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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춘원 이광수가 '보경(寶鏡)'임을 알다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07-08-08 조회수558 추천수3 반대(0) 신고
               춘원 이광수가 '보경(寶鏡)'임을 알다 
                                     방영주 장편소설 <돌고지 연가>를 읽고 
      
 
 
 


▲ '도서출판 마야'에서 출간한 방영주 장편소설 <돌고지 연가> 표지.  
ⓒ 도서출판 마야

춘원의 '자서전' 같은 작품

춘원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하고 살았다. 그의 작품들도 많이 읽지 못했다. 원고지로 따져 총 8만 장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방대한 작품 양을 놓고 보면, 그의 작품(장편)들을 고작 서너 편 정도 읽었다는 것은 부끄럽고도 죄송스러운 일이다.

춘원이 한국 현대문학 개척기의 최고 선구 문인이라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가 살았던 시대, 파란만장한 삶, 문학에 쏟은 엄청난 열정과 천재성을 단편적으로나마 들으며(사실은 그것만으로도), 그에 대한 기본적인 경이감과 존경심 같은 것이 일찍부터 장만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존경심을 늘 덮어 누르는 것이 있었다. 그의 삶과 문학을 보자면, 그도 마찬가지로 전체를 보아야 한다. 그의 삶과 문학에는 분명한 오점이 있다. 친일행적과 친일문학이다. 그것은 전체 속의 일부이지만, 그리고 그것으로 전체를 매도하거나 평가할 수는 없다는 관점들을 수용한다 하더라도, 엄연히 존재하는 그것을 온전히 지울 수는 없다.

어쩌면 그런 생각 때문에 춘원을 좀더 열심히 적극적으로 읽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미당의 시를 대할 때마다(나는 고교 시절에 외웠던 미당의 '국화 옆에서'를 지금도 가끔 암송한다) 느끼는 연민이나 분노와는 좀 성격이 다르지만, 춘원을 대할 때마다 갖게 되는 슬픔은 나로 하여금 늘 춘원과 거리를 두게 했다.

그러다가, 여전히 그런 마음 상태로 최근 방영주 장편소설 <돌고지 연가>를 읽었다. 고정적인 일과로 매일 오후 2시간씩 하는 걷기 운동도 쉬고(나는 매일의 걷기 운동이 필수인 당뇨 환자다), 이틀 동안 꼼짝 않고 푹 파묻혀 읽었다. 그만큼 재미에 빠져 여념 없이 읽었다는 얘기다.

1892년 3월 4일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난 춘원은 1950년 10월 25일, 한국 전쟁 와중에서 납북 도중 오늘의 자강도 강계 만포에서 지병인 폐렴으로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의 죽음까지도 민족 비운의 소용돌이를 극명하게 반영하는 셈이다.

춘원이 간지 반세기가 지난 오늘 춘원은 <돌고지 연가>라는 '자서전'을 들고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났다. 부활이요, 환생이다. 그러므로 오늘 자서전 형식으로 춘원을 이야기하는 방영주(方英柱)라는 작가는 춘원의 '화신'일 수도 있다.

방영주는 오랜 세월에 걸쳐 춘원을 집중적으로 읽고 공부했다. 수많은 자료들을 찾고 수집한 다음 끈질기게 분석하고 연구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장편소설 <돌고지 연가>를 집필하면서 과감하게 '일인칭' 기법을 선택했다.

일인칭 기법은 '자신감'의 반영일 것으로 생각된다. 작가가 춘원과의 '일체감'을 유지하는 가운데서, 춘원의 가슴과 육성으로 그를 이야기함으로써, <돌고지 연가>는 춘원의 진심 어린 자서전이 되었고,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어두운 시대, 파란만장한 삶

이 소설은 1950년 서울을 점령한 인민군에 의해 납북된 춘원이 강계에서 월북 작가 벽초 홍명희의 숙소에 기거하며 글을 쓰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미 몸이 쇠약해진 그는 자신이 직접 글을 쓸 수 없어 홍명희가 붙여준 홍명희의 보좌관인 인민군 장교에게 구술을 한다. 한때 작가 지망생이기도 했던 홍명희의 보좌관은 어렵지 않게 춘원의 구술을 받아 적는다.

이렇게 해서 춘원의 전기를 토대로 한 소설 <돌고지 연가>는 탄생한다. 춘원의 구술은 물론 가상(假想)이지만, 그런 식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시종일관 춘원의 구술을 실감케 한다. 이 소설은 춘원의 파란만장한 삶을 유장하면서도 오밀조밀하게 펼쳐 보인 다음, 구술로 자서전을 마친 춘원이 벽초에게 감사하고, 민요 '돌고지 연가'를 나지막이 읊조리며 저승사자를 따라 저승으로, 곧 춘원의 고향 '돌고지'에 '안착'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 소설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사이에, 모두 아홉 개의 중간 제목들이 층층이 춘원이 무수히 겪고 이루어낸 스케일 큰 삶의 굽이굽이를 세밀히 안내해주고 있다. 돌고지 연가, 민족의 길, 동경유학생(1), 교사의 길, 방랑의 길, 동경유학생(2), 독립의 길, 오욕의 길, 은둔의 길 등이다.

춘원의 가난하고 불우했던 어린 시절, 조실부모하고 고아가 된 사연, 동학을 통해 민족에 대한 자각을 얻게 되는 과정, 손병희의 도움으로 가능했던 일차 동경 유학 시절, 내무대신이 제의한 군수 자리를 외면하고 이승훈의 오산학교 교사로 가는 과정과 교사 생활, 만주와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시베리아를 떠도는 가운데서 벌어지는 사랑과 낭만과 처절한 생사의 협곡, 죽음 직전에서 구출되는 이야기 등이 참으로 흥미진진하다.

여러 단계를 거쳐 인촌 김성수를 만남으로써 이루어지는 2차 동경 유학(와세다 대학) 시절, 동경과 북경과 상해에서 펼치는 독립운동,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결국은 친일로 나아가는 이야기는 독자를 더욱 긴장과 비탄 속으로 몰아넣는다.

그런 긴박하고도 열정적인 이야기들 사이사이에 소개되는 춘원의 이루지 못한 안타까운 첫사랑 이야기, 결혼과 이혼, 연애와 재혼에 따른 가정사 이야기는 소설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

그리고 우리는 이 소설 속에서 우리 근세사의 빛나는 인물들을 무수히 만난다. 민족의 개화를 위해 젊음을 바쳐 공부했고, 민족의 광복을 위해 국내와 해외에서 분투노력했던 인물들, 안창호 선생을 비롯하여 우리 민족사를 장식한 수많은 민족지사/광복투사들의 생생한 모습을 접할 수 있다. 사이비 지식인들, 민족반역자들의 이름도 접하는 것은 물론이다.

자신의 친일문학과 행적에 대한 고뇌와 양심적 회한을 끌어안고 해방된 조국에서 은둔 생활을 하는 춘원의 심정과 처지는 애처로움을 자아낸다. 이 대목을 눈여겨보면 춘원은 또 다른 대표적 친일 문인 미당 서정주와는 많이 다름을 느낄 수 있다.

춘원은 해방된 조국에서도 문학 마당의 전면에 나서서 크게 '활약'한 미당과는 여러 가지로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만약 그가 한국 전쟁 때 납북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평생동안 자신의 친일에 대해 반성이나 사죄 한마디 하지 않은 미당과는 많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으리라는 희망적인 유추와 믿음을 갖게 한다.

작가 방영주는 그것까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미루어보건대, 춘원이 가족을 먼저 피난길에 오르게 하고 자신은 서울에 남아 '납북'을 자초했던 것은, 극악했던 일제 강점기 후반에 선택했던 자신의 친일에 대한 부끄러움과 양심적 회한의 '짐'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방영주 문체의 특이성

춘원의 아명(兒名)이 '보경(寶鏡)'이라는 사실을 이 소설을 통해 처음 알았다. 부친이 거울을 보는 태몽을 꾸고 낳았다고 해서 부른 이름이라고 한다. 춘원은 어느 면으로는 '시대의 거울'이다. 그의 삶과 문학을 통해 그가 살았던 시대와 오늘의 여러 가지 풍경이며 가치관들을 두루 비추어볼 수 있다. 그는 아명의 글자 뜻 그대로 일정 부분 '보경'의 의미를 지닌다.

이 소설은 춘원의 '자서전'이긴 하되, 춘원의 본래 문체와는 많이 다르다. 문장들이 대단히 간결하다. 부사와 접속사, 형용사의 사용이 철저히 제한되어 있다. 톡톡 튀는 듯한 짧은 문장들이 유장하게 겹겹이 쌓이고 파도처럼 밀려온다.

부사와 형용사를 많이 사용하는 아기자기하고 오밀조밀한 문장이 아님에도, 생동감 있는 짧은 문장들이 곳곳에서 정교한 풍경화를 그려내기도 하고 처연한 아름다움을 발산하기도 한다. 숨가쁘도록 짧게 끊어지는 간결한 문장이 어떤 면에서는 더욱 처연함을 발휘할 수 있음을 실감케 하고 또 확인케 한다.

하지만 모든 문장들이 100% 정확성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불명확하거나 모호하게 느껴지는 문장들도 간혹 만난다. 책의 첫머리에 배치된 '작가의 말' 첫째 줄에서 만나게 되는 "춘원처럼 말이 많은 작가도 드물 것이다"라는 문장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그 말이 "작가에 대한 갑론을박이 춘원처럼 많은 작가도 드물 것이다"라는 뜻임을 누구나 다 알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문장만을 떼어놓고 보면 '춘원 자신이 말이 많은 작가'라는 뜻이 된다.

문장 형태가 온전치 못하여 독자로 하여금 그 뜻을 미루어 알게 하는 것은, 작가의 철두철미하지 못한 태도로 비칠 수도 있다. 예리한 눈으로 그것을 포착한 독자들이 행여 서점에서 책을 들었다가 놓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든다.

279쪽에서 보게 되는 "그렇게 고백한 김준연(金俊淵)은, 좌익에 가담한 대부분의 솔직한 심정이었을 것이다"라는 문장도 "그런 김준연의 고백은 좌익에 가담한 대부분 인사들의 솔직한 심정이었을 것이다"로 바로잡아야 한다(이와 유사한 문장들을 여러 번 만났지만 그냥 넘기다가 279쪽에 이르러서 그냥 계속 넘길 수 없어 비로소 메모를 했다).

책의 첫머리 '작가의 말' 제목에 노출된 오자도 서점에서 책을 집어든 독자들에게 미더움을 주지 못하는 작용을 낳지 않을까 걱정된다. 책의 곳곳에서 보게 되는 오자들, 간결한 문체와는 어울리지 않는 토씨들과 불필요한 부호(쉼표)의 과도한 사용도 책의 가치와 연관하여 많이 거슬리는 것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 소설가 방영주 근영  
  
친일에 대한 '이해'와 '긍정'의 차이

춘원의 친일 문제에 대한 작가의 관점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고 싶다. 춘원의 변절과 친일은 당시 상황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일 수도 있다. 민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민족의 장래를 염려한 나머지 "스스로 희생양이 되기로 작정한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

"본인은 자료를 찾아 읽으면서, 춘원이 친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았다. 안창호를 중심으로 한, 우리 민족 지도자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는, 수양동우회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또한 민족의 탄압을 완화하려는 의도에서였다. 만약 자신이 나서지 않는다면, 독일의 유태인에 대한 대학살이 일본에 의해서, 한민족에 자행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였다. 스스로 희생양이 되기로 작정한 것이다. 누가 뭐래도, 춘원 이광수는, 민족의 장래를 염려하는 한국인이었다."

작가의 이런 말은 일단 어느 정도 설득력을 지닌다. 당시 상황에 대한 상세한 묘사는 작가의 주장이나 관점에 미더움마저 갖게 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해'의 차원일 뿐이다. 춘원의 변절과 친일을 당시 상황과 연관하여 이해는 할 수 있지만, '긍정'을 하기는 곤란하다.

이해는 할 수 있지만, 그 이해가 춘원의 변절과 친일을 정당화시켜주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의 온정주의도 결부되어 우리 모두 이해에는 도달한다 하더라도, 그럼에도 춘원의 변절과 친일은 그대로 춘원의 삶과 우리 역사 안에 '음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어찌할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오늘 자신의 친일에 대해 반성과 사죄 한마디 하지 않고 변명으로만 일관하다가 간 미당의 문학혼을 기린답시고 발행부수 톱을 다투는 일간지가 '미당문학상'을 제정 시행하는 현실을 살고 있다.

또 한국 최고 작가라고 하는 사람이 (과연 그럴지는 모르지만) "나도 일제시대에 태어났다면 친일을 했을 것"이라는 몰이성적 망발을 자행하는 가치관 혼돈의 시대를 살고 있다.

바로 이런 현실 때문에 우리는 더욱 '정의'와 '대의', '민족정기' 문제에 열중하게 된다. 거대 신문이 미당의 '친일·독재찬양 문학혼'을 기리는 현상과 이문열의 그런 매국적·사대적 주장이 계속 통용되는 현실이 계속될수록 그 반대적 가치관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이런 맥락 안에서 방영주 작가의 관점을 파악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더라도(춘원의 변절과 친일에 대한 방영주 작가의 관점을 이해는 하지만 온전히 수용은 못하더라도), 오늘 방영주 작가가 이룩한 문학적 업적에 대해서는 찬사를 아끼고 싶지 않다.

작가 방영주는 오늘 반세기 전에 타계한 춘원 이광수의 화신이 되었고, 춘원 이광수는 반세기를 건너뛰어 오늘 방영주의 작품으로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났다. 한국 현대문학 개척기의 거장이며 근대 민족사의 중요 인물인 춘원과 반세기 후의 후배 작가가 '일체'를 이루는 모습은 매우 의미 있고도 아름답다. 작가 방영주의 춘원 이광수에 대한 문학적 열정과 역량에 박수를 보낸다. 
 
 
2007-08-07 15:14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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