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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믿음의 어머니" --- 2007.8.15 수요일 성모 승천 대축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7-08-15 조회수555 추천수6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7.8.15 수요일 성모 승천 대축일 
                                                
요한묵11,19ㄱ;12,1-6ㄱ;10ㄱㄴ 1코린15,20-27ㄱ 루가1,39-56

                                                                  
 
 
 
"믿음의 어머니"
 


어제 저녁 끝기도 전
저는 몇 분의 수도 형제들이
싱글벙글, 히죽히죽 웃으며 기뻐하는 표정의 진기한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웬일인가 하여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성전 앞 감실 옆 시골 어머니 같은 성모님이
예수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제자리에서 보면 옆 얼굴 모습이 웃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가까이서 보니 정말 성모님도 아기 예수님도 웃는 얼굴이었습니다.

어제 제가
성모님이 오늘 수도원에 시집오신다고 하니 어느 자매는 웃었습니다만,
요셉 성인을 주보로 모신 저희 수도원 성당에
성모자상을 모시니 참 마음 뿌듯합니다.
 
저희 수도원의 오동나무를 깎아 정성껏 만든 성모자상,
참 뜻 깊고 역사적인 2007년 8월 15일 요셉수도원의 성모승천 대축일입니다.
 
소박하고 수수한 모습이 꼭 옛 어머니를 보는 것 같아 자꾸 눈길이 갑니다.
 
보고 보아도 그립고 보고 싶은 어머니의 얼굴,
하여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우리 모두는 영원히 어머니의 아들딸들입니다.
 
자주 험한 세상 힘겹게 살아가는 숱한 어머님들,
수도원을 찾아 이구동성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꼭 친정집에 오는 것 같다.”

이제 성당 앞 아드님 곁에 언제나 친정어머니 성모님 계시니,
성모님의 위로와 평화를 찾아
더욱 많은 자매들 친정집 요셉수도원을 찾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 피정 다녀간,
자녀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는
개신교 신학 대학의 어느 교수 자매님의 진솔한 고백도 생각납니다.

“성모마리아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싶은 심정 이예요.
  아드님 예수의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으로 인해
  얼마나 성모님의 고통이 컸을까 짐작이가요.”

자녀 문제나 남편 문제로 평생 고통을 안고 사는 어머니들 그대로 성모님입니다.
 
성모신심,
너무나 자연스럽고 절실한 영적현실로 우리 가톨릭교회의 유구한 전통입니다.
 
독신의 여자 수도자들에게 정배인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 열렬하듯이,
독신의 남자 수도자들에게 성모님께 대한 애틋한 사랑은 참 깊고도 아름답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그리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십시오.
 
오늘 동정녀 마리아, 하늘에 올림을 받으셨습니다.
 
왕 중의 왕께서 별빛 찬란한 옥좌에 앉아 계신 하늘에 올림을 받으셨습니다.
 
묵시록의 말씀대로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성모 마리아,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다스리십니다.

예수 아드님에 이은 성모 마리아의 승천, 사필귀정입니다.

평생을 아드님과 일치되어 온갖 고난을
하느님께 대한 믿음, 희망, 사랑으로 이겨내셨던
성모님의 삶에 대한 하느님의 보답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을 통해
죽음과 죄악, 지옥 권세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는
점차 가시화되고 있는 느낌입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원수를 그리스도의 발아래 잡아다 놓으실 때까지는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셔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파멸되어야 하는 원수는 죽음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그의 발아래 굴복시키셨습니다.”

성모님의 승천으로
바야흐로 우리의 마지막 원수인 죽음의 파멸이 시작되었습니다.

비록 지상에 몸담아 살고 있는 우리들이지만
이제부터 하늘에 희망을 두고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진감래입니다.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있어 영광의 부활입니다.

추위와 더위,
가뭄과 홍수,
뙤약볕과 폭풍우 등,
인고의 과정 후에 탐스럽게 익어가는 가을 열매이듯
성모님의 영광스런 승천의 열매도 그렇습니다.
 
비단 성모님뿐 아니라
대부분의 성인들의 삶,
인간의 눈으로 보면 참 기구하기 짝이 없는 팔자 사나운 인생이었습니다.
 
8월 들어 축일 지낸
성인 마리 비안네,
라우렌시오,
클라라,
막시밀리안 콜베 사제 모두 고통 가득한 일생이었습니다.
 
성인들의 특징은 늘 고통을 달고 다녔다는 것과 휴식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죽어야 휴식이요 끝나는 고통이었습니다.

어쩌면 우리 한국 어머니들의 삶과 그토록 닮았는지요.

한 번 여러분의 어머님들의 일생을 한 번 묵상해보십시오,
 
대부분 고통으로 점철된 어머니들의 일생,
그대로 마리아 성모님의 삶입니다.
 
하느님의 보이는 얼굴이 어머니의 얼굴이요,
하느님의 보이는 마음, 보이는 사랑이 어머니의 마음,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이런 어머니의 사랑으로 유지되는 대한민국입니다.

아마 하느님의 마음에, 사랑에 가장 가까이 근접해 있는 분은
어머니 하나일 것입니다.
 
이런 모성애에 비하면 부성애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남자들은 아무리 나이 먹어도 어머니의 영원한 철부지 아들들이기에,
남편을 모성애로 아들 대하듯 하면 부부간의 평화는 순식간에 해결될 것입니다.

성모님이나 성인들,
삶의 고통에 압도당하지 않고
이를 훌쩍 뛰어넘어
내적평화와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단 하나 하느님 믿음입니다.
 
엘리사벳의 성모님께 대한 고백에서 환히 드러납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신 분!”

이런 믿음 있어 고통 중에도 설레는 행복입니다.
 
다음 아침기도 독서 때 이사야의 말씀, 그대로 성모님의 고백 같습니다.

“하느님 생각하면 나의 마음은 기쁘다.
  나의 하느님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그는 구원의 빛나는 옷을 나에게 입혀주셨고
  정의가 펄럭이는 겉옷을 둘러 주셨도다.
  신부처럼 패물을 달아 주셨다.”

하느님만이 우리의 사랑이요 행복일 때의 내적풍요를 상징하는 말씀입니다.
 
그 무슨 고통도 이런 내적 부요의 사람들의 몸과 마음 하나 다치지 못합니다.
 
이런 믿음은 찬미와 감사의 고백으로 표현되기 마련이며,
고백과 더불어 굳세어지는 믿음입니다.
 
하느님께 드리는 우렁찬 찬미와 감사의 기도와 더불어
점차 사라지는 온갖 두려움과 불안, 고통들입니다.
 
곧 이어 도래하는 하느님 주시는 내적평화와 기쁨, 행복입니다.

믿음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 그대로 찬미의 어머니였습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네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이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의 고백이자 초대교회 신자들의 고백이었고,
저녁기도 때 마다 성모님과 함께 기도 바치는 우리의 고백이기도합니다.
 
제가 자주 말씀드리다 시피
찬미와 감사는 영혼의 양 날개와 같아
고통의 현실 안에서도
푸른 하늘의 자유를, 긍정적 낙관적 인생을 살게 합니다.
 
땅의 일에 집착하기로 하면
갖가지 어려움과 고통으로 곧장 숨 막혀 질식할 것입니다.
 
결코 부정적 비관적 인생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은혜로운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시간,
승천하신 성모님과 함께
한마음으로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행복한 우리들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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