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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사제의 세 아들 . . . . . . . . [이재웅 신부님]
작성자김혜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07-24 조회수1,693 추천수17 반대(0) 신고
 
   
                    

     

    나에게는 아들이 셋 있다.

    한 명 한 명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소중한 사람들이기에

    내 아들이 되기 전부터 품에 안아 사랑해왔다

 

    신학교 추천서를 쓰면서 웃음이 났다.

    주위 분들 실망시켜 드리지 않으려고

    맘에도 없는 신학교 시험을 봤던 나는

    시험지도 안보고 아무렇게나 답안지를 작성했지만...

 

    셋의 신학교 추천서는

    또박또박 심혈을 다하여 써내려갔다.

 

    내 합격발표에는 무관심, 무긴장이었지만,

    셋의 합격발표에는

    분만실 밖의 아빠마냥 긴장하였다.

 

    나의 합격소식에는 절망(?) 했지만

    셋의 합격소식에는 덩실덩실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다.

 

    신학교에 걸려있는 89년 입학사진 속에 나는 시무룩했지만,

    셋의 입학사진 속의 나는 찢어지게 웃고 있었다.

 

    "내가 얘들 아빠요!"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내게 해주신 것처럼

    나도 셋과 함께 낚시를 가고,

    공을 차고,

    달리기를 한다.

 

    왜 놀아야 하는지,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를 배운 대로 알려주고 싶다.

 

    지지난 학기에는 스키장 시즌권을 걸고서

    영성과 지성과 건강시합을 하였다.

    나도 열심히 기도하고 책을 읽고 신체를 단련했지만,

    결정적으로,

    셋 중에 한 명이 장학금을 타오는 바람에

    겨우내 셋의 운전기사와 강사노릇을 해야만 했다.

 

    대한민국의 극성맞은 부모들처럼,

    나도 셋을 뒤지지 않게 기르고 싶었다.

    우선 내가 그들에게 최고의 신부가 되어야 하나,

    그건 어려운 일이어서,

 

    그동안 만나온 좋은 분들을 모두 만나게 해주었다.

    지난 초겨울 우연히 '산악인 박영석'을 만나게 되었을 때도

    셋을 데리고 나갔다.

    그 인물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그 경지에 오르게 되었는지,

    보통사람과는 무엇이 다른지를

    직접 보고 느끼고 가슴에 새겼을 것이다.

 

    이번 겨울이 되면 셋을 군대에 보내야 한다.

    나 역시 언제 인사발령이 날지 모르는 상황이라서

    셋과 함께 보낼 수 있는 마지막 방학이었다.

 

    나는 내가 학생때 다녀왔던 제주도 자전거 하이킹을 떠올렸다.

    제주도가 섬이니 작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서울에서 부산 거리의 절반이 넘는 거리다.

    한여름의 내려 꽂히는 불볕과 후끈대는 아스팔트 위에서

    페달을 밟는 것은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그 고생고생을 셋과 함께 하고 싶었다.

    하지만, 성당을 짓고 있다는 것이 발목을 잡았다!

    '평생 여름휴가는 최소한 수십 번은 갈 텐데 이번에 그 한 번을

     포기하고 휴가비를 건축금으로 내자고 해야지..'

   

    주머니가 너무 가벼웠다.

    결국 휴가를 포기하기로 셋에게도 상황설명을 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일정을 앞당겨 제대만 마련된 새 성당에서

    첫 미사를 드리기로 결정했다.

    공교롭게도...

    8 20일 신학교 개학을 앞둔 마지막 주간 첫 날이었다.

    누가

    "이것은 건축금 말고 신부님 쓰십시오." 봉투를 주었다.

 

    "얘들아, 가자!"

 

    감동의 첫 미사를 드린 다음날

    새벽같이 공항으로...! 

 

    바닷길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친구 신부를 만났고,

    표정이 밝은 선교사를 만났고,

    10년 전 묵었던 민박집 아주머니도 만났고,

    과속 자전거 할아버지를 만났고,

    자상한 할아버지 신부도 만났고,

    유람선의 밀입국자도 만났고,

    재미있는 택시 아저씨도 만났고,

    축구장을 호령하는 카랑카랑한 아가씨도 만났다.

 

    제주도를 일주한 다음 마지막 일정은 한라산 등반이었다.

    아침을 먹고 있는 셋의 얼굴이 피곤함으로 가득하다

    늘어진 정신과 육신에 찬물을 끼얹는 데는 한 마디면 족하였다.

    "..!"

 

    아름답고 고된 산길을 올라올라 백록담에 섰다.

    정상에 도달한 우리에게 한라산은

    잊지 못할 큰 선물을 마련하고 있었다.

 

    한 떼의 구름이 지나간 뒤,

    열려진 저 아래 세상으로 환희와 고통으로 달렸던

    우리의 여정이 선명하게 펼쳐져 있었다.

 

    벅차오르는 감동을 주체할 길이 없었다.

    우리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을 인생의 명장면이었다.

 

    "광호야, 규성아, 재혁아, 정상에서처럼 살자!"

 

    돌아오는 길은 새로운 꿈으로 부풀어 올랐다.

    언젠가는

    셋과 함께 히말라야 어느 언덕에서

    노을 가득한 저녁미사를 드릴 수 있다면......,

 

**  히말라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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