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07-19 조회수1,138 추천수17 반대(0) 신고
 
2007년 7월 19일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Come to me, all you who labor and are burdened,
and I will give you rest.
(Mt.11.28)
 
 
제1독서 탈출기 3,13-20
복음 마태오 11,28-30
 
지난 학기에 저는 인천 가톨릭대학교 종교미술학부에서 강의를 했었습니다. 물론 미술에 전혀 재능이 없는 제가 미술 전공과목을 강의한 것은 아니고요, ‘종교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교양과목을 강의했었지요.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수강 신청을 했습니다. 처음으로 해보는 대학 강의이기에 나름대로 노력해서 강의 준비를 했고, 최대한 열심히 강의를 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학생들이 써 주는 강의 평가가 다 좋더라고요.

‘부정적인 평가가 좀 많아야, 내년에는 강의를 맡아달라는 이야기가 없을 것 같은데…….’라는 걱정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니 기분은 좋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청년성서모임을 통해서 알게 된 청년이 오랜만에 찾아왔습니다. 오랫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이 청년이 저의 학교 강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친구가 현재 인천 가톨릭대학교 종교미술학부를 다니고 있거든요.

“신부님, 제가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말씀드릴게요. 신부님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 사이에서 신부님 인기가 6월 초까지는 하늘을 찔렀답니다. 강의를 재미있게 그리고 열의를 다해서 하신다면서 아주 인기가 많았어요. 그런데 학점 주신 것 때문에 그 인기가 없어진 것 아세요? 왜 그렇게 학점을 짜게 주셨어요? 어떤 아이는 C 맞았다고 하던데……. 교양과목인데 그렇게 점수를 짜게 주세요?”

저 역시 나쁜 점수 주고 싶었겠습니까? 더군다나 전공도 아닌 교양과목인데, 모두에게 A+ 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학교 측에서는 상대평가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등수에 따라 학점을 주라고 말하니 어쩔 수가 없었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학생들의 반응인 것입니다. 처음에는 저에 대해서 긍정적인 평가를 하더니만, 막상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았다고 곧바로 부정적인 평가로 돌아서는 학생들의 모습. 어쩌면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마음이 바로 우리 인간들의 일반적인 마음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하긴 내 자신만을 쳐다보아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음이 바뀌는 것을 보니 이렇게 부족한 인간에게 의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깨닫게 되네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당신께 의지하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인간에게 의지한다는 것은 대단한 모험을 필요로 합니다. 왜냐하면 어디로 튈지 모를 럭비공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에 반해서 한결같은 마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주님께서는 결코 그렇지가 않습니다. 럭비공 같은 우리들을 당신의 따뜻한 품으로 받아주시고,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들을 지켜주십니다.

문제는 우리들 자신입니다. 스스로 주님의 품을 뛰쳐나갔으면서도 마치 주님께서 우리들을 내쫓은 듯이 생각하고, 또 다른 부정적인 생각으로 주님까지도 부정하려고 합니다.

이제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십시오. 주님의 멍에는 편하고 그 짐은 가볍습니다.
 
공부합시다. 무슨 공부든…….




누군가의 파랑새가 되자(김형권, '인생은 단막극이 아니다'중에서)



어떤 사람이 한밤중에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차가 고장이 나서 길 한복판에 멈춰 서고 말았습니다.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이라 꼼짝없이 도로에서 밤을 세워야 할 판이었죠. 답답한 마음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저만치에서 웬 차가 한 대 멈춰섰습니다. 차에서 한 남자가 내리더니 무슨 일이냐고 묻더랍니다. 차가 고장 났다고 했더니 그 사람은 대뜸 팔을 걷어붙이고 자동차를 한참 살폈습니다.

"이제 된 것 같은데 시동 한번 걸어 보시죠!"

'과연 고쳐졌을까?'하는 마음에 좌석에 앉아 키를 돌리자 '부르릉~' 드디어 자동차의 시동이 걸렸습니다. 차 주인은 고마운 마음에 그 사람을 붙잡고 인사를 했습니다.

"어휴! 고맙습니다. 수리비를 얼마나 드리면 될까요?"

"아! 됐습니다. 저는 차를 고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큰 고장도 아닌 걸요. 그냥 가세요. 시동이 걸려서 정말 다행입니다."

"그럼 성함이나 연락처만이라도 알려 주세요."

다음 기회에 후사할 생각으로 차 주인이 재차 물었지만 그는 고개만 설레설레 흔들고는 훌쩍 떠나 버렸답니다. "그냥 파랑새라고 불러 주십시오."라는 말만 남기고서요.

그 뒤, 이 고속도로에는 50명의 파랑새가 나타났답니다. 이렇게 도움을 받은 사람은 다음에 길을 가다가 자신의 경우와 같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 차를 보고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얼마 뒤 나 또한 그 파랑새를 만났답니다. 대학생인 아들 녀석이 좁은 시골길을 운전하다가 운전 미숙으로 개천에 차를 빠뜨렸을 때의 일입니다.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고 있는데, 마침 그 옆을 지나던 젊은이들이 달려들어 차를 번쩍 들어서 빼내 주었습니다. 그러고는 고맙다는 인사도 미처 하지 못했는데 훌쩍 떠나 버리더군요.

우리는 사는 동안 알게 모르게 수많은 파랑새를 만납니다. 택시 운전을 하고 있는 나에게는 내 차를 타는 손님들이 파랑새인 셈이지요. 한 마리의 파랑새가 하루에 열 마리의 파랑새를 만든다면 우리나라 4,500만 명이 전부 파랑새가 되는 데 일주일 남짓 걸리고, 60억 전 인류가 파랑새가 되는 데는 열흘이 채 안 걸린답니다. 어때요? 당신도 누군가의 파랑새가 되어 보시지 않으렵니까?
 


For my yoke is easy, and my burden light.
(Mt.11.30)
 
 
Shape Of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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