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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7월 26일 야곱의 우물- 마태 13, 10-17 묵상/ 여성과 남성, 하나의 길을 위하여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7-07-26 조회수693 추천수8 반대(0) 신고

여성과 남성, 하나의 길을 위하여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왜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사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내가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이사야의 예언이 저 사람들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저 백성이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서는 돌아와 내가 그들을 고쳐주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고자 갈망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듣고자 갈망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마태 13,10-­17)
 
임인자(도박중독센터 `희망을 찾는 사람들` 사무국장)
◆태초에 하느님이 하와를 만들 때 아담의 갈비뼈를 빼어 만드셨습니다. 사람이 여성과 남성으로 태어나는 순간입니다. 남성들 중에는 여성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알아야 한다며, 이것이 처음부터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어야 하는 이유라며 열변을 토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하와를 아담의 머리카락이나 손톱으로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갈비뼈로 만든 이유는 그만큼 아담에게 소중한 존재이고 서로 뗄 수 없는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비유로 말씀하신 것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서 어떤 것이 소중하고 어떤 것이 버려야 할 악습인지 모른다면 무엇을 하든, 어떤 사람을 만나든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사랑할 수 없습니다.
 
21세기에는 여성적 감성인 섬세함과 부드러움이 살아남는 때입니다. 직장에서도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사람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평등한 사고를 가진 사람이 인간관계도 잘 맺고 창의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예전처럼 남녀차별적인 사고를 가지고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은 성공할 수 없는 때가 된 것입니다.
 
한쪽이 불행한데 한쪽이 행복할 순 없습니다. “날마다 서로 격려하십시오.”(히브 3,13 참조)라는 말씀처럼 우리는 함께 숨쉬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니까요.
 
“추운 길목에서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그윽한 눈을 들여다볼 때/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 하리.”(‘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중에서)라고 노래한 정희성님 시처럼 우리는 끝없이 그리워하는 사람들입니다.
 
여성과 남성, 이제 서로 바라보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야 할 동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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