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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8월 9일 야곱의 우물- 마태 16, 13-23 묵상/ 현문현답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7-08-09 조회수623 추천수3 반대(0) 신고

현문현답

그때에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그런 다음 제자들에게 당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마태 16,13-­23)
 
이인주 신부(예수회)
◆우리는 많은 의문을 가지고 산다. 궁금한 것에 대해 얼마나 고민하느냐에 따라 그 답 또한 대단한 편차가 있다. 그러기에 좋은 답을 얻으려면 좋은 질문을 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영적인 질문 안에서 영적인 답을 구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깊게 생각해야 한다.
 
오늘 베드로 사도는 주님의 질문에 영적인 답을 하지만, 주님의 속 깊은 영적 차원을 알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해 추락하는 아주 쓴맛을 보게 된다. 늘 우리가 깊게 봐야 하는 것은 눈앞에 보이는 현상적인 것이 아니다. 내면에 흐르는 천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느냐?”는 질문에 다른 제자들은 요한·엘리야·예레미야라고 대답하지만 베드로는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한다. 이보다 더 정확한 답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영적 차원의 현답을 함으로써 베드로는 예수께 칭찬을 받는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그 복이 그대로 하늘에서 쏟아진다.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은총 관리를 잘하라고 했던가?
 
그런데 베드로는 은총 관리를 잘못했거나 아니면 사탄의 시기를 받았는지, 현답을 한 후 곧 낭패를 본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쓴맛을 보게 했는지 잘 보아야 한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앞으로 일어날 일을 다 아신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텐데, 어찌하여 수난 예고에 대하여 눈치를 채지 못할까? “그때부터 예수께서는 당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고 완강하게 반박했고 예수께서 그대로 직격탄을 날리신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고 꾸짖으셨다.
 
그러기에 알려면 제대로 알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역풍을 만날 수도 있다. 잘 모르면 되물어야 하고, 아무리 사랑과 충정이라 해도 그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예수님을 향한 베드로의 충정과 사랑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미 정해진 길을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향해 반기를 드니, 이는 예수님을 걱정하고 대책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아픔을 안겨드리는 것이다.
 
베드로가 예수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들었다면 “예, 저도 주님과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나도록 도와주십시오.”라고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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