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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381) 황당시리즈 1편 (모텔에서)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7-08-08 조회수958 추천수12 반대(0) 신고
 
 
 
며칠전에 아들 딸과 함께 여행 겸 피서를 갔다.
남편은 그때 일주일 동안 중국 여행을 가서 함께 하지 못했다.
아들의 당직 일정이 워낙 변화무쌍이어서 어차피 네 식구가 함께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 아들이 시간 났을 적에 가자 해서 우리끼리 떠났다.  그런 관계로 팬션은 미리 예약을 하지 못했다.
휴가철에는 최소한 한달 전에 해야 한다고 한다.
 
 
닥치는대로 모텔에 들자 하고 떠났는데 첫날 외관상으로 그럴듯한 모텔에 들어가 큰방을 달라고 했더니 4만원이라고 한다.
방은 더블침대를 놓고도 공간이 무척 넓어 대여섯명도 충분히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옷장과 쇼파에 TV 냉장고 비디오 컴퓨터 정수기 탁자 화장대가 고루 갖추어져 있고 꽤 깔끔했다. 가구색깔이 고급스러운  밤색으로  마음에 들어 기분이 더 좋았다.
 
 
침대에 벌렁 누우며 야호! 쾌재를 불렀다.
야 ! 좋다!
얼마나 싸고 좋으냐!
비싼 팬션에 가지 않아도 이렇게 괜찮은 숙소가 4만원이라니....
그런데 한참을 희희낙락하며 침대에서 쇼파에서 수다를 떨다가 화장실에 갔는데.....
세상에 이런!
 
이건 아니잖아?
이건 아니잖아?
 
변기에 앉으니 드르럭거리며 뒤로 자빠질 듯이 움직인다.
바닥과의 사이에 시멘트를 발라 고정을 시켜야하는데 그냥 변기를 앉혀만 놓은 것이었다.
수도꼭지도 헐렁거리며 제멋대로 움직이고, 수건걸이는 한쪽이 떨어진 걸 누런색 테프로 붙여놓은 것이 그나마 벽에서마저  떨어져 삐딱하게 기울어진 채 때밀이 수건이 하나 걸쳐져 있다.
 
필요없이 휑하게 넓은 화장실은 바닥도 벽도 칙칙한 빛깔인데 구석쟁이에 발 달린 욕조가 을시년스럽게 놓여있었다.
누렇게 변색된  보트처럼 생긴 발 달린 욕조는 왠지 낯설고 가까이 가기가 싫었다.
 
꼭 영화 <사이코>에 나오는 모텔에 와있는 느낌이었다.
영 방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세상에...
아무리 싸구려 여인숙도 이보단 낫지 않을까 싶었다.
서비스를 업으로 하는 더구나 모텔 이름이 붙은 곳이 이렇다니,  최소한 고장난 곳은 손을 보아 손님을 맞아야할 것이 아닌가.
 
돈 몇푼만 주고 기술자 부르면 금방 고쳐놓을텐데 게으른 것인지 관심이 없는 것인지...
고양이 얼굴 세수하듯이 방만 그럴듯하게 해놓고 화장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정말이지 너무 황당해서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거기까지도 참을만했다.
문이 잠기지 않는 것이었다.
밤에 외출도 해야 하고 잘때는 문을 잠가야 하는데  밖에서도 잠글 수가 없고 안에서도 잠글 수가 없다.
아래층 카운터에 갔던 아들이 돌아와서 하는 말.... 
 
"아 참 할머니 대단해. 하루 잘 건데 뭘, 그러면서  있는 힘껏 잡아당기면서 잠궈보라는데."
기가 막힌다는 듯이 허허 웃는다.
아주 만만디 할머니다.
 
아들이 젖먹던 기운까지 기를 쓰며 문을 잡아당기면서 안에서 잠그는 연습을 수없이 해보았는데 한참을 땀을 뺀 후에야 겨우  요령을 터득했다. 
잠근 문을 열 때도 있는 힘을 다해 힘껏 잡아당기며 열어야 했다.
무조건 힘만 준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요령도 필요한 이상한 문이었다.
원 이렇게 힘들어서야!
기껏 놀러와서 문과 씨름을 하다니.....
그나마 열쇠가 약간 비틀려 있어서인지 밖에서는 잠글 수도 없었다.
 
 
방을 바꿀까도 생각했지만 참았다.
귀찮기도 했고 할머니 말대로 하룻밤인데 뭘 참지 하면서.....
그런데 나가는 길에 보니 카운터 앞에 한 남자가 열쇠 때문이라고 하면서 앉아 있었다.
주인이 어디 갔는지 없어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우리도 스페어 열쇠라도 있을까 싶어 주인을 기다렸지만 감감소식이어서 그냥 외출을 했다.
어차피 방마다 다 그 모양인 듯하니 바꿔봐도 별 수 없을 듯했다.
 
 
분수쇼가 벌어지고 있는 호수에 가서 구경도 하고 걷기도 하면서 밤풍경을 즐기면서도 문을 잠그지 않은 것이 영 신경이 쓰였다. 지갑은 가지고 나왔지만 여행백들은 그대로 두었으니 혹시라도 도난당하면 갈아입을 옷들이며 약도 있고 하여 마음이 편치 않아서인지 갑자기 배가 쌀쌀 아프기 시작했다.
 
 
빨리 가자고 재촉하여 모텔로 돌아오니 가방들은 그대로 있었다.
휴우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카운터에 아무도 없고 사람이 마음대로 드나들어 불안했는데 그래도 짐이 그대로 있는 걸 보면 고장 인심은 괜찮은 듯 하기도 한데.....
 
 
칠십이 훨씬 넘은 듯한 주인 할머니가 체크아웃할 때 그래도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를 한다. 상냥하게 웃으면서....
"화장실 손 좀 보시지요."  하고 한마디 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준비가 안 된 채 손님을 맞는  모텔주인 할머니의 모습에서 문득 나 자신을 보았기 때문이다. 
준비 안 된 신앙인으로서의  나의 모습을........... .
머지않아 주님 앞에 설 나를 보면서  주님도 지금의 나만큼 황당해 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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