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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8월 3일 야곱의 우물- 마태 13, 54-58 묵상/ 숨겨진 시간 속의 영적 여행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7-08-03 조회수648 추천수10 반대(0) 신고

숨겨진 시간 속의 영적 여행

그때에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시어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그러자 그들은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모두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그곳에서는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셨다.
(마태 13,54-­58)
 
이인주 신부(예수회)
◆사람들은 가끔 잠적 내지 잠수를 한다. 이유가 뭘까? 영원한 시간의 신비를 알고자 함이고, 영혼의 신비 속으로 들어가길 원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특히 설산이나 밀림, 우주를 여행한 사람은 그 안에 자신과 다른 존재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느낀다. 그 느낌이 바로 영적 여행의 시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그분의 숨겨진 시간 속에 내재되어 있는 영의 영역으로 함께 들어가 보자.
 
그렇다. 예수님은 분명 마리아의 아들이고 그의 아버지는 요셉이다. 형제들은 야고보·요셉·시몬·유다이다. 그걸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분은 무엇일까? 두 가지다. 하나는 ‘저 사람이 지혜를 어떻게 얻었지?’ 하는 것이고, 둘째는 ‘자랄 때 예수는 저런 위인이 아니었는데.’ 하며 부정하는 것이다.
 
문맥상으로 보아 예수님은 별로 두각을 드러내지 않은 평범한 청년이었던 것 같다. 예수님은 성장과정에서 신성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이 더 예수님답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사람에겐 다 때가 있다. 예수님도 홀연 자신의 때를 알아차리기라도 한듯 서른이 되어 나자렛을 떠났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나자렛에 들렀는데 그때는 이미 범상한 인물이 아니었다. 과연 소문대로였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왜 사람들은 상대방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과거의 행적만 보고 단언을 하는 것일까?
 
내 이야기를 해보자. 초중학교 시절 나를 알던 사람들은 “뭐? 그가 신부가 됐다고?”, “야! 서천 소가 웃겠다.”라고 할 것이다. 초중학교 시절에 나를 알던 사람들은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의 내 영적 삶의 과정을 헤아린다면 과거의 내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적절한 비유는 아니겠지만 이런 맥락에서 예수님 또한 고향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뭐 대수인가?
 
예수님은 씩씩하게 자신의 길을 갔다. 자신의 목적을 분명하게 밝히면서 그들에겐 조금의 흔적만 남기고 떠나신다. 그렇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다. 지금보다 한 단계 그분께 더 나아가는 것이 무엇이며, 영적인 삶에 더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식별하며 사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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