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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7월 29일 야곱의 우물- 루카 11, 1-13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7-07-29 조회수569 추천수7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그분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주게.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루카 11,1­-13)
 
정 세라피아 수녀(포교성베네딕도수녀회 대구수녀원)
신앙생활을 하면서 기도해야 한다는 데는 누구나 다 동의합니다. 그런데 왜 기도해야 하는지를 물으면 답은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가 납니다. 불안해서, 하느님과의 관계를 깊게 하기 위해서, 무엇을 간청하기 위해서 등등. 오늘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가르쳐 달라고 하는 제자들을 차근히 가르쳐 주시는 예수께 우리도 귀를 기울여봅시다.
 
예수님은 낮동안 당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돌보시고 밤이나 새벽녘에 외딴 곳에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기도의 내용은 오늘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 범주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기도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포함하고 있고, 또 그분은 그 내용대로 지상 삶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성령과 함께하시는 예수님은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셨고, 우리에게도 자녀가 되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분의 지상 사명의 주제는 ‘하느님 나라’였습니다. 그 나라를 선포하시기 전에 40일간 광야에서 기도하며 준비하셨습니다. 죄인이 용서받고, 앓는 이가 치유되고, 갇힌 이가 해방되는 그 나라를 위해 추수할 일꾼 열둘을 뽑기 전에 밤을 새우며 산에서 기도하셨지요(루카 6,12).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뒤 사람들이 임금으로 모시려 하자 예수께서는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셔서 기도하십니다(요한 6,15).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 이것이 ‘아버지의 뜻’이었기에 예수님은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요한 4,34)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쉽게 잘 구분되지 않습니다. 유혹이 그만큼 교묘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기도해야 하셨습니다. 갈릴래아 카파르나움에서 떠나지 말아 달라고 붙드는 군중을 뒤로 하고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루카 4,43)라고 하시며 떠나십니다.
 
그날 새벽녘에 기도를 하신 후의 결정입니다. 제자들에게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신 후 예루살렘 상경을 앞두고 제자 셋과 산에 가시어 기도하십니다(루카 22,39-44).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몰라서 그렇지 알 수만 있다면야….’ 하고 쉽게 말하지만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예수님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 22,42) 하기까지 피땀을 흘리면서 고뇌해야 했습니다.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마태 6,34) 하신 예수님은 일용할 양식을 아버지께 청하셨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와 메추라기를 그 다음날 것까지 거두어들인 것은 모두 부패하였습니다. “여러 해 동안 먹을 양식을 곳간에 쌓아두는 어리석은 부자가 그날 저녁 목숨을 잃게 되면 그 양식은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루카 12,16-21)와 같은 맥락입니다. 일용할 양식 이상의 것을 나를 위해 축적하지 말고 굶어 죽어가는 이를 못 본 체하지 말라는 말씀이겠습니다.
 
나에게 잘못한 이를 나는 몇 번이나 용서할 수 있을까요?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는 말씀을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같은 사람이 계속 나를 괴롭힐 때 ‘이번에는 절대 용서 못한다.’ 하고 마음에 독을 품습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란 기도문이 마음에 걸려 차라리 성당에 나가지 않는 편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마음은 편치 않습니다.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라고 할 수 없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도 ‘네 죄는 용서받았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 하며 살라고 초대하십니다.
 
기도는 유혹을 이겨내게 하는 큰 무기입니다. 유혹에 빠져들면 악과 손잡게 되는 일은 쉽습니다. 베드로의 배반을 예고하시면서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처럼 체질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나는 너의 믿음이 꺼지지 않도록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다.”(루카 22,31-32ㄱ)라고 하시고는 올리브 산으로 가시면서 제자들에게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여라.” 하고 당부하셨습니다(루카 22,39-40). 예수께서는 수난을 앞두고 당신 자신을 위하여 또 제자들을 위하여, 믿는 모든 이들을 위하여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셨는지요(요한 17장).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의 구원을 위해 하느님과 흥정하는 장면은 의인 한 사람의 기도가 얼마나 힘이 있는지 보여줍니다. 예수님 한 분의 기도의 힘은 모든 사람에게 미칩니다.
 
주님의 기도에는 우리 일상의 모든 필요가 담겨져 있습니다. 전반부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방법이고, 후반부는 인간과 더불어 세상을 살아가는 참 지혜―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의식주의 외적 차원에서부터 점차 내적 차원으로―가 담겨져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용서의 필요성, 스스로도 속는 교묘한 유혹에 빠져들지 않는 깊은 내적 성찰, 마침내 마음의 순결을 얻음으로써 하느님을 뵐 수 있도록 해주는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빈말을 되풀이할 필요도 없고, 드러내어 보이려고 기도할 필요도 없습니다(마태 6,6 참조). 때로는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아 절망하여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더라도 낙심하지 않고 끈질기게 졸라 불의한 재판관을 끝내 항복하게 만든 과부처럼 기도하여야 합니다(루카 18,1-8).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더 좋은 것, 성령을 주시기 위해 우리를 기다리게 하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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