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하느님의 사람들 / 이인주 신부님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8-01 조회수835 추천수8 반대(0) 신고
 
 
하느님의 사람들

모세는 역시 하느님이 사람이었다. 모세의 가르침을 보면 그 안에 예수님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늘 쉬운 비유로 가르쳤듯이 모세도 하느님의 법을 먼 하늘 너머나 바다 건너에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입과 마음 안에 있다고 하고 계신다.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어려운 말을 많이 하고 하늘나라를 그럴 듯 하게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하늘나라는 어려운 것도 아니며 사탕을 발라놓은 과자도 아니다.
 
하느님 나라는 모세의 율법이며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안에 있는 것이다. 그것도 내 몸처럼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린 하느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 그리고 모세의 율법을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행복을 얻기 위함이다. 행복은 어렵고 먼 곳에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 안에서 발견되어 지는 것이며 내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를테면 성체조배 안에서 흐뭇하게 주님과 대화가 이뤄질 때이며, 이웃의 아픔을 들으며 함께 눈물로 위로를 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 미사 중에 성가나 말씀 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흐르며 가슴이 트일 때이고, 새벽 미사를 보고 돌아가는 길에 흘러나오는 콧노래 속의 주님 찬미와 그래서 길거리의 나뒹구는 쓰레기를 줍고자 하는 기쁜 마음이다. 이런 것 모두가 행복을 만드는 원천이다.
 

행복은 착한 사마리아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다. 본래 우리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나 중심의 삶을 살아가면서부터 착함은 서서히 없어졌고 착함이 사라진 자리에 사악함이 자리를 잡음으로 해서 우린 본래의 행복으로부터 일탈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사실 우리가 다시 행복해 지길 원한다면 날아간 파랑새를 찾아나서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마음을 되찾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마음을 갖는 것이고 하느님의 사람에 길로 다시 들어서는 것이다.
 

우린 자주 인간적인 능력을 과시한다. 그러나 인간적인 능력은 늘 한계에 부딪힘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자랑 하려면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능력을 자랑해야한다.
 
하느님의 사랑 안에 모든 것이 녹아나는 것이다. 그 본래의 깊이를 깨달으려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럼으로 나를 너무 자랑하거나 내 세우는 사람은 언젠가는 힘을 잃게 됨을 알아야한다. 행복의 근원은 바로 그분의 능력 안에서 나옴을 말이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 앞에 못된 강도가 있었다. 그는 잔인하고 비열한 모습으로 강탈을 자행했다. 이것을 본 한 사제가 피해서 지나갔다. 같은 사제로서 참 얼굴이 팔린다. 그러기에 사제라고 다 사제가 아니라는 말이 빈말이 아님을 이 대목을 보며 씁쓸한 마음이 든다.
 
그러므로 우린 착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근본이 반듯한 사람으로 새롭게 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인간적인 성숙도 필요하지만 예수님과 일치하는 그런 사람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강도를 만난 사람을 보고, 레위인은 다가 왔지만, 그냥 지나갔다고 했다. 그래도 레위인은 관심이라도 가졌다. 이 레위인의 모습을 보면서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레위인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관심은 있는데 그걸 어떻게 해 보려하니 안 되는 그런 것 말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상태에 머물고서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데 문제가 있음이다.
 

현대판 착한 사마리아 사람을 보여드리면, "기차가 달려온다. 한 청년이 좀 이상하다 할 만큼 멈추지도 않은 열차를 먼저 타려고 매달려보지만, 그만 손잡이를 제대로 못 잡아 열차 밑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으악 소리와 함께(상상에 맡김), 팔이 거의 잘려졌다.
 
거기에 스님과 목사님 모두가 계신다. 오! 하느님, 나무아비타불....... 하지만 실제 행동에 옮기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묵주를 든 한 자매가 손수건을 꺼내더니 그것으로 안 됨을 알고는 자신의 웃옷을 벗어 나뉘어진 팔을 묶어 병원으로 보내는 것을 본다."
 
순간적인 그 광경을 보면서, 어린 나는 내가 크면 묵주를 든 저 누나와 같은 종교를 가질 것이라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하게 된다. 천주교 신자들을 자랑하려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행동으로 옮긴 그 자매에 감동을 한 것이다.
 

우리의 삶 안에 꼭 필요한 것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모습이고, 천주교 누님의 모범적인 행동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그냥 생겨지는 것은 아니고 하느님을 올바로 알고, 본래 우리에게 주어진 그것을 그대로 살아낼 때, 내가 바로 모세요 예수님의 영역을 살아내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사람의 모습이다. 그 모습을 위해 우린 오늘도 그분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이 찾는 길이 바로 행복의 길이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