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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영혼의 갈망!
작성자황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7-08-07 조회수1,008 추천수11 반대(0) 신고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에 대한 묵상』
황 미숙 소피아 글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54-58

그때에 54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시어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그러자 그들은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55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56 그의 누이들도 모두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57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58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그곳에서는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셨다.

요즘 가짜 학위 파동 뉴스들이 보도되고 있는데, 우리 사회의 오래된 병폐 중의 하나인 학력 병의 폐해를 지켜보는 마음은 그저 씁쓸하기만 하다. 외국 유명 大에서 "~~했따!" 하면, 진위도 가리지 않은 채 애드벌룬처럼 붕~붕 떴다, 가짜 바람이 새어나가면 공중에서 여지없이 쭈굴쭈글해져 아래로 추락하는 경우들이 비일비재하다.

우리에겐 늘 이력서와 신상명세서가 따라다닌다. 특히 학력과 지연, 혈통 등에 민감한 우리 사회에선 이력서 한 장으로 인생의 진로가 뒤바뀌기도 한다. 그래서 이력서를 화려하고 촘촘히 채우기 위해, 인성과 인격 함양을 키워주어야 할 어린 청소년들 때부터, 경쟁 사회를 헤치고 나갈 만반의 준비를 하느라 눈코 틈새 없이 바쁘기만 하다.

우리 사회에선 취직하거나 결혼을 할 때조차도 이력서나 신상명세서에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나는 학구파가 아니어서 썩 좋은 대학을 나오지 못했는데, 취직할 때마다 내 최종 학벌이 이력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신경이 쓰였지만, 그런대로 큰 설움이나 편견은 겪지 않았었던 것 같다.

이력서나 신상명세서 등이 한 사람의 본질을 알 수 있는 전부는 아니다. 그럼에도, 사회의 흐름에 편승해 나 자신도 모르게 외적으로 보이는 신상명세서나 이력서 등에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겪어보지 않고선, 그 외양의 훌륭함만으로는 다 알 수가 없다는 뜻이리라. 신비 그 자체인 한 인간을 알아가고, 한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는 과정은 영혼과 영혼의 본질적인 만남과 인내가 있어야 한다.

역시 가장 좋은 사람은, 처음과 끝이 똑같은 "한결같은 사람"이 신뢰가 가고 우정이 오래도록 지속된다. 한동안 소식이 없어도, 모습이 안 보여도, 늘 마음으론 연결이 되어 있고 평행선을 유지하는 관계,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님을 향해 서로 같은 마음과 지향을 두는 영적인 친구가 참 좋은 것 같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신상명세서를 줄줄이 사탕으로 나열하고 있다.

"아니, 저 개똥이(*^^*) 예수가 한양에서 과거에라도 급제해,
시방 사또가 되어 금의환향(錦衣還鄕)이라도 했단 말인가?
언제 저렇게 유식해졌을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언제 독학이라도 해서 검정고시에 합격이라도 했는지…!"

예수님의 신상명세서를 환히 꿰뚫는 그들에게, 예수님의 휘황찬란한 등장은 너무도 충격적인 사건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예수님의 가르침, 그분 존재가 의미하는 바를 알려 하기보다는 자신들이 아는 예수님의 이력서와 신상명세서에 눈이 가려져, 예수님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눈 뜬 소경들이 바로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이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 그들은 어쩌면 교회에 오래도록 몸담아 온 우리 자신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예수님에 대해 아는 것도, 들은 것도 많고, 오랜 기간 예수님과 친숙한 관계를 맺어 오고 있어, 일사천리로 예수님의 신상명세서와 이력서를 줄줄이 사탕으로 나열할 수 있다…

그러나, 오래도록 신앙생활을 해 오면서도, 신앙 연령이 더 이상 성장하지 않은 채 스무 살에 멈추어 있다면, 내가 아는 예수님은 여전히 스무 살에 내가 경험하고 알았던 스무 살 예수님이시다.

내 신앙 연령이 스무 살이라면 예수님 연세도 스무 살이 되고, 내 신앙 연령이 마흔 살이라면 예수님 연령이 마흔 살일 수도 있다.

실제 세상의 나이와 신앙의 연륜은 오 육십이 다 되었는데도, 스무 살 아니 청소년기에 만났던 예수님만을 알고 있다면, 오로지 내가 아는 예수님만을 받아드리고 증언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내가 아는 예수님이 아닌 다른 예수님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배척해 버린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처럼…

그들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과 성장 배경 등을 누구보다도 더 상세히 알고, 예수님과 친숙한 고향 사람들이지만, 오히려 그들이 안다는 얕은 지식과 깊이가 없는 친숙함이 예수님의 존재를 알고 받아들이는 데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열심히 성당에 다니지만, 예수님을 알고자 하는 노력과 갈망이 깊어지지 않고 그분과의 관계가 성숙하여지지 않는다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채 배척해 버린 예수님의 고향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나도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처럼, 나만의 옛 고향이라는 울타리 안에, 옛날 옛적 소싯적에 만났던 예수님을 그대로 가두어 두고 있지 않은지 모르겠다. 과연 내 영혼 속에 와 계신 예수님은 현재 몇 살이실까? 연세가 궁금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 관한 초보적인 교리를 놓아두고 성숙한 경지로 나아갑시다."
<히브리서 6, 1>

안드레아 가스파리노 신부님 말씀처럼, 하느님은 찾아야 할 분이며, 발견했더라도 여전히 찾아야 할 분이다. 나도 언제까지나 예수님의 고향 사람만으로 머물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그분을 찾아가는 여정 중에, 묵상 방을 찾아 와 형제·자매님들과 함께, 이렇게 부족한 묵상 글로서나마 나눔의 시간도 가지고 있다.

주님, 더욱더 당신을 알고자 하는 갈망을 심어주소서!

"하느님과 만남이 이처럼 짧아서 내 삶을 바꾸지 못할 것처럼 느껴져도 용기를 잃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하느님을 찾아 나서는 것이 곧 사랑하는 것이다. 하느님은 찾아야 할 분이며, 발견했더라도 여전히 찾아야 할 분이다. 하느님께는 결코 이르지 못한다. 그러나 그분께 다다르기 위한 이 투쟁 안에 사랑이 존재한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 中, 안드레아 가스파리노 신부님」

여름 휴가 안전하고 건강히 잘 보내세요.*^^* ♬ Whispering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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