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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자대비(大慈大悲)하신 하느님" --- 2007.8.13 연중 제19주간 월요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7-08-13 조회수570 추천수4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7.8.13 연중 제19주간 월요일
                                                 
신명10,12-22 마태17,22-27

                                                
 
 
 
 
"대자대비(大慈大悲)하신 하느님"
 


아침 기도 독서 때 야고보서의 말씀입니다.

“무자비한 사람은 무자비한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자비는 심판을 이깁니다.”

대자대비하신 하느님이라 일컫습니다.
 
시편 기도 때
우리는 자주 ‘주님은 너그러우시고 자애로우시다.’ 고백하곤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과연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닮았는지요?

종교자유정책연구원은 7.30일 발표한
‘정치와 종교에 관한 종교지도자 설문서’에서
종교지도자들은 종교의 개선과제로
‘성장주의’와 ‘배타성’ 순으로 드러났고,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가장 큰 종교로 천주교를 꼽았다 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바,
그리스도교의 배타성과 호전성입니다.
 
유일신을 신봉하는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부정적 특징으로
서구 역사가 이를 증명합니다.
 
참 많이 싸웠고 피를 흘렸으며,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갈등과 분열, 충돌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분명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모습은 이와는 거리가 멉니다.
전혀 배타적이거나 비타협적이지 않습니다.
 
성전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당신의 제자들이 성전세 납부 문제를 묻자,
자녀들의 세금은 면제되나
성전세를 납부하여 남들의 비위를 건드리지 말 것을 충고하십니다.
 
부수적인 것들에 집착해 본질적인 것을 잃지 않으려는 현명한 조치입니다.
 
성전세를 내지 않아 불필요한 충돌을 야기할 때 얻는 것보다
잃을 것이 많을 것임을 내다 본 것이지요.
 
가라지를 뽑다가 밀을 뽑는 경우나
녹을 지우려다 그릇을 깨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경우와 흡사합니다.
 
주변 모두를 배려한 공존공생의 평화를 위한 예수님의 분별의 지혜입니다.

바로 이게 종교의 본령입니다.

종교간 평화 없이는 세계 평화도 없습니다.
 
 하느님 안에서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바로 하느님의 너그러우시고 자비로우신 모습의 반영입니다.
 
새삼 사랑은 분별의 잣대요, 자비는 지혜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면 자비하신 하느님을 닮습니다.
 
하여 신명기의 모세 말씀처럼,
하느님만을 경외하고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하느님을 섬겨야 합니다.
 
하늘과 하늘 위의 하늘,
그리고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이요,
과부와 고아의 권리를 되찾아 주시고,
이방인을 사랑하시어 그에게 음식과 옷을 주시는 자비로우신 하느님이십니다.
 
결국 세상의 모두가 하느님의 것이요,
하느님 사랑에서 제외되는 자는 하나도 없다는 결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마음의 할례를 행하고,
더 이상 목을 뻣뻣하게 하지 말고 하느님을 닮아
너그럽고 겸손한 마음을 지녀야 하겠습니다.

바로 이 하느님의 사랑이
복음의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습니다.
 
호수에 낚시를 던져 먼저 잡히는 고기의 입에서
스타테르 한 닢을 꺼내 성전세로 낼 것을 명령하시는 예수님,
바로 온 세상 가득한 하느님의 부에서 자유자재
필요할 때 마다 꺼내 쓰는 하느님과 일치된 모습을 상징합니다.
 
수난을 예고하시면서도 사흗날에 하느님의 능력으로 부활할 것을 확신함으로
지극히 담담하신 모습 역시
하느님께 대한 무한한 신뢰와 사랑을 반영합니다.

매일의 거룩한 미사시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함으로,
또 사랑의 성체와 생명의 말씀을 모심으로,
자비로우신 주님을 닮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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