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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 시대의 살아 있는 성인 <1>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7-24 조회수1,059 추천수13 반대(0) 신고

 

 이 시대의 살아 있는 성인

     캐더린 도히터와 마돈나 하우스

 

어느 날 저녁, 나는 TV를 켜 놓은 채 그 안에서 떠들어대는 소리를 뒤로 하고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여자가 이런 말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곳에는 전화도 없고, TV도 없고, 라디오도 없습니다. 하루 스물네 시간 고요함만이 깃들어 있지요." 나는 그 말에 귀가 쫑긋해서 돌아서서 TV를 보기 시작했다.

그 말을 하고 있던 사람은 마돈나 하우스에서 나온 사람이었다. 마돈나 하우스란 캐더린 드 휴엑 도허티가 창설한 공동체로, 그를 시성하기 위한 재판이 2000년부터 진행 중에 있다.

TV에 나온 하람은 '푸스티니아'라고 불리는, 혼자서 조용히 묵상하며 보내는 형태의 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푸스티니아는 러시아 말로 '황무지', 혹은 '사막'이라는 뜻이다.

그녀는 근처의 마돈나 하우스 지역 선교 분원에 사는데,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단식하고 기도하면서 침묵 속에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조용한 장소를 제공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어서, 반드시 가톨릭 신자라야 푸스티니아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누구나 환영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당시에 내 삶은 온갖 번잡함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조용한 휴식이라는 말이 내 마음을 끌어 당겼다. 그래서 가톨릭 신앙을 버린 지 오래 되었지만 다음 날 전화를 걸어 나 자신을 위한 '푸스티니아'를 신청했다.

그 피정 동안 나는 마음이 평온해지고 푹 쉴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 곳에서는 피정 하는 사람들에게 소박한 방을 내 주었는데, 방에는 침대와 탁자, 의자가 하나씩 있고 성경 한 권이 놓여 있었다.

나는 차와 빵만 먹으면서 단식을 했다. 거기에는 아무런 조직적은 모임도 없고 강의나 회합도 없었다. 그러나 그 침묵의 24시간 동안, 마치 창문을 열어 신선한 공기를 내 삶으로 들어오게 한 것처럼, 나는 새로운 방식으로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두세 달이 흘러 나는 새로워진 열정을 안고 가톨릭 교회로 되돌아왔다. 주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그 길을 가는 동안, 나는 캐더린 도허티의 글을 탐독했고 마돈나 하우스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었다.

나는 그들이 복음을 살아가는 방식을 보고서 창립자의 삶과 가르침에서 흘러나오는 영성을 배울 수 있었다.

 

 예수님이 계신 곳

캐더린 도허티는 여러 가지 면에서 특출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세상 여러 곳을 두루 여행했고 여러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귀족 출신인 데다가, 체격이 건장하고 담배를 즐기며 성질이 나면 비속어를 쓰는 여장부였다.

한편의 드라마 같은 그녀 인생의 굴곡을 보면 서사 소설인 '전쟁과 평화'조차 시시해 보일 정도다. 그런데 그녀의 일생에서 그녀가 겪은 삶의 질곡보다 더 빛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하느님을 향한 그녀의 열정적인 사랑이었다.

캐더린은 1896년에 부유하고 독실한 그리스도교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그녀의 부모님은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그녀에게 불어넣어 주었다.

그녀가 어렸을 때에 어머니에게 예수님을 만져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날 만져보렴." 캐더린은 이런 식으로 사람들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알아보아, 그들의 손을 예수님의 손으로, 그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예수님의 얼굴과 목소리로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녀의 부모님은 자신들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행하는 분들이었다. 캐더린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 집 문 앞에서 빈손으로 돌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부랑자든 거지든, 심지어 거리의 여자나 좀도둑일지라도 우리 부모님은 그들은 제일 큰 식탁에 앉게 해 최고급 식탁보와 식기로 대접하곤 했다. 우리 형제들은 '착하게 굴어서 가난한 이웃들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섬길 자격이 있을 때'면 그런 일을 거들어 드렸다."

캐더린은 '착하다'는 것이란 자신에게 닥친 '그 순간의 임무', 즉 '무엇이든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충실히 수행함을 의미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 일은 공부일 수도 있고 청소나 바느질, 혹은 음식을 만드는 일일 수도 있었다. "그 순간에 주어진 임무는 하느님께서 주신 임무였다." 그녀는 이런 식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늘 복음을 매우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개념으로 설명했다.

  

 "주님께서 저를 구해 주신다면..."

고집이 세고 불같은 성격이던 캐더린은 15살의 나이에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촌인 보리스 드 휴엑과 결혼했다. 그 부유한 남작은 유명한 바람둥이여서 그들의 결혼 생활은 간통 사건으로 얼룩졌고 그녀는 정신적인 학대에 시달렸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캐더린이 이제껏 알고 있던 삶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보리스는 러시아군에 입대했고, 그녀는 적십자사의 간호사가 되어 화재 시에 보인 용감한 활약상으로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 후에는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고, 귀족들이 색출당할 때에 캐더린과 보리스도 공산주의자의 손에 붙잡혀 기아형을 선고 받았다.

캐더린은 그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적었다. "머리카락이 은전만한 크기로 뭉텅뭉텅 빠져 나가고 이도 하나둘 빠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절박한 심정으로 하느님께 기도를 드렸다. "주님께서 저를 이 고난에서 구해 주시기만 한다면 어떻게 해서든 저의 일생을 당신께 바치겠습니다." 이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서 그녀는 마지막 순간에 극적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이어지는 몇 차례의 역경 끝에 1921년, 그들 부부는 캐나다로 이민을 갔고 거기에서 아들 조지를 낳았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전보다는 안정되었지만 그렇다고 그다지 행복하지도 않았다.

캐더린이 갖가지 허드렛일을 하며 생활비를 버는 한편으로 보리스는 정부들과 노느라 그 돈을 탕진했다. 마침내 캐더린은 자신이 러시에에서 겪은 체험을 들려주는 순회 강사로 나서게 되면서 안정된 수입을 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즈음에 그녀의 결혼 생활은 이미 파탄에 이르러 있었다. 그들은 이혼을 했고, 결국에는 결혼 자체가 무효화되었다.

   

        < 말씀지기의 "내안의 말씀"> 에서

                                    다음에 계속

*이 글을 쓴 메리 바제트 나도는 뉴욕 주의 클라크 밀에 살며, 23년째 마돈나 하우스와 친교를 나누고 있다. 마돈나 하우스를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www.madonnahouse.org를, 캐더린 도허티에 대해서는 www.catherinedoherty.org를 방문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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