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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느 여행길의 쉼터에서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07-07-23 조회수754 추천수7 반대(0) 신고
※지난해 7월 23일에 써서 30여 명 피붙이/겨레붙이/인연붙이들에게 전송한 제 '가족메일'입니다. 내용이 좀 재미있는 것 같고, 부분적으로 조금은 참고 거리도 될 수 있을 것 같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용기를 내봅니다.  



제목 / 우리 가족 일본 여행과 관련하여, 마지막으로…  

†. 사랑·평화 (오소서, 성령님. 새로 나게 하소서)

23일, 연중 제16주일의 평온한 저녁 시간일세. 그리고 우리 가족의 일본 여행 일주일 전일세. 아직 여권이 나오지 않은 정흠이를 제외한 11명 여권의 3·4쪽을 모두 복사하여 어제 여행사에 보냈네. 그리고 우리 가족 12명의 한자 이름자를 적은 명단을 다시 메일로 보내주었네.

일본은 우리나라와 서로 비자 없이 오갈 수 있는 나라이고, 같은 한자문화권 국가라서인지 한자 명단이 필요하다고 하더군. 한자 명단이 있으면 입국 심사가 빠르다고 해서….

지난 10일 명단을 보낼 때는 '최종 명단'이라는 말과 함께 13명의 이름을 보냈네. 그런데 한 명이 빠지게 되었네. 서울 봉천동 박성동 동서의 아들 인영이 '고3'의 부담을 잠시라도 내려놓을 수가 없는 것 같네. 교회 신자들 중 명문대와 대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이 여름방학 동안 고3 신자 학생들을 맡아 1대 1로 지도한다는 계획이 마련된 모양이네. 인영이는 실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일본 여행을 포기했다고 하네. 월초에는 동서의 두 아이를 모두 데려가야 하게 생겨서 내가 여행사로, 또 태안신협 박정일 전무에게로 바삐 전화를 하는 등 신경을 많이 썼는데….            

인영이를 제외한 12명도 온전히 다 함께 일본 여행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네. 지금 안산 김세연의 할아버지 김순환 박사님께서 위중하시다고 하네. 대전의 '선병원'에 한 달 넘게 입원해 계시는데,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기셨다가 지금은 다시 중환자실에 계신 상태라고 하네.

자칫 우리 가족의 일본 여행 시기에 운명을 하실 지도 모르겠네. 그렇게 되면 안산 세연네 모녀는 빠질 수밖에 없는데, 26일에는 일단 여행경비를 모두 여행사에 입금시켜야 하니, 이래저래 걱정일세. 이런 뜻 있는 가족 행사에도 이렇게 변수와 어려움이 많으니….

안산 세연에미는 임종시기에 거의 다다르신 듯한 시아버님의 영혼 구원을 위해 대세라도 받으시게 하려고 열심히 권면을 드렸다고 하는데 아직 김순환 박사님이 하느님께 마음을 열지 않으신다고 하네. 김순환 박사님이 노년기에 들어서서도 책도 많이 읽으시고 공부를 많이 하신 분인데 하느님에 대한 탐구는 전혀 하지 않으시고 평생을 사신 것 같네.

그런 분들을 보면 내 아버님 생각을 다시 하게 되네. 조실부모한 불우한 환경에서 보통학교 3년 중퇴 학력을 가지시고도 박학다식했던 분! 일찍이 청년 시절부터 '왜 사람은 자기 뜻과는 아무 상관없이 이 세상에 나고 살고 죽는가? 이 세상의 존재는 무엇인가? 사람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인가?'라는 '물음표'를 가슴에 안고 마침내 하느님 신앙을 스스로 찾으시고 천주교를 선택하셨던 분! 그리하여 당신의 모든 자녀들에게 하느님 신앙을 고스란히 물려주신 분! 그런 아버님의 삶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다시금 되새겨보며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네.

★어느 여행길의 쉼터에서

지난 18일(화) 저녁 레지오 쁘레시디움 주회 때의 일을 다시 한번 떠올려보네. 7월 '훈화'를 맡으셔서 각 쁘레시디움들을 돌며 <어느 여행길의 쉼터에서>라는 내 시를 들려주시는 것으로 훈화를 대신하신 김 로사줄리 작은 수녀님께 감사하는 마음 크네.

그것은 너무 뜻밖이었네. 처음에는 어디에서 들어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가 내 시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수녀님이 "지 선생님의 홈페이지 첫 페이지에 올라 있는 시입니다. 이 시  안에 오늘 제가 들려드릴 모든 얘기가 다 들어 있습니다."라고 하셔서 조금은 얼떨떨한 기분이기도 했네. 수녀님은 시 낭송과 그 간단한 한마디로 훈화를 마치셨고….

내가 그 시를 외우지 못해 다시 듣고자 하는 단원들의 요청에 부응하지 못했는데, 모임 후 태안의료원 장례식장에 가서 임해창 와네리오 회장님을 위한 연도를 바치고 집에 와서는 잠들기 전에 내 홈페이지를 열고 그 시를 다시 한번 읽어보았네. 그리고 외우기도 했는데, 여기에 한번 적어보겠네.      


어느 여행길의 쉼터에서

지금 여기에 앉아 쉼은 목적이 아니다
앞으로 갈 길을 위해 잠시 머무는 것일 뿐
허나 그 목적의 길을 밟음도
다만 한갓 과정인 것을
저 시작도 끝도 없는 곳을 향해
오늘 여기 잠시 머물 듯
내 인생이 하냥 그렇거니
친구여, 그대는 어디로 가는가?


이 시는 1996년 <시도> 60집에 발표한 시일세. 그런 표기가 내 홈페이지 첫 페이지의 시 밑에도 달려 있네. 하지만 이 시를 쓴 때는 훨씬 전인 1985년인 것으로 기억하네. <흙빛문학> 7집(1987년 하반기호)에 발표한 <私說散調·고향타령>이라는 소설에 그 시에 관한 얘기가 있는 것을 확인했네.

1985년 여름 태안읍에서 평천리 길가에 '송림공원'이라는 작은 쉼터를 조성하면서 당시 조명호 읍장(작고)님이 내게 시를 부탁해서 급하게 지었던 것으로 기억하네. 태안읍은 그 시를 목판에 새겨 그 송림공원 안에다 걸어놓았는데, 태풍 탓에 오래 가지는 않았던 것 같네.

아무튼 내가 30대 후반 젊은 나이에 그런 시를 지었다는 것이 조금은 대견스럽게도 느껴지네. 시의 수준이나 작품성 여부는 별개로 치고, 내가 젊은 나이에도 인생의 허무를 체감하고 진정한 구도(求道)를 갈망하는 그런 시를 지을 수 있었던 것은 내 마음 바탕에 하느님 신앙이 깔려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생각되네. 거기에서도 어떤 '다행스러움'을 느끼게 되고….

그 시의 어떤 질감을 나로 하여금 다시 한번 되새겨보게 한 김 로사줄리 작은 수녀님은 문학에 관심이 많으신 분인 것 같네. 연세는 50대 초입쯤 되신 것 같은데, 일찍부터 나를 잘 알고 계셨던 것 같네. 지난 3월 우리 본당에 부임하셨을 때 내가 인사를 드리며 "지요하 막시모입니다"라고 내 이름을 밝혔는데, 깜짝 놀라며 반색을 하시더군.

"유명하신 분을 뵙게 되고 같이 생활하게 돼서 영광입니다"라고 내게 과분하신 말씀을 하시고, 내가 "어떻게 절 아십니까?"라고 여쭈니, 오래 전부터 웹상에서 내 글을 많이 읽었다고 하시더군. 내 홈페이지에도 여러 번 오셨고…. 정말 고마운 마음이었네. 옆에서 어머니와 마누라도 함께 감사하며 흐뭇해했고….

웹상에서 내 글을 유심히 읽으시는, 그래서 나를 잘 아시는 수녀님이 가까이 계신다는 것을 생각하니 나는 몸가짐이 더욱 조심스러워지더군. 그 수녀님이 우리 규빈이에게 관심이 많고 어찌나 규빈이를 예뻐해 주시는지, 그것도 고마운 일이네.

★아름다운 대성당, 태안의 자랑

지난번 메일에 지난 18일 운명하신 임해창 와네리오 회장님에 대해, 우리 본당의 새 성전 건축과 관련하여 불필요한 말을 적지 않았나 싶네. 죄송스러운 마음도 드네. 임 회장님은 1980년대 중·후반에 우리 본당 총회장의 중임을 맡아 고생을 많이 하신 분이네. 그리고 총회장 다음에는 연령회장을 맡아 남산리 공동묘지를 오늘 같은 모습으로 만드시는데 심혈을 기울인 분이시기도 하네. 토목 분야에 탁월한 식견과 안목을 지니셨던 임 회장님을 도와 공동묘지 조성·조경 공사를 하느라 나도 직접 삽질을 하며 땀을 흘렸던 일들이 선연히 떠오르네.    

그렇게 본당 발전을 위해 많은 일을 하신 분이지만, 과거 운산 '삼화목장'에서 오래 일을 하시며 맺은 김종필씨와의 인연을 중요시하면서, 이런저런 일에 대단히 보수적인 가치관을 견지하신 탓에 나와는 알게 모르게 불편한 관계이기도 했지.

(살짝 한마디. 그래도 내가 그 분의 사위가 될 뻔한 '사연'도 있다네. 그 분의 따님들 중 노처녀였던 한 사람이 내게 관심이 많았지. 야외 미사 때 처음 만나 대화를 나눈 후로 내게 데이트 신청도 하고, 그래서 내가 달밤에 삭선리 임 회장님 댁 근처까지 그 사람을 데려다준 적도 있고, 그 사람이 내게 맘 있어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내가 뒷걸음을 쳤지.)

아무튼 본당 발전을 위해 많은 공헌을 하신 분이지만, 그리고 최초 성전건축준비위원장으로 고생을 많이 하셨지만 말년에는 새 성전 건축 사업에 다소 냉담한 태도를 지니셨던 것이 내게는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 것 같네. 많은 신자들이 어려움 가운데서도 이런저런 봉헌 항목에 적극 참여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래도 임해창 와네리오 회장님은 우리 본당 4대 총회장으로, 최초 연령회장으로, 또 최초 성전건축준비위원장으로 수고가 크셨던 만큼 우리 본당의 역사 속에서 그 이름이 길이 남으실 테니, 그것 역시 하느님 신앙의 값진 보람일 것으로 생각되네.    

말이 나온 김에 우리 본당의 새 성전에 관해 한마디 더하겠네. 한마디로 웅장하고도 아름다운 성전일세. 나는 우리 성당이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태안의 자랑, 지역사회의 보배가 될 것으로 확신하네. 우리 성당이 지역의 명물이 된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큰 기쁨을 갖게 하네.

거의 완공이 된 성전을 보면서 나는 절로 감사하는 마음을 갖네. 신부님과 사목회장님, 건축위원장님, 그 외 수고하신 모든 분들과 모든 신자들께 감사하는 마음이네. 이런 웅장하고도 아름다운 성전이 내가 사는 당대에 이룩된 것에서 자부심마저 갖네. 사제의 능력과 역할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며 중요한 것인가도 되새겨보게 되네.  

요즘 우리 본당에서는 '내적 성전'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아름다운 대성당에서 미사를 지내며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신자들 사이에 알게 모르게 신앙의 때깔도 좋아지리라는 생각도 하게 되네.    

우리 본당의 새 성전 얘기를 한 김에 성전 모습을 담은 사진을 두어 장 보내겠네. 성전 내부 모습은 다음 기회(제대, 성상, 스테인드글라스 등의 설치 작업이 끝난 후)에 보여 주기로 하고, 우선 성당의 전경 사진을 두 장 첨부파일로 보내니 한번씩 감상해 보기 바라네.

★마지막으로, 우리 가족 일본 여행과 관련하여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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