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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8월 4일 야곱의 우물- 마태 14, 1-12 묵상/ 하느님을 왜 믿어야 하는가?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7-08-03 조회수569 추천수7 반대(0) 신고

하느님을 왜 믿어야 하는가?

(필자가 묵상한 부분을 중심으로 싣습니다.)
헤로데는 요한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그들이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침 헤로데가 생일을 맞이하자 헤로디아의 딸이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어 그를 즐겁게 해주었다. 그래서 헤로데는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청하는 대로 주겠다고 맹세하며 약속하였다.
 
그러자 소녀는 자기 어머니가 부추기는 대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이리 가져다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임금은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어서 그렇게 해주라고 명령하고, 사람을 보내어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그리고 그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게 하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가져갔다.
 
요한의 제자들은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장사 지내고, 예수님께 가서 알렸다.
(마태 14,1­-12)
 
이인주 신부(예수회)
◆‘하느님도 인간 세상은 어떻게 못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역사에 등장하는 폭군들의 모습을 보면 ‘하느님은 왜 저런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 두셨는가?’ 하고는 회의를 품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래도 하느님이 계시니 이만하겠지 싶다.
 
필리핀의 가난한 가정에서 일어나는 비극을 보면 인간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여러 아이들을 둔 엄마가 생계를 위해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가정부로 취직해서 먼 곳으로 떠났다. 아이들은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고, 아버지는 아이들의 등살에 꼼짝도 못하니 당연히 일을 할 수가 없다.
 
남편은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먼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돌아올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아내는 그곳의 삶이 좋은지 못 오겠다며 버텼다. 그러자 남편은 애들을 다 죽이고 자신도 끝장을 내겠다고 했다. 설마하지만 결국 남편은 피비린내를 내고 말았다. 누구의 잘못인가?
 
구조적인 잘못이다. 나라·사회·개인 등 잘못된 구조에서 비롯된 깊은 상처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회를 건전하게 만들어야 하고 늘 하느님께 여쭤가며 우리의 삶을 좋게 만들어 가야 한다.”(탐 오골만 신부의 이야기 기록)
 
오늘 복음에 나오는 세례자 요한의 최후도 끔찍하기는 마찬가지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이것이 그 시대의 현실이었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는가를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최고 권력자에게 정면 도전을 했으니 그 뒷일은 이미 각오하고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연회장에서 예언자의 목을 벨 줄이야`…. 그들이 요한만 그렇게 죽였을까?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은 다 그런 식으로 죽였을 것이다. 하느님은 왜 악한 사람들은 두고 애꿎은 사람들만 죽게 하실까?
 
그러나 기도하며 그분을 만나다 보면 답이 나온다. 착한 사람은 먼저 하늘나라에 간다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연옥도 안 거치고 바로 천국에 가기도 하겠지만, 이 더럽고 지저분한 세상을 빨리 하직하게끔 배려하는 것이라면 좀 위로가 되려나.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그러기에 우린 이런 세상이 되지 않도록 미리 미리 하느님 나라에 접근해 가는 사람들이 많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이 땅도 바로 하느님 나라에 가깝기에 밝고 맑고 아름다운 세상이 되도록 배려해 주지 않겠는가. 이런 차원에서 나는 다시 한 번 말하고 싶다. ‘사람들이여, 하느님을 온전히 믿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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