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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 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08-04 조회수817 추천수11 반대(0) 신고
 
2007년 8월 4일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
 
  
 
 "This man is John the Baptist.
He has been raised from the dead;
that is why mighty powers are at work in him."
(Mt.14.2) 
 
  제1독서 레위기 25,1.8-17
복음 마태오 14,1-12
 
 
어떤 부부의 대화 내용을 한번 보시지요.

아내: 치약 좀 끝에서부터 짜면 안 돼요?

남편: 가운데서부터 짜면 안 될 게 또 뭐야?

아내: 매사가 그 모양이라니까.

남편: 뭐라고? 이 여자가, 당신은 욕실 청소나 좀 잘 해!

아내: 뭐? 내가 청소부야! 허구한 날 청소만 하게?

남편: 옆집 철수네 집 안 봤어? 그 엄마 얼마나 깔끔해?

아내: 그래 말 잘했다. 철수 아빤 얼마나 가정적인지 알기나 해? 게다가 잘 생겼지, 돈 잘 벌어오지. 당신은 도대체 잘 하는 게 뭐야?

이 부부싸움의 발단은 남편의 평소 습관이었던 양치질할 때 치약 몸통 가운데를 꾹 눌러 짜는 버릇으로, 사실 따지고 보면 싸울 이유도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작은 행동 하나가 다른 상대방의 단점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서 다른 사람과의 비교까지 함으로 인해 인격적인 모독까지 주고 있지요.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바로 함께 하는 행복보다는 나만의 행복을 먼저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만약 아내가 먼저 치약 몸통 가운데를 꾹 눌러 짜는 남편의 버릇을 단순한 하나의 습관으로 받아들였다면 이렇게 싸움으로 번졌을까요? 또한 아내의 주의어린 이야기를 듣고서 “내가 그런 습관이 있었지? 그게 당신에게 신경 쓰게 했다면 정말로 미안해. 내가 주의하도록 할게.”라는 식의 답변을 했다면 어떠했을까요?

바로 내가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 나만 행복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불러일으킨 싸움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삶 안에서 이렇게 나만의 행복을 생각했을 때가 더 많지 않았을까요?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아픔과 상처를 주었는지요?

오늘 복음에 나오는 헤로데 왕 역시 모두가 함께 나누는 행복이 아니라 혼자만의 행복을 찾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남의 행복을 빼앗아 자신의 행복을 챙기려는 욕심에, 자기 동생의 아내를 빼앗아 재혼을 하는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합니다. 이 안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아픔과 상처를 당했을까요?

재혼이 옳지 못하다고 주장해서 죽음을 당해야 했던 세례자 요한, 세례자 요한의 죽음으로 인해 아파하는 많은 사람들, 파혼을 당한 헤로데의 본처인 아라비아 공주, 이에 앙심을 품은 아라비아 왕의 전쟁으로 죽음을 당한 많은 사람들, 그리고 그 죽음을 봐야만 했던 가족과 이웃. 단순히 자기만의 행복을 좇으려는 헤로데의 이 욕심이 이렇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아픔을 당할 수밖에 없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면 과연 헤로데는 행복했을까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는 평생 불안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는 “그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다. 그가 죽은 이들 가운데서 되살아난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불안해합니다.

이 모든 것을 볼 때, 혼자만의 행복은 진정으로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오히려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지 않지만, 남과 더불어 하려는 마음이 있을 때 그래서 남의 아픔을 같이 아파할 때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과연 어떤 행복을 추구하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는 오늘입니다.

혼자만의 행복인가? 아니면 함께하는 행복인지를….
 
함께하는 행복을 찾아보세요.




가슴을 펴라('행복한 동행'중에서)



1954년, 브라질 국민들은 월드컵에서 자국 팀이 우승할 것을 확신했다. 그런데 헝가리 팀에게 어이없이 패하는 바람에 8강전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선수들은 충격에 휩싸였고 이내 비통함에 젖었다. 귀국하면 욕설과 비웃음 등 온갖 수모를 당할 것이라 생각했다. 축구는 브라질 사람들에게 종교와도 마찬가지였기 떄문이다.

그러나 비행기에서 내린 선수들은 이외의 광경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공항에는 대통령과 2만여 명의 팬들이 비난의 함성 대신 대형 현수막을 들고 선수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드리고 있는 현수막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패배했지만 가슴을 펴라!"

그들은 공항을 빠져 나가는 선수들을 조용히 지켜 보았다. 선수단은 일순간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4년 뒤, 브라질 팀은 마침내 줄리메 컵을 조국에 안겼다. 선수단이 입국하던 날, 선수들을 태운 전용기가 공항에 모습을 드러내자 F-16 전투기가 호위했고 리우데자네이루 공항에는 3만여명의 팬들이 나와 선수단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공항에서 시 중심의 광장에 이르는 도로에도 100만 명의 시민들이 그들을 뜨겁게 환영했다. 환영 인파의 물결은 가슴 뭉클한 감동을 자아냈다.

선수들의 실패에 질책보다는 묵묵히 지켜보는 것으로 응원을 보낸 브라질 시민들이 함께 일궈 낸 값진 우승이었다.
 
 
 
 “Give me here on a platter the head of John the Baptist.”
The king was distressed,
but because of his oaths and the guests who were present,
he ordered that it be given, and he had John beheaded in the prison.
(Mt.14.8-10)
 
 
 
만약 날개가 있다면 - Takefumi Hak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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