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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되어라,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초대받은 이들!(마태복음19,1~30))/박민화님의 성경묵상
작성자장기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7-08-17 조회수554 추천수5 반대(0) 신고

 

2007년 8월 17일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마태복음

이혼 논쟁(마태 19,1~9)

 

세상의 이혼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과의 이혼

즉 예수님을 떠나는 것을 이혼으로 비유해서 말씀을 합니다.

 

창세기 2,24 에서 보면

"이리하여 남자(예수 그리스도)는

어버이(성부와  천상의 예루살렘)를 떠나 아내

(여자=신부=교회=하느님의 백성들)와 어울려 한 몸이 되게 되었다." 

 

이것을 에페소서 5,31을 보면

31  "그러므로 사람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됩니다.

32  이 신비가 큽니다.

나는 그리스도

(남자)와 교회(아내=교회=하느님의 백성을 말합니다.)를

두고 말합니다."

 

     우리들의 영적인 남편은 예수님입니다.

     이러한 관점으로 성서를 보셨으면 합니다.

 

     물론 예수님의 열매인 바오로 사도도 그렇게 해설을 하십니다.

 

      성서에서 세상의 결혼을 비유로 들어서

      예수님과 결혼 즉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을

      예화를 들어서 설명해 주십니다.

 

      마태복음 19,4; 마르 10,7;루가 16,18 등에서도

      이혼과 결혼은 예수님과 우리들의 결혼

      즉 하나가 되는 것을 비유로 보여 주시는 것이지,

      세상의 결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3  그런데 바리사이들이 다가와 그분을 떠보려고(시험)  

    "어떤 사유든지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하고 물었다.

 

4  "읽어 보지 못했습니까?  창조주께서 시초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창세기 1,27)로 만드셨고

 

5  그래서 사람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서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됩니다."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2,24 을 마태오 복음사가가 풀어 주십니다.)

 

6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입니다. 하느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 놓아서는 안 됩니다."

 

설명: 세상 부부간의 이혼도 나쁘지만 예수님과의 이혼

        즉 갈라지는 것은 곧 영적인 죽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떠나 세상의 것과 짝짝꿍하는 것이 이혼이고, 

        죽음이고 우상 숭배이며, 영적인 간음을 의미합니다. 

 

9  나는 말하거니와 음행

   (예수님외 다른 것으로 살아가는 것이 음행 임.)도 하지 않았는데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자는 간음하는 자입니다."

 

설명: 예수님과 갈라지는 것이 영적인 이혼이고 영적인 죽음입니다.

        그래서 이혼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를 위한 독신(마태 19,10~12)

 

고자는 세상에서 아기를 낳을 수 없는 사람을 말하나,

성서에서는 말씀(호 로고스)이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말씀이 씨이고 후손입니다.

 

이사야서  54,1을 보면

"환성을 울려라, 아기를 낳아 보지 못한 여인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을 상징함)들아!

기뻐 목청껏 소리쳐라. 산고를 겪어 본 적이 없는 여자야!

너 소박맞은 여인의 아들이 유부녀의 아들보다 더 많구나."

 

이 해설은

세상에서는 결혼을 한 여자는 95%이상이 다 자녀를 낳지만,  

결혼을 하고도 자녀를 낳지 못한 여자는 지극히 적은 숫자입니다.

세상의 이치로는 이 성서가 이치에 어긋납니다.

 

그러나 성서에서는 말씀으로 태어난 자녀들이 적고,

육적으로 태어난 자녀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십니다.

 

여기에서도 세상을 위한 고자가 아니라

하느님과 예수님과 하나가 되기

위해서 동정을 지키는 것을 설명해 주십니다. 잘 묵상합시다.

 

소박을 맞은 여인은

야훼 하느님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과

오늘날의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산고는 이 세상의 아기를 낳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잉태하여 말씀의 자녀를 낳는 것을 상징합니다.

  

어린 아이는 예수님 자신을 상징합니다.

어린 아이는 마음이 없습니다.

만약 어떤 아이의 어머니가 일을 하실 때

어디서 전화가 오면  바쁘니까 전화를 받지 않으려고

5 세 된 아들에게 "엄마 없다라고 말해라." 고 하시면

 

이 어린 아이는 " 엄마가 없다라고 하시랍니다." 라고

전화에 응답을 하는 경우도

어린 아이들은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서에서 예수님을 어린양이라고 합니다.

우리들은 양들입니다.

 

어린이를 사랑하시다(마태 19,13~15) 

 

14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냥 두시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시오.

     하늘나라는 이런 이들의 것입니다."

 

설명:  하늘나라는 예수님 자신을 상징합니다. 

 

15  그리고는 손을 얹어(안수를 말하며 예수님과 관계를 맺음)

     주신 다음 거기서 떠나가셨다.

 

부자가 추종을 거부하다(마태 19,16~22). 

 

마태복음에서는 하늘나라가 천국인데

여기서부터는 하늘나라가 영원한 생명으로 바뀝니다.

 

우리들의 관점에서는 행위 즉 일을 하려고 하나,

예수님의 관점은 

내 안에 말씀이신 예수님이 계셔서 그 예수님이 일을 해야 하는 것이지,

우리들 자신으로서는 행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마음 안에 오셔서

예수님의 속성인 사랑으로 일을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십계명도 사랑으로 지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해 아가페)이 우리들의 안에 있어야

살인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마음 안에

미움과 증오가 있어서 결과적으로 살인을 하는 것입니다.

 

16  마침 한 사람(부자 청년)이 다가와서 예수께 

    "선생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일을 해야 합니까?"

 

설명: 예수님이 우리들 안에 존재해야 행위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들 안에 존재하지 않으면 마태 15,19에서처럼

        살인, 간음, 도둑질,거짓 증언, 모독 등이 나옵니다.

 

        부자 청년은 오늘날의 우리 모두를 말하는 것입니다.

        육적인 부자는 돈이 많은 사람을 말하고

 

      마음이 부자인 사람은 육의 열매인 시기.질투.미움.갈라짐등의

        육의 열매로 (갈라5,19) 살아가는 사람이며 율법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부자들인 것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을 다 비우는 사람이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21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완전해지려면(마태 5,48)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시오.

 

     그러면 하늘나라에서 보물(보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함)을

     차지하게 될 터이니, 그렇게 하고 와서 나를 따르시오."

 

설명: 가진 것을 다 팔라고 하신 것은

        재산과 영원한 생명의 싸움입니다.

        가진 재산은 세상의 돈도 되지만

        우리들의 마음 안에 있는 육의 식구들을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5,19 을 보면

      육의 열매(육의 행실)는 음행, 부정, 방탕, 우상 숭배, 마술,

원한, 싸움, 시샘, 분노, 모략, 불목, 분열, 질투,폭음  폭식등이며,

        이 육의 열매를 버리는 것을 판다고 합니다.

 

        마태 13,44 을 보면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비슷합니다.

        마태 13,46 을 보면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물러가서 가진 것

       (육적인 마음 의 시기, 질투, 분노 등) 것을

       모두 팔아 그것을 샀습니다.

 

        이 젊은이는 재산 때문에 영생을 얻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 안에 있는 육의 식구

        즉 육적인 마음을 다 버리고 어린 아이처럼 되어야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을 하셨지만,

 

        이 부자 청년은 이 말을 깨닫지 못해서

     세상의 돈으로만 생각을 해서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들도 우리들의 마음을 버리지 않으면

        이 부자 청년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모르고

        예수님을 만나 뵙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처럼 마음을 버립시다.

 

22  그러나 젊은이는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면서 물러갔다.

     재산이 많았기 때문이다.

 

설명- 재산과 생명의 싸움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많이 묵상을 합시다.

 

 

     마태 19,16 에서

     재물이 많은 부자 청년이 재물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명이신 예수님을 따르지 못했던 예화가 나오고,

     다시 여기에서 실제 예화를 들어서 설명을 하십니다.

 

     여기에서 부자라는 말은

     육적으로는 재물 즉 돈을 말하지만

     영적으로는 율법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부자라고 하고,

     복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영으로 가난한(프토코스)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부자는 세상의 지식이나 율법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래서 사도들보고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부자는 구원받기 어렵다(마태 19,23~26).

 

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진실히 말하거니와, 부자는 하늘나라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 나라입니다.) 에 들어가기가 어렵습니다.

 

24  거듭 말하거니와, 부자(머리 지식이나 율법으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보다는

     낙타(육적인 사람을 말합니다.)가 바늘구멍

     (좁은 문, 즉 천국을 상징합니다.)을 지나가기가 쉽습니다."

 

설명: 부자인 즉 율법으로 믿는 사람들이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가는 것처럼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육적인 것을 다 버려야

        즉 시기, 질투, 분노, 욕심을 버려야

      바늘구멍 같이 좁은 천국문을 통과할 수 있다는 예화입니다. 

 

26  예수께서 바라보시며(눈여겨 보며,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으로 살아가는지 보시는 것입니다.) 말씀하셨다. 

  "사람은 할 수 없으나 하느님은 무슨 일이나 다 하실 수 있습니다.

 

설명: 사람은 할 수 없으나 하느님은 하실 수 있다는 것은

        물론 하느님께서 기적으로 하실 수 있다는 뜻도 있지만, 

 

        여기에서는 예수님께서 저희들 안에 들어오셔서

        내 안에 계시는 주님께서 우리들의 마음을 다  버리게 해서

        우리들의 에고, 즉 생각이 없어지고 무아 상태인 저희들

        안에 오셔서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추종과 상(마태 19,27~30)

 

27  그 때 베드로가 대꾸하였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선생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에게 어떤 일이 있겠습니까?"

 

설명: 여기에서 부자 청년을 예화로 들어서

        베드로의 의식 즉 베드로가 모든 것을 버렸다는

        그 생각을 버리게 하기 위하여 예화를 든 것입니다.

 

        부자 청년이 재물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지 못했지만  베드로는 자기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하여

       

        다 버렸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버렸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28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진실히 말하거니와, 새 세상(복음의 세상을 말함)이 이루어

     지는 때, 인자가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게 되는 그 때,

     나를 따른 그대들도 열두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게 될 것입니다.

 

29  그리고 내 이름(이름은 말씀임.  묵시 19,3)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아버지나 어머니나 자녀나 토지를 버리

     는 사람은 누구든지 백 배로 받을 것이요, 또 영원한 생명을

     상속받을 것입니다.

 

설명: 가족이나 토지는 문자적으로 보면 단순히 가족과 토지이지만

     영적으로는

   육적인 것을 버리면 영적인 것(백 배는 영적인 것을 말합니다.)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마르 10,30 에서

        현세에서는 박해를 받겠지만

        내세에서는 백 배의 상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현세는 마태,  마르, 루가복음인 즉 공관복음을 의미하지만,

        내세는

        공관복음 다음 세대인 요한복음차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을 영의 복음, 종말복음이라고도 합니다.

        내세라고 하니까. 이세상에서 죽은후에 저 세상의

        이야기로 보면 육안으로 보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볼 때 내세는 공관복음차원이고, 공관복음에서

        볼때는 요한복음 차원이고, 요한 복음에서 볼때는

        내세는

  요한묵시록 차원으로 차원이 바뀔때 마다 내세라고 보는 것입니다.

 

 

30 그런데 첫째로서 말째가 되고 말째로서 첫째가 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설명: 육적인 우리들의 마음을 버리고

        예수님을 우리들의 마음 안에 먼저 모셔서

        즉 신앙 생활을 먼저하는 것이 첫째가 아니라

        말씀이 이루어진 사람이 첫째가 되는 사람입니다.

 

        여기에서는 부자가 아니라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베드로라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마음을 비우도록 말씀을 읽고 기도를 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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