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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도의 사람들" --- 2007.7.29 연중 제17주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7-07-29 조회수591 추천수8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 신부님 강론 말씀)
 
2007.7.29 연중 제17주일                                          
창세18,20-32 콜로2,12-14 루카11,1-13

                                                          
 
 
 
"기도의 사람들"
 


여러분은 얼마나 기도하십니까?

기도해야 살 수 있고, 기도해야 비로소 사람입니다.
 
일반 동물과 사람의 결정적 차이는 기도에 있습니다.
기도하는 영적인 동물이 바로 사람입니다.
 
하느님에게서 나와 
하느님 안에서 살다가
하느님께 돌아가는 우리의 삶이라 정의합니다.
하느님 안에서의 삶을 명료하게 해주는 기도입니다.

하느님 안에 살면서
하느님 까맣게 잊고 완전히 남남처럼 살 수 있습니다.
 
이런 삶, 육신은 살아있다 하나
영적으로는 살아있다 볼 수 없습니다.

하느님과의 관계를 날로 깊게 하므로
충만한 존재를 살게 하는 기도입니다.

하느님 기도의 등불 꺼지면
어김없이 스며드는 허무의 어둔 그림자입니다.
 
그러니 숨 쉬듯 기도해야 합니다.
 
숨 쉬어야 육신이 살 듯
영혼의 호흡인 기도 있어야 영혼이 삽니다.
 
이래서 옛 수도교부들 끊임없이 기도하라 했습니다.

바쁠수록, 영혼 육신이 살기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날로 쉽고 편하고 빠른 것을 추구하는 삶과 더불어
내면은 날로 가볍고 얕아져 가며
불안과 두려움의 어둠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습니다.
 
하여 뿌리 없이 떠다니는 영혼들이 그리도 많습니다.
내적 평화와 안정이 없기 때문이요,
이 모두가 하느님과의 친밀한 대화의 기도 부재에서 기인합니다.


주님의 기도를 생활화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보다 더 좋은 기도 없습니다.
군더더기 일체 없는 삶의 핵심적 본질만 담고 있는 기도입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의 삶 전부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삶의 거품이 말끔히 걷혀있는 기도입니다.
 
우리의 삶을 거울처럼 비춰주는 기도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질수록
환상 속에 복잡하고 혼란한 삶이요,
하느님께 가까워져
하느님의 우리의 모두가 되어갈 수록
삶의 환상이나 욕심은 모두 걷혀 더욱 단순하고 본질적인 삶입니다.
 
바로 이런 삶을 살기위해
주님의 기도를 생활화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실상 우리의 모든 소원들 압축하면
위의 다섯의 청원으로 요약되지 않습니까?
 
미래나 과거도 아닌
바로 오늘 지금 여기를 살게 하는 현실적인 기도입니다.
 
주님의 기도가 생활화되어
나의 기도로 만드는 것
기도생활을 잘하기 위한 필수 전제 조건입니다.


주님은 ‘주님의 기도’에 이어 기도 방법에 대한 지침을 주십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무작정 내 욕심대로가 아닌
주님의 뜻에 따라 청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는 것입니다.
 
바로 위의 주님의 기도가 나의 기도로 생활화될 때
하느님의 뜻에 따라 제대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제대로
잘 청하고, 잘 찾고, 잘 문 두드리는 이 없습니다.
 
기복적인 기도니 뭐니 하며 가릴 것 없습니다.
기도 역시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기 때문입니다.
 
우선 제대로 기도하기에 앞서
응답이 있든 없든 간절히 끊임없이 기도하는 게 먼저입니다.
 
간절히 좌절함이 없이 기도하면
결국은 주님의 기도와 만나고 하느님의 뜻을 발견하게 됩니다.
 
알게 모르게 하느님은
최선, 최상의 길로 이끌어 주신다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때로는 하느님의 무응답이 가장 좋은 응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의 자세,
비단 기도뿐 아니라 삶의 자세이기도 합니다.
 
자포자기하지 말고 백절불굴, 믿음의 자세로 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먼저 포기하면 하느님도 도와주지 못합니다.
 
죽을 때 까지 끊임없이 청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는 자세로
기도하고 살아야 축복 가득한 삶입니다.


구체적으로 주님과의 대화의 기도의
고요한 시간과 장소를 마련해야 합니다.

공동기도 없는 개인기도는 맹목일 수 있고,
개인기도 없는 공동기도는 공허할 수 있습니다.
 
공동기도와 함께 가야 하는 주님과의 개인 기도입니다.
 
이런 개인 기도의 체험 없이 삶은 결코 깊어질 수 없습니다.
내면이 무너지면 육신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주님과의 만남의 개인기도로
내면을 충실히 하는 것 너무 중요합니다.
 
주님과의 만남 중에 하느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내적 공허는 하느님 현존의 충만이 됩니다.

이래서 옛 수도자들,
침묵과 고독 중에 하느님 만나러 사막을 찾았습니다.

내 삶의 자리에 일정한 사막의 시간과 공간을 마련하고
기도 중에 하느님을 만나야 내 영혼, 육신이 살 수 있습니다.
 
사막을 찾아가지 않아도 마음만 먹으면 곧장 실행할 수 있습니다.
수시로 사막을 찾듯
많은 이들 끊임없이 수도원을 찾아
성체조배를 하며 주님과 대화의 기도를 나눕니다.
 
그러니 매일 일정한 시간, 일정한 장소의 사막을 마련하여
규칙적으로 평생, 끊임없이 숨 쉬듯, 밥 먹듯이
주님과의 대화의 기도를 바치길 권합니다.

오늘 1독서의 아브라함 보셔요,
상황이 긴박하니 곧장
하느님과 일대일 대화의 기도에 들어가지 않습니까?
 
소돔과 고모라의 임박한 파멸이 안타까워
어떻게든 파멸을 막아보려는 아브라함의 간절한 기도입니다.
 
의인 쉰 명에서, 마흔 다섯, 마흔, 서른, 스무 명,
마침내 열 명의 의인을 보아서라도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하느님의 약속을 받아 낸 집요한 아브라함의 기도입니다.

어찌 보면 세상이 존속되는 건
곳곳에 숨어 기도하는 아브라함 같은
의인들이 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런 ‘기도의 사람들’보다
공동체에 큰 보물은 없을 것이며
이런 ‘기도의 사람들’보다 더 좋은 친구도 없을 것입니다.
 
아브라함 같은 기도하는 의인들 덕분에 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IT 강국이라는 우리나라지만
역설적으로 점집을 찾는 사람도 많다 합니다.

그대로 내면의 두려움과 불안의 표현입니다.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무력하고 무능한 인간이요,
대낮 같이 환한 첨단 문명의 시대라지만
사람들의 내면은 날로 어둡고 황폐해지는 오늘의 현실입니다.
 
내적 평화와 풍요, 안정을 위한
최선의 처방은 기도 하나 뿐입니다.

주님의 기도를 생활화하여 완전히 나의 기도로 만드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청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는 자세로 기도하며 사는 것입니다.

주님과의 만남의 기도를 위해
사막의 시간과 장소를 마련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살기위해서,
끊임없이,
평생,
규칙적으로 하느님께 바쳐야 하는 기도입니다.

이 거룩한 성체성사의 주님은
우리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당신 사랑과 생명으로 우리의 내면을 가득 채워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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