언할 수 있다. 주님은 무섭거나 두려운 분이 아니라 참으로 좋으신 아버지라고 말이다. 예수님도 이러한 내 모습을 보고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나를 알고 계신다고 증언해 주시길 겸손하게 청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