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08-03 조회수979 추천수14 반대(0) 신고
 
2007년 8월 3일 연중 제17주간 화요일
 
 
 
 
“A prophet is not without honor except in his native place
and in his own house.”
And he did not work many mighty deeds there
because of their lack of faith. 
(Mt,13.57-58)
 
 
제1독서 탈출기 23,1.4-11.15-16.27.34ㄴ-37
복음 마태오 13,54-58
 
제 동창신부 중의 한명이 어느 본당의 주임신부로 있을 때 경험했던 일입니다. 그 신부는 항상 긍정적인 말을 하려고 노력을 했고,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신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데, 어떤 교우가 홍탁(洪濁)을 가져온 것입니다. 신부님께서는 언제나처럼 하나를 집어 먹고서는 “와~~ 너무 맛있어요.”를 반복하여 말하면서 홍탁을 드셨다고 합니다. 사실 신부님께서는 심한 냄새를 내는 이 홍탁을 좋아하시지 않았지요. 하지만 본당신부가 왔다고 홍탁을 들고 오신 교우의 성의에 감사해서 정말로 좋아하는 척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신부님께서 어느 집을 가든지 항상 눈앞에는 홍탁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시로 교우들이 사제관으로 홍탁을 갖다 주어서 홍탁 처리하는데 참으로 힘들었다고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 뒤 이 신부님께서는 어디를 가든 맛있다는 소리를 안 한다고 합니다. 맛있다는 말 한마디에 싫어하는 음식을 그 본당에 있는 동안 계속 먹을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사실 좋아하는 음식도 계속 먹다보면 질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본당의 교우들에게는 하나의 편견이 생겼지요.

‘신부님은 홍탁을 너무나도 좋아한다.’

아마 이렇게 간단한 명제는 이렇게까지 확대되었을 것입니다.

‘신부님은 다른 음식은 먹지 않고 오로지 홍탁만 먹는다.’

그 본당신자들은 신부님을 위한다고 하지만, 사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에 신부님을 더욱 더 힘들게 했던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 대한 고향사람들의 편견을 볼 수 있습니다. 고향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보아왔던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들에게 있어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구세주가 아니라, 단지 같은 동네 살았던 목수의 아들일 뿐입니다. 이러한 편견을 가지고 있던 고향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행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기적마저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으로 폄하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제까지 우리들이 가지고 있었던 각종 편견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편견은 지금의 내 행동을 항상 최선의 방법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 편견은 최선의 방법이 아니라 최악의 방법을 우리에게 제시할 뿐입니다.

주님께서는 항상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보셨고, 그 기준으로 당신의 제자들을 뽑으셨습니다. 만약 세상의 편견을 가지고 제자들을 뽑으셨다면 그렇게 형편없는 사람들이 당신의 제자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 역시 내가 만나는 나의 이웃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편견을 잠시 내려놓고 주님의 눈인 사랑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편견이 사라지는 곳에 주님의 기적도 있습니다.


편견을 버리세요.





 
산을 넘으면 길이 있다(딩푸, '내 삶에 따뜻한 위안이 되는 책'중에서)


 
어느 날, 시무룩해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아버지가 물었다. "무슨 일 있니?"

아들은 잠시 망설이더니 힘없이 대답했다. "지난번보다 성적이 많이 떨어졌어요."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 않겠니? 이러고 있지 말고 나와 함께 산에 가자."

아들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어 따라나섰다.

집을 나서며 아들이 물었다. "아버지, 만약 산 중턱에서 갑자기 비를 만나면 어떡하죠?"

"걱정할 것 없다. 그럴 때는 산 정상으로 뛰어가면 돼."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아버지의 대답에 아들이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

"산 아래로 내려가야 하지 않나요? 산 정상은 비바람이 훨씬 더 세잖아요."

"그래, 물론 산 정상에는 비바람이 더 세지. 하지만 생명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란다. 반대로 산 아래는 비바람이 약해서 안전한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비 때문에 산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고 홍수를 만나 익사할 수도 있지. 비바람을 만났다고 피하려고만 하면 거센 흐름에 말려들 수 있지만, 오히려 그것에 맞서면 살아남을 수 있는 거란다. 삶도 마찬가지야. 역경에 맞서 싸운 경험이 없다면 참된 인생이라고 할 수 없어. 패자는 지름길을 찾으려 하지만 승자는 목표를 이룰 때까지 끊임없이 도전한단다."

아들은 아버지의 말에서 조금은 용기를 얻었다. 하지만 산 중턱쯤 올라가서 그만 길을 잃어 버리자 아들이 울먹이며 말했다.

"출구를 찾지 못하는 제 자신이 미워요. 세상에 성공만 있고 실패는 없으면 좋겠어요."

"세상에 어떻게 성공만 있을 수 있겠니? 실패 없는 성공은 가치가 없단다. 아니 아예 존재하지 않지. 자, 고개를 들어보렴. 너는 지금까지 줄곧 고개를 숙이고 걸어왔지?"

아들이 천천히 고개를 들자 아버지가 물었다. "뭐가 보이니?"

"산 너머에 또 산이 있어요. 아! 그리고 하늘도요."

"그래, 그럼 앞으로 가야 할 길도 보이겠구나. 앞으로도 어려움을 만나고 실패를 겪을때마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렴.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것을 향해 걸어가는 거야. 거센 풍랑뒤에 고요한 바다가 있고, 험난한 길 뒤에 평탄한 대로가 있다는 것을 믿으렴. 그러면 어떤 힘든 일이 닥쳐도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단다. 작은 실패나 잘못으로 주저앉고 싶은 바로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거란다. 알겠지?"
 

 

 

Jesus came to his native place

and taught the people in their synagogue.
They were astonished and said,
Where did this man get such wisdom and mighty deeds?
Is he not the carpenter’s son?

(Mt.13.54-55)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

 
Blueprints Of The 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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