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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과 용서는 하느님의 속성입니다(마태복음18.1~35)/박민화님의 성경묵상
작성자장기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7-08-16 조회수706 추천수3 반대(0) 신고

  2007년 8월 16일 연중 제19주간 목요일 마태복음

  마태오복음 18장은 교회 공동체의 설교입니다.

 

   어린 아이처럼 자신을 낮추라는 예화에서 보면은

   어린이는 마음이 없습니다. 

   즉 원죄는 있지만 선악을 아직 사용하지 않는 나이입니다.

 

   엄마가 바쁘게 일을 하면서 5 세된 아이에게 전화가 오니까

   엄마 없다라고 말하라고 하니까.

   아이가 하는 말은 '엄마가 없다라고 하시랍니다.' 라고 말을 합니다.

 

   즉 아이는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 할 때 이 어린이(마태 10,42)라는 뜻이

   하느님의 어린양, 소자, 작은 자 등으로 사용이 되었지만 

   여기에서 어린이는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자신을 낮추다라는 말은 겸손하라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교만이라는 말은 헬라말로 ′퓌시오오 ′인데 이 ′퓌시오오′는

     본성이라는 ′퓌시스′라는 말에서 나오는데,

 

    아담 하와가 교만해서 하느님과 같아지기 위하여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원죄를 지은 것입니다.″

 

   우리들은 누구나 아담 하와로부터 유전이 되는 원죄가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예수님의 마음으로 변화가 되어야

   영적으로 겸손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육적으로는 자기를 자랑하지 않는 사람,

   돈 자랑을 하지 않는 사람,

   자식과 자기 식구들을 자랑하지 않는 사람을 겸손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영적으로는

    내가 시기, 질투 하는 사람이거나 남을 미워하고 심판(마태 7,1~3)하는 

    사람은 즉 예수님을 미워하고 심판하고 박해하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해야 겸손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는님의 속성인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십자가 사건인 밀알(요한 12,24)이 썪어 죽어야

   많은 열매인, 성령의 열매인

   사랑, 기쁨, 평화, 인내, 겸손 , 용서의 열매(갈라 5,22~23)를 맺어야 

   심령의 변화가 되는 사람이고

   어린이처럼 겸손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한 예고를 세 번이나 하셨습니다.

 

   우리들이 한 번에 다 죽지 않고

   계속해서 우리들의 마음이 죽고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신령체 부활을 할 때까지

   계속 우리들의 마음을 죽이고 비우는 것이 우리들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나의 육이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나의 영이 부활하는 것이 나의 십자가 사건이며,

   이런 사람이 산 제물로 하느님께 나를 바치는 사람이며,

 

   영적으로 성전세를 바치는 사람입니다(로마서 12,1)

   이런 사람이 부활하는 사람입니다.

 

   둘(그리스도 + 나)이나 셋(성부, 성자, 성령+나)이 기도할 때(마태 18,20)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는 말도

   육적으로 보면은

   실제로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모인 곳에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는 뜻으로 보아도 되지만,

 

   영적으로 보면은

   그리스도와 내가 기도하는 것이 둘이 기도하는 것이며,

   성부, 성자, 성령과 내가 기도하는 것이 셋이 모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마태 18.15에서

  "교우가 죄를 짓거든 단둘이 마주하여 꾸짖으시오

   그리고 말을 아니 들으면 둘셋이 가서 타이르고,

   그래도 말을 듣지 아니하면 교회에 맡기시오." 라고 했는데

   여기에서도 죄는

   헬라 말로 ′하마르티아′ 인데 이 ′하마르티아′는 원죄라는 말입니다.″

 

   인간적으로 육적인 말로 원죄를 타일러서 고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도 둘이나 셋은 그리스도와 나, 성부, 성자, 성령과 내가

   함께 가는 것이 셋이 가는 것입니다.″

 

   제가 잘 아는 봉사자인 두 자매가

  둘이서 마음이 상해서 서로 상처를 받고 주고 하는 것을 보고

   영성이 높은 사람이 먼저 용서와 화해를 청해야 한다고

   두 자매에게 똑같이 말을 했었는데,

 

   두 자매는 나보고 편애를 한다고 나에게 싫어하는 눈치었습니다.

   육적인 잘못을 지적을 하면은

   싸움만 더욱 시키는 격이었습니다.

 

   먼저 죄(원죄)를 지은 형제 자매에게

   그리스도를 만나게 해 주어야 할 것 같아서

   기도를 계속해서 하고 성경 말씀을 읽도록 권유를 해서

   나중에는 두 자매님들이 화해와 용서를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으로 우리들 안에 들어 오셔서 말씀의 열매인

   사랑의 빛으로 비추어 주실 때

   우리들의 죄를 깨우치게 되는 것입니다.

 

   에덴동산 안에 생명나무 열매와 선악과나무 열매를 하느님께서

   두시고 생명나무 열매(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를 먹으라고 했는데

   선악과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써 원죄를 지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생명나무 열매인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레마 말씀을

   매일 매일 먹음으로써 선악이 사랑으로 완성이 되는 사람이

   선악이 없어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선악이 없다는 것은 예수님이 죄인으로 간주했던

   세리 마태오하고도 같이 식사를 했고,

 

   간음하는 창녀인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향유를 바르고 머리카락으로 닦아 주어도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는 이 여인이 행한 일이 전해져야 한다고

   칭찬을 하셨으며,

 

   더럽다고 생각을 해온 나병환자를

   안수를 해서 치유해 주시는 것은

   예수님께서는 원죄가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성모님도 어린 아이처럼 겸손한 분이십니다(루가 1,48)

 

   회개는 세상에 있던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로 되돌아가는것이 회개이지만 

   영적으로 보면은 

   회개는 진리 성령으로 새로이 심령이 변화된 것을

   회개라고 하는 것입니다.

 

   “회개라는 말은 헬라 말로 ′메타노이에오′ 인데

   이 뜻은 진리성령으로 우리들의 심령이 새로이 변화된 것을 말합니다.″

 

1. 첫 번째 수난과 부활에 대한 예고 (마태16,21)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우리들의 마음을 죽으라는 것과 종말의

    시기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죽고 난 후에 영광스러운 변모인 부활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들의 마음이

    어린아이의 마음처럼 되는 것이 예수님의 마음이기 때문에 

    어린아이의 마음이 되기 위해서는

 

    매일 매일 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나의 마음을 죽이고

    깨어져서 선악을 버리고 사랑과 겸손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들에게 십자가 사건이 필요하나 죽기 전에 고통이 오기 때문에

    우리들이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때 베드로가 초막 셋을 지어서

     하나는 예수님께, 하나는 모세에게,

     하나는 엘리야에게 드리겠다고 말하니까,

 

      예수님께서 몽유병 환자를 치유하시면서 베드로의 마음 안에 초막을

      지어야  천국이 이루어지는데,

      그것을 모르는 것이 영적인 몽유병 환자라는 것을 깨우쳐 주십니다.    

 

      우리들도 우리들 안에 말씀으로 지은 초막 성전을 짓지 않으면,

      우리들 보고도 영적인 몽유병 환자(영적인 간질병 환자)라고 하실

      있습니다.

 

2. 두 번째 수난과 부활에 대한 예고(마태 17,22) 

   성전세를 바치고 즉 자기의 육이 죽고 영으로 부활한

   자신을 산 제물로 바치고                                                                                                                                                                                                                                                                                                                                                                                                                                                                                                                                                                                                                                                                                                                                                                                                      1 로마서 12,1   그 후에 어린이처럼 낮추고 겸손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3. 세 번째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한 예고(마태 20,17)

    세 번째 죽고 나서야 섬기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겸손하게 낮아지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평신도 왕직(봉사)에 관여하는 사람입니다.

 

    어린이처럼 낮추고(겸손의 열매), 

    작은 이를 업신여기지 않고,

    죄를 짓는 이들을 무한대로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라(마태 18,1~5).

 

1  그 때 제자들이 다가와 물었다.

    "하늘나라에서 누가 제일 큰 사람입니까?"

 

설명: 하늘 나라에서 제일 큰 사람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3  말씀하셨다.

    "진실히 말하거니와, 마음을 돌이켜 어린이 같이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설명:  어린이는 마음이 없습니다.

         5 세된 어린이에게 엄마가 바쁜데 전화가 올 때 "엄마 없다고 해."

         라고  하면,

         전화에 대고 "엄마가 없다라고 하십니다." 라고 말을 합니다.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없는 사람은 누가 어떤 나쁜 말을 해도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미움도 시기도 교만도 마음이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마음도 십자가에 못을 박고 없애야

         어린이의 마음이 됩니다.

 

         이 어린이는 예수님 자신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른에게 있어서는 나의 마음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고

         내가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가 된 사람이  

         사랑하면 마음이 없어집니다.

 

         우리 성인들은

         선악을 뛰어 넘은 상태가 어린 아이의 마음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4.  이 어린이(예수님 자신을 말함)처럼 자신을 낮추는 그런 사람이야

    말로 하늘나라에서 제일 큰 사람입니다(예수님을 의미함).

 

설명: 하느님의 외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이 되셨다는 것은

        최고로 하느님 자신을 낮추는 일입니다.

        인간이 벌레가 되는 것보다 더 낮아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시고 봉사하려고 오신 하느님이십니다. 

 

 

작은 이들을 걸려넘어지게 하지 말라(마태 18,6~10)

 

6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걸려넘어지게 하는 사람은

    나귀가 돌리는 연자매를 목에 단 채 바다 깊이 빠지는 편이 차라리

    낫습니다.

 

설명: '걸려넘어지게' 라는 뜻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을 말한다.

         연자매는 판관기 16,22을 보면

         율법의 멍에를 말합니다. 바다는 육 즉 세상을 말합니다.

 

         우리들은 복음의 멍에를 매고 예수님과 함께 천국을 가지만,

         율법에 있는 사람들은

         무거운 짐인 율법으로 인해서 고해에서 허덕이게 되며,

         예수님께서는 불행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율법에 머물지 말고 복음인 예수님을 믿고,

         사랑과 기쁨과 복된 생활을 하기를 고대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8  손이나 발이 그대를 걸려넘어지게 하거든 찍어 던지시오.

   두 손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 속에 던져지기보다는 불구자나 절름발

   이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습니다.

 

설명: 오른손은 예수님 즉 복음을 말하고 왼손은 율법을 말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마음과 영의 손을 말합니다.

 

         그래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은,

         내 안에서, 내 마음에서

         복음인 예수님께서 하시는 것은 사랑으로 일을 하나,

         육인 나의 왼손인 율법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내 안에서 반대로 일이 일어납니다.

 

         나는 기도회나 미사에 가려고 하는 마음과

         가기 싫어하는 마음이 있습니다(마태 5,29의 해설을 보세요.).

 

         실제로 정읍에 사는 어떤 사람이

         손 때문에 실족을 하면 손을 잘라버리라는

         이 성서 구절을 문자적으로 보고,

         작두에 대고 손가락을 잘라버렸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마음의 손을 묵상합시다.

 

9  눈이 걸려넘어지게 하거든 뽑아 던지시오.

    두 눈을 가지고 불타는 지옥에 던져지기보다는 애꾸눈으로 생명에 들어

    가는 편이 낫습니다."

 

설명: 눈도 마음의 눈을 말합니다.

        실제로 우리들의 눈을 뽑아 버리라는 말이 아니라

        마음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10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시오.

      나는 말하거니와,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보고 있습니다.

 

설명: '작은 이'들은 그리스도와 하나 된 자들을 말합니다.

        말씀화가 되어서 삶으로 살아가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하고 주님의 기도를 드릴 때,

 

        우리라는 말은 그리스도와 내가 하나가 되어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이 기도를 드릴 때

        주님의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아멘!

 

작은 이들을 업신여기지 말라(마태 18,10~14).

 

10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시오.

      나는 말하거니와,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보고 있습니다.

 

설명: 작은 이들은 그리스도와 하나 된 자들을 말합니다.

 

11  사실 인자는 잃은 것(멸망할 영혼을 말함)을 구원하러 왔습니다. 

 

13  그러다가 찾아내면, 진실히 말하거니와,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 양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할 것입니다.

 

설명: 아흔아홉 마리 양은 의로운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하느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함께 하는 기쁨을 모르는

        것이 잘못입니다.

 

       우리들이 멸망할 한 마리의 양인가, 아흔아홉 마리의 양인가

       묵상해 봅시다.

 

       대체로 한 마리의 양이었다가 아흔아홉 마리의 양이었다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고쳐 주라(마태 18,15 ~18).

 

15  교우가 죄('하마르타노'는 원죄 즉 영적인 죄를 말한다.)를 짓거

    든 단둘이 마주하여 꾸짖으시오.

    그가 말을 들으면 그 교우를 얻는 것입니다.

 

16  그러나 듣지 않거든 하나나 두 사람을 더 데려가서, 둘이나 세

     증인의 입으로 모든 일이 확정되도록 하시오.

 

설명: 교우가 죄를 지은 것은 영적인 죄이므로

        그리스도 즉 말씀을 주어야 죄의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주면 그리스도가 그 사람 안에서 빛으로 비추어 질 때  

         "아! 이것이 죄로구나." 하고 스스로 고치는 것이지,

 

        세상의 사람 둘이나 셋이 가서 세상의 죄를 지적하면 싸움

        만 합니다. 그리스도를 주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죄는 원죄를 말하므로

        그리스도를 주어야 그리스도가 그 사람 안에 들어가서

        열매인 용서와 사랑으로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때 원죄와 본죄도 사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18  진실히 말하거니와, 땅에서 매는 것은 하늘에서도 매어 있고,

     땅에서 푸는 것은 하늘에서도 풀려 있을 것입니다."

 

설명: 푸는 것은 헬라 말로 '뤼오'인데 말씀의 내용을 풀어 줌으로써

        우리들 안에서 말씀이 이루어져서 영생이 옵니다.

        둘이 함께 청하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십니다.

                                       (마태 18,19~20)

 

19  "거듭 말하거니와, 그대들 가운데서 둘이 합심하여 땅에서

     청하는 것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설명: 둘이 합심한다는 뜻은

        이 둘은 그리스도와 나를 말하는 것으로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으면 나 혼자서 기도를 해도

        둘이하는 기도입니다.

 

        육안으로 볼 때, 한 사람 두 사람을 말하지만,

        영으로 볼 때는 두 사람은 그리스도와 나이고,

        세 사람은 성부 성자 성령과 내가 함께 기도드리는 것을 말

        합니다.

 

20  둘이나 셋이 내 이름으로 모인 그 가운데 나도 있습니다."

 

설명: 셋이라 할 때 이 셋은 성부 성자 성령과 함께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숫자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숫자 안에 있는 상징적인 영적인 뜻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죄의 용서 문제는 이 죄가 '하마르티아' 즉 원죄이므로

       하느님이 우리들 안에 오셔서

       우리들 안에 계시는 예수님이 죄를 진리의 빛으로 비추어 주어서

       "아! 이것이 죄이구나." 하고,

       내 안의 진리 성령이 깨닫게 해 주셨을 때 용서가 나옵니다.

 

      우리들이 회개를 하고 남을 용서해 줄 수 있는 힘도

      우리들이 용서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안에 계시는 예수님께서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서는 그리스도를 주는 것이며 하느님의 속성입니다.

 

      마태복음 6,9~13 에서

      주님의 기도가 이루어진 사람 즉 예수님과 하나가 된 사람이

      마태 6,14 에서 용서하면 용서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말은

      무한대로 용서하라고 하시고

      무자비한 종의 예화를 들어서 용서를 설명해 주십니다.

 

      우리들의 원죄를 생각해 보면

      이 죄는 만 달란트 만큼이나 많이 큰 죄이고

      우리들끼리 지은 죄는

      백 데나리온 만큼이나 작은 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용서해 주시는 그 큰 원죄를 생각하면

      우리들에게 잘못했던 사람들을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비유이며,

 

      또 주의 기도에서도

      '저희가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오니

      저희를 용서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를 드립니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죄를 용서해 주라고 말씀하시고,

      그 예화로써 무자비한 종의 비유를 들어서 성서의 말씀을 풀이해

      주십니다.

 

 

형제가 죄를 짓거든 몇 번이고 용서하라(마태 18,21~22). 

 

22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말하거니와, 일곱 번이 아니라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시오."

 

설명: 주님의 기도가 이루어진 사람이

        죄의 문제가 해결된 사람입니다.

        죄를 용서 못해 준다면 주님을 못 만난 사람이고,

        자기 안에 죄가 있으니까 남을 용서 못 해 주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희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용서 못해 주면

        예수님으로부터 우리들이 죄를 용서 못 받게 되니까,

        주님의 기도를 바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용서해 주면 큰 은혜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들은 가급적이면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기도에서

         '저희가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하고 주의 기도를 바치는 것입니다.

 

        마태 5,17~48 까지에서 예수(복음)와 율법의 완성은

        용서와 사랑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풀이해 주시는 것입니다.

 

무자비한 종의 비유 (마태 18,23~35)

 

23  "그러므로 하늘나라는 어떤 왕(하느님을 말함)이 종들과 셈

     (원문에는 '호 로고스' 즉 말씀 심판을 말함)을 밝히려는 것과

     같습니다.

 

24  셈을 밝히기 시작하자 일만 달란트(사람의 힘으로는 못 갚을

     은혜의 빚을 말함) 빚진 종이 끌려왔는데

 

25  그가 도무지 갚을 길이 없으므로 주인은 "너 자신과 아내와 자

     녀와 네 소유를 처분하여 갚으라."고 명했습니다.

 

설명: 너 자신과 아내와 자녀와 소유를 처분하라는 것은

        가족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마태 13,46 에서 진주와 보물의 비유에서

        값진 진주와 보물이며 하늘나라인 예수님을 차지하기 위하여,

        나의 마음 안에 있는 육의 식구인 시기, 질투, 미움, 용서 못해

        주는 마음 등,

        육에 마음을 쓰는, 육의 식구를 버리고(팔고) 주님을 차지하라

        는 뜻입니다.

 

        마음에 시기, 질투, 미움이 있으면

        예수님이 우리들의 마음 안에 오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26  종이 엎드려 절하며 '사정을 봐 주십시오. 모두 갚겠습니다.'

     하였습니다.

 

27  주인은 그를 측은히 여겨 풀어 주고(죄를 용서해 주시고) 빚을

     삭쳐 주었습니다. 

 

30  그는 사정봐 줄 생각을 하기는 커녕 빚을 갚을 때까지 동료 종

     을 감옥에 집어 넣었습 니다.

 

설명: 우리들은 하느님께로부터

        원죄 본죄를 즉 일만 달란트 만큼  천국을 갈 수 없는 중한

        죄를,

        예수님을 통해서 용서를 받았으므로,

        우리들이 우리들에게 죄를 지은 이들을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들도 가족이나 친척이나 교회에서 봉사를 하면서

        서로서로 주고 받았던 잘못을 용서해 주어야

        하느님으로부터 용서받을 수 있다는 예화입니다.

 

31  그런데 다른 종들이 벌어진 일을 알고 하도 민망하여 주인에게

     (하느님에게) 죄다 일러바쳤습니다. 

 

34  주인은 크게 화를 내어,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그를 형리에게 넘

     겨 주었습니다.

 

설명: 빚(죄)과 용서의 관계입니다.

        많이 용서하면 많은 빚을 갚은 것입니다.

 

        야고보서 5,15 을 보면

          "그러면 믿음의 기도가 병자를 구할 것이며 주님이 그를 일

        으켜 주실 것입니다.

        또한 그가 죄를 지었다면 용서받을 것입니다."

 

35  그대들이 교우를 진심으로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내 아

      버지께서도 그대들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입니다."

 

설명: 일만 달란트는 100 억 가랑되는 많은 돈이고,

        100 데나리온은 성인의 100 일치의 일당입니다.

 

        세상의 돈으로 생각해 봐도 100 억의 돈을 받고서,

        하루 일당 오 만원을 치더라도 100 일치면 오백 만원입니다.

        우리들은 100억을 얻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세상의 셈에서도 그렇지만 영적으로 생각을 하면

        원죄(= 본죄) 사함을 받고, 그 죄사함을 받은 사실을 아는 분

        은 너무나도 기쁘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섭섭하게 대해 주는 사람이나, 상처를 주었던 모

        든 사람들에게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용서는 비즈니스입니다.

        용서와 사랑으로 하느님께 빚진 빚을 갚으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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