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07-24 조회수1,160 추천수14 반대(0) 신고
 
2007년 7월 24일 연중 제16주간 화요일
 
 
 
 
Someone told him,
“Your mother and your brothers are standing outside,
asking to speak with you.”
But he said in reply to the one who told him,
“Who is my mother? Who are my brothers?”
(Mt.12.47-48)
 
 
 
제1독서 탈출기 14,21─15,1ㄴ
복음 마태오 12,46-50
 
신부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판단력’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신학교에서 많은 학생들이 신부가 되지 못하고 중도 탈락하게 되는데, 그때의 사유 대부분이 바로 ‘판단력 부족’입니다. 제가 얼마 전 신학교 교수 신부님으로부터 판단력이 부족한 신학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신학생이 그 교수 신부님께 전화를 걸었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하더래요.

“신부님, 제가 이번에 재시험 통지를 받았습니다. 제가 이 기간 동안 **단체에서 봉사를 하기로 했거든요. 따라서 재시험을 미리 좀 보면 안 될까요?”

신부님께서는 조금 어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봉사는 땀 흘리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청년들의 모임 연수의 도우미 정도의 역할로 굳이 신학생이 봉사할 필요가 없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신학교의 성적은 자신의 성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다른 것보다도 가장 우선해야 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없어도 될 봉사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그 모습을 보면서 이 신부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하네요.

“그럼 너 신학교 그만두고 평생 그 봉사나 해.”

사실 살아오면서 우리들은 많은 판단의 기로에 서곤 합니다. 그런데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까요? 내가 좋아하는 것만을 선택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 올바른 판단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 성모님과 친척들이 찾아오십니다. 그래서 어떤 이가 예수님께 말씀드리지요.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아주 의외의 말씀을 하십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그리고는 제자들을 가리키면서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라고 말씀하시지요.

예수님께서 너무 하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갑게 맞이해야 하는 것이 당연할 것 같은데, 어떻게 자신을 찾아온 어머니와 친척들에게 그렇게 야박한 말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어떤 판단을 해야 할 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그러신 것 같습니다. 즉, 세속적인 인연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것이다 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것보다 세상의 법칙에 선택의 기준을 둘 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이제 내 판단의 기준이 어디에 있었는지 다시금 반성해 보세요. 판단력 부족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을 실행합시다.



 

한계를 극복한 '열한 번'(신민영, '행복한 동행'중에서)


 
처음 양복을 입고 사회생활이란 걸 시작했을 때가 8년 전이었다. 원체 타고난 체격이 가냘픈지라 바지를 입으면 벨트를 구멍 끝까지 채워도 바지가 허리에서 빙글빙글 돌았고, 저고리는 어깨가 남아 어깨선 중간부터 슬픈 눈초리처럼 축 처지곤 했었다. 몸에 옷을 맞추는 게 아니라 몸을 옷에 맞춰야겠다고 생각했다.

헬스클럽에 등록하고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트레이너의 권유로 고가의 단백질 보충제까지 먹어 가면서, 매일매일 거르지 않고 하루 한 시간씩 운동을 하는데도 이상하게도 가슴이 나오거나 팔다리가 굵어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보충제 때문에 영양 과다가 됐는지 ET처럼 배만 뽈록 나왔다.

운동 방법이 잘못됐나? 아니다. 수첩까지 들고 다니며니서 정해진 무게를 열 번씩 들었다 놓았다 하기를 거르지 않았는데 뭐가 잘못이란 말인가?

'이러다 보면 몸이 만들어지는 거겠지.'하는 마음으로 계속 운동하기를 두 달여, 그런데도 깡마른 몸은 여전했다. 그렇다고 전혀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매일 비슷한 시간대에 운동을 하다 보니 헬스클럽의 아저씨나 형님들과 꽤 친해진 것이다.

"너 그렇게 운동하면 안 돼. 그러니 몸이 안 불지."

여느 때처럼 운동을 하고 있는데, 보디빌더처럼 몸을 가꾼 형님이 다가와 충고했다.

"몸은 항상 원상태를 유지하려고 해. 네가 역기를 열 번 들 수 있으면 네 몸은 그 수준에 맞는 근육만 만들어 낸단 말이야. 조금 고통스럽더라도 열 번을 넘겨서 역기를 들어 봐. 지금 근육 상태로는 도저히 들 수 없을 것 같은 열한 번째를 드는 순간, 네 몸은 드디어 고집을 꺾고 새 근육을 만들어 내는 거야. 역기를 열 번 드는 건, 열한 번째를 들기 위해서야. 열번까지만 들고 마지막 한 번을 하지 않으면 그 열번이 아무 의미가 없는거지."

나에게 근육을 만들어 주는 건 내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열 번'이 아니라, 한계를 극복하고 들어 올린 '열한 번'째였다는 것! 너무 힘이 들어서 무언가를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되새겨 보는 교훈이다.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내 한계 안에서 하는 게 아니라 한계를 넘어 아주 조그마한 노력이라도 더 보태는 것, 그게 바로 최선이다. 지금은 꽤나 불록해져서 티셔츠를 꽈 채운 팔뚝을 만지며 그때 그 형님의 충고를 떠올려 본다.


 
For whoever does the will of my heavenly Father
is my brother, and sister, and mother."
(Mt.12.50)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