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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8월 16일 야곱의 우물- 마태 18, 21-19,1 묵상/ 용서할 수 있는 능력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7-08-16 조회수528 추천수7 반대(0) 신고

용서할 수 있는 능력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그러므로 하늘나라는 자기 종들과 셈을 하려는 어떤 임금에 비길 수 있다. 임금이 셈을 하기 시작하자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 하나가 끌려왔다. 그런데 그가 빚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아내와 자식과 그 밖에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그러자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제발 참아주십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 종의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다.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났다. 그러자 그를 붙들어 멱살을 잡고 ‘빚진 것을 갚아라.’ 하고 말하였다. 그의 동료는 엎드려서, ‘제발 참아주게. 내가 갚겠네.’ 하고 청하였다.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서 그 동료가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동료들이 그렇게 벌어진 일을 보고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죄다 일렀다.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들여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그러고 나서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하였다.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들을 마치시고 갈릴래아를 떠나 요르단 건너편 유다 지방으로 가셨다.
(마태 18,21-­19,1)
 
전의이 수녀(샬트로성바오로수녀회 서울관구)
◆셈하기 좋아하는 우리의 마음은 간장종지만하다. 그래도 베드로는 제법 큰 간장종지 마음을 지녔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주님께 자신의 넉넉함을 은근히 내비친다. “주님,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합니까? 일곱 번이면 되겠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하여라.”
 
빗물 한 방울이 태평양의 바닷물과 만나면 어떻게 될까? 주님께선 한량없는 하느님의 자비를 입고 살면서도 자기 동료의 작은 죄를 용서해 주지 못하는 간장종지 같은 마음을 지닌 우리에게 이르신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고. 필경 어떤 이는 한 번, 두 번, 세 번 하며 이번이 몇 번째인지 헤아릴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 다시금 알아들으라고 만 탈렌트를 빚진 종의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당시 헤로데 임금의 1년 수입이 구백 탈렌트였다고 하니 만 탈렌트는 당시 화폐가치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액수다. 이 엄청난 빚을 갚을 길이 없다는 것을 안 임금은 전액을 탕감해 주었다. 그런데 그 종은 자신한테 작은 빚을 진 동료의 애원을 뿌리치고 감방에 가두었다. 하느님께 죄를 탕감받은 우리는 여전히 고집스럽게 형제의 눈에 든 티를 끄집어 내겠다고 야단법석 이다.
 
주님께선 형제에게 인색한 우리에게 다시금 엄중히 말씀하신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감옥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마태 5,26)라고. 우리는 왜 무한히 넓은 용서의 바다에서 하나 되지 못하고 간장종지를 고집하고 있는가?
 
만 탈렌트를 탕감받고도 자신에게 빚진 동료를 용서하지 못한 종은 결국 감옥에 갇히고 만다. 하늘에서 아무리 많은 비를 내려주어도 받을 사람이 항아리 뚜껑을 닫아놓고 있다면 담을 수 없는 이치와 같다. 내 마음 안에 하느님을 향한 갈망이 전혀 없다면 아무리 많은 은총이 부어져도 소용이 없다. 마찬가지로 많은 은총이 쏟아져 내려오지만 우리 안에 그분의 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용서의 은총을 맛볼 수 없다.
 
용서할 수 있는 힘은 나보다 훨씬 크신 분이 내 안에 오셔야만 가능하다. 그분이 우리 안에 오셔서 일하셔야 한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나는 점점 작아져야 하고 그분은 점점 커지셔야 한다.”고 고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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