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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농촌 할머니들을 잠시 '유괴'하다/살다보면 이런 '웃음'도 있고…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07-07-19 조회수602 추천수6 반대(0) 신고
                                            농촌 할머니들을 잠시 '유괴'하다 
                                             살다보면 이런 '웃음'도 있고…
    



꽤 한참만에 글을 쓰는 것 같다. 시간은 또 쏜살같이 흘러서 벌써 일주일 전 일이 되었지만, 지난 12일(목) 오후에 있었던 재미있는 사건(?) 하나를 즐겁게 기억한다. 지금도 그 일을 떠올리면 절로 입가에 웃음이 그려진다.

충남 태안읍 동문리에 '신태루'라는 중국음식점이 있다. 태안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음식점이다. 내가 중학생 시절부터 다니며 자장면을 먹은 집이니, 특히 나 같은 나이 먹은 토박이들한테는 어린 시절의 추억도 많이 어려 있는 집이다.

오랜 세월 동안 주인은 단 한 번 바뀌었을 뿐이다(건물 주인은 그대로고…). 두 번째 주인인 지금의 정창교 아우는 20년 가까이 신태루를 운영한다. 종업원은 두지 않고 부부가 함께 일한다. 방이며 홀이 넓지도 않고 적이 허름한 상태여서 손님은 별로 많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배달 주문이 많다. 정창교 아우는 오토바이로 음식 배달을 하느라 특히 점심때는 정신 없이 바쁘다. 그는 오토바이가 두 대나 된다. 한창 배달을 할 때 오토바이가 고장날 것을 대비하여 한 대를 더 장만해놓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지만, 과거 한때는 종업원도 있었던 것을 나는 안다.

내가 정창교 아우와 친숙하게 지낸 세월도 얼추 10년을 헤아린다. 지금은 대학생인 그의 딸이 초등학생이던 시절 내 아내가 한 해 담임을 맡은 적이 있다. 그때 그쪽 부부와 우리 부부가 함께 저녁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부터 어딘가 죽이 잘 맞는 그와 나는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었다.

가끔 신태루에서 '가족 외식'도 하며 왕래를 하다보니, 정창교 아우가 특히 노인 접대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노인 손님들이 오시면 꼭꼭 소주를 대접하고, 기껏해야 자장면이나 짬뽕을 드시는 노인들께 안주로 군만두를 드리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그를 좀 도와 줄 생각을 했다. 그 집에 정수기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노상 해미성지 물을 마시고 사는 나한테는 그 집 물에서 소독냄새가 나는 사실에 유의하여 일주일에 한 번씩 해미성지 물을 길어다주겠노라고 했다.

천주교 신자가 아닌 그들 부부에게 해미성지와 내가 일주일에 한 번씩 70리 거리인 해미성지에 가서 길어다가 여러 집들에 나누어주는 '사수(四水-생수·성수·약수·육수)'를 설명하는데는 다소의 시간과 수고가 필요했다.

그들 부부는 처음에는 사양을 했지만, "손님들께 좋은 물을 대접하면 더 좋지 않겠나. 더 많은 사람들이 좋은 물을 마시게 될 테니, 신태루 덕분에 하늘에 쌓는 내 공도 더 커지지 않겠나" 하는 등의 말로 계속 권유를 하니, 결국엔 내 호의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신태루에 내가 일주일에 한 번씩 해미성지 물을 길어다 준 세월도 벌써 7·8년을 헤아린다. 요즘엔 매주 수요일에 그 일을 하는데, 해미성지 물을 길어오면 맨 먼저 신태루부터 들러 물을 세 통씩 내려준다. 현재는 도합 아홉 집에 물을 드리는데, 신태루에 가장 많이 주는 셈이다. 한 통은 2층 살림집에서 사용하고, 두 통은 음식점에서 쓴다고 한다.

신태루는 다소 복잡하고 좁은 골목 안에 있어서, 물통 거두는 일과 물을 내려주는 일이 때로는 차량 소통 때문에 다급하기도 하고 힘들지만 그것을 즐겁게 감수한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꼭 만나는 자별한 사이라, 종종 나 혼자 가서 식사 대접을 받기도 한다. 어머니가 집에 계시지 않아 나 혼자 점심을 먹게 될 때는, 집에서 혼자 밥을 차려 먹는다는 게 괜히 쓸쓸하고 귀찮기도 해서 신태루로 걸음을 하곤 한다.

내가 혼자 점심을 먹으러 가끔 신태루로 걸음을 하는 날은 대게 목요일이다. 어머니께서 오전에 성당에 가시는 날이다. 어머니는 목요일 오전 10시 30분 레지오 단원들을 위한 미사에 참례하신 다음 레지오 쁘레시디움 주회를 하시는데, 레지오 모임 후에 친구들과 어울려 점심까지 잡수고 오시는 때가 종종 있다.

어머니는 외식을 하실 때는 내게 전화를 하고 내 점심 걱정을 하신다. 그때마다 나는 어머니께 내 걱정은 말고 마음놓고 잘 노시다가 오시라고 하면서, 걸어오시기가 힘들면 다시 전화하시라는 말도 하는데, 나 혼자 집에서 밥을 차려먹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지난주 목요일도 그런 경우였다. 레지오 단원들과 외식을 하신다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나는 외출을 했다. 또다시 신태루로 걸음을 했고, 자장면으로 점심을 먹었다.

혼자 점심을 먹으면서 바로 옆 식탁에서 할머니 두 분이 자장면을 드시는 것을 보았고, 또 한 차례 배달을 나갔다가 막 돌아온 정창교 아우가 일흔이 넘어 보이는 할머니들께 농담을 하며 소주를 대접하는 것도 보았다.

그런데 또 하나의 주문 전화를 받은 정창교 아우가 갑자기 난감한 얼굴로 거듭 한숨을 내쉬어서 나는 연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남면 진산리 '송림파크'라는 집에서 자장면 두 그릇을 갖다달라는 주문인데, 그 주문을 거절할 수도 없고, 거기까지 자장면 두 그릇 싣고 오토바이 타고 가자니 절로 한숨이 나온다고 했다.

남면 진산리의 그 곳은 시오리도 넘는 거리다. 내가 여러 번 1시간 15분 정도 걸어서 가본 곳이다. 해변 길을 따라 그곳까지 갔다가 오토바이를 타고 음식 배달을 온 정창교 아우를 두어 번 만난 적도 있다.

전날 가족과 함께 경북 김천시의 처가를 다녀오느라 10시간 이상 운전을 했다는 말도 하며 정창교 아우는 거듭 한숨을 쉬었다. 그때 자장면을 드시던 두 할머니가 참견을 했다. "차라리 근처 점방에 가서 라면을 사다가 끓여 먹는 게 낫지, 그 먼 디서 워떻게 자장면 두 그릇을 갖다달라구 즌화를 헌다나?"하며 혀를 차기도 했다.

나는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주문을 받었으니 안 갈 수 읎잖여? 내 차로 갔다 오세"하니, 정창교 아우는 "내가 헐 일인디, 형님이 왜 그런 일까지 허신대유"하며 고개를 저었다.

"요즘엔 피서객들 때문에 차량 통행두 부쩍 늘었구, 오토바이로는 위험혀. 그리고 어제 열 시간 이상 운전을 혔다며? 그러니께 내 차루 갔다 오자구."

그러자 정창교 아우와 부인보다도 옆자리의 두 할머니가 더 좋아했다. 알고 보니 남면 진산리 '송림파크' 근처에서 사시는 할머니들이었다.

나는 서둘러 식사를 마쳤다. 내 차는 멀지 않은 우체국 마당에 있었다. 차를 가지고 나와 우체국 마당에다 놓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나는 바삐 우체국으로 가서 내 승합차를 몰고 왔다.

그 사이에 정창교 아우는 자장면 두 그릇을 만들었고, 일행은 곧 내 승합차에 올랐다. 차에 실린 '철가방' 안에서 자장면 냄새가 흘러나와 차 안을 감돌았다. "그러고 보니, 내 차에 중국음식점 철가방이 실린 건 오늘이 처음이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특별헌 날이여." 나는 그 사실이 재미있기도 해서 즐겁게 농담을 했다.

"오늘은 이 두 할머니가 제일 재수좋은 날이유. 더운 날씨에 차부까지 걸어가지 않어서 좋구, 차비두 벌어서 좋구, 완전히 할머니들 상 받는 날이네유. 안 그류?"
"그러니께 우덜이 신태루 단골을 허는 거지. 이런 날두 있을 걸 다 알구."
"이런 날두 있을 걸 아셨다구요? 차암 용허신 할머니네유."
"그러니께 신태루 단골이지."

나는 정창교 아우와 할머니들 사이에 오가는 농담을 들으며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농촌 할머니들치고는 센스도 있고 위트도 있는 분들로 느껴져서 괜히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아맹이 고개 신호등 지점을 벗어나 달릴 때 한 할머니의 휴대폰이 울렸다. 나는 정창교 아우의 휴대폰인 줄 알았는데, 전화를 받는 이는 한 분 할머니였다. 농촌 할머니가 휴대폰까지 지녔으니, 그것은 자식들의 효성을 표징하는 것일 수도 있을 터였다.

"우리 아드님이구먼? 응, 점심 먹었어. 신태루서 자장면 맛있게 잘 먹구 차를 탔는디, 내가 뻐스를 탄 게 아녀. 왜 뻐스가 아니냐구? 글쎄, 워떻게 된 건지 나두 잘 물르겄어. 워떤 물르는 아저씨가 태워다준다구 헤갖구서 그냥 고마운 마음으루다가 봉고차를 탔는디, 가는 방향이 이응 달른 것 같어. 암만헤두 우덜이 납치를 당헌 것 같어."

"엥? 납치요? 그류, 맞유. 납치유, 납치!"

정창교 아우는 큰소리로 웃었다. 나는 잠시 놀랐다가 함께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일흔이 넘으신 할머니의 머리에서 어떻게 그런 유머가 순간적으로 나올 수 있는지 신기하기도 했다. 할머니는 통화를 계속했다.

"시방 납치범들이 웃구 난리났는디, 너무 걱정은 말더라고. 납치가 별루 길지는 않을 팅께. 응, 그려. 워디루 가는지는 물러두 시방 잘 가구 있어. 곧 갈 껴. 응, 그려."

할머니가 통화를 마쳤을 때 나는 거울 속으로 할머니를 보며 기분 좋게 웃음소리를 날렸다.

"할머니 덕분에 지가 오늘 생전 츰 납치범까지 돼봤네요. 오늘은 중국음식점 배달원 노릇에다가 납치범까지 됐으니, 증말루 오늘은 나헌티 특별헌 날이네요. 허허허."

잠시 후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차에서 내린 할머니들이 내게 말했다.

"언제 또 신태루서 만나면, 오늘 우덜이 번 차비루 고량주 한 잔 대접헐 게요."
"우리 두 사람 차비를 합허면 고량주 한 병 값이 될라는지는 물러두…."

나도 웃으며 한마디했다.

"고량주 마시구 또 할머니들을 납치허면, 그때는 지가 진짜루 납치범이 될지두 물류."

돌아오면서 유머 있는 할머니들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하면 그것은 중국음식점 신태루 덕이기도 하고, 정창교 아우 덕이기도 하고, 시오리 밖에서 신태루로 자장면 두 그릇을 주문한 송림파크 덕이기도 하고, 노친에게 휴대폰을 장만해 드리고 집에 잘 오시나 확인 전화를 한 그 할머니의 아드님 덕이기도 하고, 또 목요일 덕이기도 하고, 성당에 가신 내 어머니 덕이기도 할 터였다. 하여간 많이 웃어본 날이었다.  


  2007-07-19 09:52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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