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07-20 조회수1,115 추천수13 반대(0) 신고
 
2007년 7월 20일 연중 제15주간 금요일
 
 
The Feast of the Passover
 
 See, your disciples are doing
what is unlawful to do on the sabbath.
(Mt.12.2) 
 
제1독서 탈출기 11,10─12,14
복음 마태오 12,1-8
 
예전에 어떤 분의 초대로 호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한 번도 그러한 호텔 레스토랑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더군다나 호텔 레스토랑에서는 지켜야 할 에티켓이 많다면서요? 하지만 어떤 에티켓이 있는지도 잘 모르는 저로써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지요. 글쎄 식사를 하는 데에도 갈등을 갖게 하더군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많은 포크와 칼은 도대체 어떤 용도로 써야 하는지요? 포크는 음식을 찍어 먹을 때 쓰는 것이고 칼은 음식을 써는데 쓰는 것이 분명할 텐데, 그냥 하나씩만 있으면 될 것을 왜 이렇게 많이 있어서 저를 헷갈리게 하는지요? 또한 음식도 처음 접하는 것이라서 어떻게 먹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그 자리가 얼마나 불편했는지 모릅니다. 김치찌개를 잘하는 동네의 백반집이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저는 성질이 좀 급한 편입니다. 그러다보니 식사 시간도 남들보다 훨씬 빠르지요. 그런데 그날은 좀 달랐습니다.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를 모르니,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먹는지부터 살필 수밖에 없었지요. 남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가능한 한 다소 느긋한 태도를 가장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저를 초대하신 그 분께서는 무슨 음식이 나오면 항상 저 먼저 먹기를 권하십니다. 따라 하기도 벅찬 저에게, 어떻게 먹어야 하는 지도 모르는 저에게 먼저 권하는 그분이 그렇게 밉게 보이던 지요.

아무튼 그분은 저에게 좋은 음식을 사주시겠다고 그런 것이겠지만, 촌스럽고 무식한 저로써는 그 순간이 최악의 순간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최악의 순간이라는 그때를 떠올리면서 문득 ‘왜 그랬을까?’ 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누구나 처음부터 다 아는 사람은 없지요. 따라서 그 순간 솔직하게 “저 이런 곳에 처음 와서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잘 모릅니다. 가르쳐주십시오.”라고 말했다면, 그렇게 땀 흘리면서 식사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무식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즉 내 자신을 상대방에게 드러내려는 마음에 나의 본 모습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 결과 최고의 식당에서 최악의 식사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화를 내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보십시오. 선생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안식일 법을 확대 해석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밀 이삭을 뜯어 먹었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추수와 타작의 일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밀 이삭을 뜯음은 추수하는 것이고, 먹기 위해서는 밀 이삭을 비벼서 겨를 날려 버려야 하니까 이것이 바로 타작의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모든 계명의 핵심은 ‘사랑’임을 강조하십니다. 그래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배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는 제자들에 대한 배려는 생각하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만 안식일 법을 확대 해석하는 바리사이들을 꾸짖고 계시지요.

바로 그들 앞에 최고의 분이 계시지만, 그들은 자신이 잘 났다는 것을 드러내려는 마음 때문에 오히려 그분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도 그러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하느님 아버지께서 마련하신 이 세상은 최고의 장소입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나 잘났음만을 드러내려는 욕심과 이기심으로 이 최고의 장소를 최악의 장소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은 지금 있는 자리를 최고의 장소로, 지금 만나는 사람을 최고의 분으로 만드는 비결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한 겸손함을 가지고 계시지요?


모르면 모른다고 합시다. 훨씬 편합니다.


 

장점을 찾아내는 것도 능력(이택희, '항상 최고가 되는 연습을 하라'중에서)


 
한 연설자가 청중을 모아 놓고 열심히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재미없는 연설에 청중들은 10분도 채 안 되어 반응을 나타냈다. 다들 몸을 뒤틀며 지루한 기색이 역력한 가운데 유독 한 사람만이 처음부터 끝까지 귀를 기울여 경청했다. 연설자 입장에선 그 사람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다는 사실에 연설자는 속으로 신바람이 났다.

처음엔 어색하기 짝이 없던 연설도 점차 청중들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연설자가 자신감을 갖고 이야기를 전개해 가니 지루했던 장내 분위기가 싹 달라진 것이었다. 연설을 마친 뒤 연설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준 사람 앞으로 다가와 고마운 마음에 악수를 청했다.

모 그룹 고위직 임원인 그 연설자는 훗날, 자신의 유일한 청중이었던 까마득한 후배 직원을 기억해 두었다가 중요 보직에 추천했다. 물론 단 한 번 연설을 경청했다는 이유로 중요 보직을 맡기게 된 것은 아니었다. 그날 이후에도 매사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그 사람의 태도가 자주 눈에 띄었던 것이다. 그는 특히 남의 장점 찾기를 즐겨하는 사람이었다.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이 좀 지루하긴 했지만, 듣다 보면 뭔가 흥미로운 내용이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열심히 귀를 기울였더니 그분이 얼마나 열심히 연설 자료를 준비했는지 그 노고가 느껴졌죠. 신입 사원인 저에게 꼭 필요한 내용이었고요."

이것이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연설을 경청하게 된 이유였다. 다른 사람들은 별 볼일 없는 이야기로 시간만 질질 끈다고 불평하고 있을 때 그는 연설자의 장점을 본 것이다. 그 결과 그날 연설자였던 그룹 임원의 눈에도 평소엔 보이지 않던 그의 존재가 부각된 것이리라. 상대를 진정으로 인정해 주고, 칭찬해 주며,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면 상대도 나를 인정하고, 칭찬하며, 좋아할 수밖에 없다.

먼저 오늘 내가 만나야 할 사람을 한 사람씩 머릿속에 그려 보자. 그 사람의 미소 짓는 얼굴을 생각하자. 그가 가진 장점을 떠올리고 칭찬의 말을 나지막이 되뇌어 보자. 당신은 그런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큰 부자가 된 것처럼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 상대방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입에서 그를 인정하는 말 한 마디를 던지는 순간, 상대방은 이미 당신 편이 되는 것이다.
 
 

 
'I desire mercy, not sacrifice'
(Mt.12.7)
 
 
For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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