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08-17 조회수855 추천수18 반대(0) 신고

 

2007년 8월 17일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For this reason a man shall leave his father and mother
and be joined to his wife,

and the two shall become one flesh?
So they are no longer two, but one flesh.
(Mt.19.5)

 

 
제1독서 여호수아기 24,1-13
복음 마태오 19,3-12
 
어린이들은 장난감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그래서 장난감 가게 앞을 지나갈 때면 엄마에게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고, 또한 조그마한 장난감이 과자 안에 들어있으면 비록 그 과자가 맛이 없어도 구입하는 것이 아이들의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즉, 아이에게 있어 장난감은 행복을 가져다주는 중요한 물건인 것이지요. 그런데 몇 해 전에 아이들이 그토록 가지고 싶어 하던 장난감인 기차놀이 장난감에서 암을 유발하는 발암물질이 심각할 정도로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나왔지요. 이 기차놀이 장난감은 아이들이 너무나 좋아하고 그래서 때로는 입으로 물기까지 하는 장난감인데 여기서 심각한 발암물질이 검출되었다는 것이지요.

이 뒤에 이 장난감을 사람들이 구입했을까요? 아니지요. 이 장난감은 모두 회수되었고, 아이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장난감이 아닌 불행을 가져다주는 장난감으로 뒤바뀌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행복과 불행이 단숨에 뒤바뀌는 모습. 어쩌면 이 세상에서 많이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것만큼은 절대로 바뀔 수 없음을 강조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그래서 하나가 된 부부는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으로 결코 사람이 갈라놓을 수 없음을 강조하시지요.

이 사랑만큼은 행복에서 불행으로 단번에 바뀌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랑은 바뀐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주 쉽게 헤어짐을 이야기하고, 또 쉽게 이혼까지 합니다.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어제 제 동창신부와 함께 서울에 가서 뮤지컬 한 편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뮤지컬이 끝난 뒤, 한 남자의 공개 프러포즈가 깜짝 이벤트로 진행되더군요. 사랑하는 애인에게 200여명의 관객 앞에서 공개적으로 프러포즈를 하는 것이었어요. 솔직히 남자가 좀 볼품이 없더군요. 말도 잘 못하고, 맨 뒤에 앉아있는 저의 눈에도 보일만큼 떨고 있는 남자의 모습은 저를 포함한 관객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런데 단 한 사람. 너무나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이 남자는 너무나 멋지고 사랑스러웠을 것입니다. 누굴까요?

맞습니다. 바로 프러포즈를 받는 여자였지요. 그녀에게 이 남자는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가장 사랑할 수밖에 없는 분일 것입니다.

사랑은 남들이 뭐라고 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이며, 더욱 더 완전한 사랑을 위해서 함께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 사랑의 결합 안에는 언제나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하지 않습니까?.

요즘 이혼하시는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이혼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처음에 가졌던 사랑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남들의 이야기만을 듣고 쉽게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변하지 않는 사랑을 간직하십시오.
 

사랑이란(고승덕, ‘좋은생각’ 중에서)



사랑이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은 '남을 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부족한 것을 모르고 '사랑'하다가는 서로 미워하고 고통을 겪게 된다. 사랑에 필요한 플러스알파 성분은 무엇일까?

어느 부부가 이혼을 했다. 원인은 사과 주스였다. 아내는 아침마다 남편에게 사과를 갈아 주었다. 하필 남편은 사과를 제일 싫어했다. 처음에는 참고 마셨지만 점차 다투게 되었다. 아내는 남편을 사랑해서 강권했지만 남편은 견딜 수 없었다. 결국 둘은 이혼했다. 사랑이 미움으로 변하는 일이 부부 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 친구 사이에 흔하게 일어나고 있다.

얼마 전 칸 국제영화제에서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받은 영화 '밀양'을 보자. 신애가 홀몸으로 키운 아들이 유괴되어 살해당한다. 그는 방황하던 중 하느님을 믿게 된다. 슬픔이 행복으로 변할 때 신애는 '원수를 사랑하겠다.'고 결심하고 아들 살해범을 용서하기 위해 교도소를 찾아간다. 그리고 범인에게 하느님을 믿어 용서했다고 말한다. 범인은 편안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나도 이미 교도소 안에서 하느님을 믿고 용서받았소. 당신이 하느님을 믿게 된 것은 내 기도에 대한 응답인 것 같소." 신애는 충격을 받고 정신병원 신세까지 지게 된다.

이 영화는 종교의 위선을 지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핵심은 자기 입장에서 베푸는 사랑이 문제였다. 신애는 범인을 용서하면 범인이 감격하고 회개할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그것이 무산되자 좌절감을 느꼈을 것이다. 기대가 컸던 만큼 충격도 컸다. 범인도 자기 입장에서 행동했다. 그의 신앙이 진정한 것이라고 해도 행동은 잘못된 것이었다. 그가 피해자 입장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눈물로써 회개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했다. 그의 당당한 행동은 신애에게 아들을 두 번 죽이는 것과 같은 고통을 주었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베푸는 것이어야 한다. 사랑의 행동 원칙은 먼저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고 상대방이 원하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이다. 자기 입장에서 베풀다가는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학'의 점심 초대가 되고 만다. 애당초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못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Therefore, what God has joined together,

man must not separate

(Mt.19.6)

 


사랑 그대로의 사랑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