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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난이라는 축복 / 최시영 신부님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8-06 조회수936 추천수11 반대(0) 신고
‘가난’은 내가 수도생활을 시작한 이래 수련원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에게는 목 안의 가시와도 같은 주제이다.
 
2년간의 수련을 마친 후 나는 부족함을 느끼지만 그래도 한 수도자로서 하느님 나라를 위해 그리고 이웃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가난과 정결 그리고 순명의 삶을 살겠습니다.’ 라고 교회 앞에서 공적으로 서원을 발하였다.
 
지금까지 수도 생활 안에서 가난의 도전을 여러 차례 받아왔다.
 
수련원 시절 그 비참한 상황을 보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주어진 일이었기에 마지못해 억지로 매주 행려자 병동을 방문했던 일과 1993년 마닐라에서 삼수련을 받던 중 빈민지역에 들어가 그들 가운데서 살던 한 주간의 생활 등 지금까지 열악한 상황을 접하게 될 때마다 내 안에서 느껴지는 가난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거부감은 나 자신도 놀랄 정도로 매우 깊다.
 
그럴 때마다 가난을 싫어하는 나 자신과 씨름을 해야만 했다.

  
 지금 한 달 가까이 예수님과 부자 청년의 만남 앞에 서 있다. 윤리적으로나 종교적으로 그리고 가정적으로도 그렇게 성실한 삶을 살아가는 그 청년, 여기에 더하여 경제적으로도 윤택한 삶을 살아가는 그 청년은 아직도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다.
 
자신의 삶이나 가진 재산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어떤 결핍, 그것은 영원한 생명에 대한 결핍이었다. 예수님은 이 청년을 아주 유심히 보셨고 그를 사랑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청년이 당신의 사람이 되어주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당신과 함께 있자고 초대하셨다. 그러나 청년은 슬픔에 잠겨 근심하면서 물러갔다고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가 가진 많은 재산을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가 찾던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가진 재산을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시오.’라는 초대를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하신 것은 아니었다. 당신 마음에 두신 이들, 특히 사도들처럼 당신의 제자가 되고, 당신의 일을 함께 할 사람들에게만 초대하신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이런 직접적이고 근본적인 초대를 받지 않으면 세상적인 것, 예를 들어 재물이나 명예 등에 삶이 좌우되어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런 삶은 하느님을 공경하는 그리스도인의 삶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분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이 길 외에는 없는 것일까? 복음서는 이 외에 다른 길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누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기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합니다.”(마태 16, 24-27 참조)


  예수님은 왜 이렇게 어려운 도전을 하실까? 이 초대 앞에 설 때마다 27년 가까이 이러한 갈등이 내 안에서 올라오곤 하였다. 그러나 요즘 그 청년에게 말씀을 건네시는 예수님을 곰곰이 바라보면서 - 예수님의 이 초대가 도전으로 인식될 수도 있겠으나 - 그분의 의도는 전혀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스치고 간다.
 
가난에로의 초대는 도전이 아니고 어쩌면 그분의 선물이며 축복이고, 그분께서 당신의 사람에게 주시는 권능이고 권리일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복되어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 나라가 그대들의 것이니.”(루카 6, 20 참조)
 

  그러고 보니 가난하지 않았기 때문에 짊어져야했던 수많은 내 삶의 무게들이 비로소 드러난다.
 
무엇을 더 가지고 더 쌓아 두어야 할지, 어떤 기술을 더 습득해야 하며, 어떻게 하면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좀먹거나 녹 쓸지 않도록 보존하고 개발할 수 있으며, 어떻게 하면 빼앗기거나 잃어버리지 않을까를 걱정해야만 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부끄러운 것은 내가 가난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이웃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만일 당신이 하느님의 선물을 알고 또 ‘나에게 마실 물을 주시오’ 하고 당신에게 말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았더라면, 오히려 당신이 그에게 청하였을 것이고 그는 당신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입니다.
 
그 여인은 예수께 ‘주님, 저에게 그 물을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요한 4, 10-15 참조)

  나도 그 사마리아 여인처럼 청한다.
  “주님, 저에게 그 가난함을 주십시오.”
  이런 고백을 드리고 보니 가난이 마치 그분 자신인 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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