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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프간에서 희생된 분들을 위한 미사를 지내고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07-08-17 조회수633 추천수7 반대(0) 신고
                 아프간에서 희생된 분들을 위한 미사를 지내고

    


<1>

엊그제 8월 15일은 우리나라의 '광복절'이자 가톨릭 교회 4대 축일 중의 하나인 '성모몽소승천대축일'이었다. 물론 개신교에서는 부정하는 가톨릭 교회만의 축일이다. 주일과 똑같이 미사에 참례해야 하고 거룩하게 지내야 하는 '의무축일'인 이 날, 우리 태안 성당에서는 주일과 마찬가지로 세 번의 미사가 있었다.

우리 가족은 모두 오전 10시 30분 본(本)미사에 참례했다. 아침식사 자리에서 가족들과 의논을 한 다음 두 개의 '미사예물봉투'를 챙겨서 아내 앞에 놓아주었다. 아내는 예쁜 글씨로 두 개의 예물봉투에 이렇게 썼다.

하나는 '생미사' 봉헌 예물임을 표시하고,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무장 단체에 납치되어 아직 풀려나지 못하고 있는 19명 한국인 피랍자들의 조속한 무사 생환을 위하여"라는 말을 적었다. 다른 하나에는 '연미사' 봉헌 예물임을 표시하고,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무장 단체에 납치되어 목숨을 잃은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의 영혼을 위하여"라는 말을 적었다.

나는 성당에 가자마자 대성당의 제대 위에 두 개의 예물봉투를 나란히 놓았고, 미사를 지내러 입장하신 사제는 내 미사 봉헌을 미리 알지 못했음에도, 예물봉투에 적힌 말들을 잘 읽은 다음 모든 신자들에게 미사의 '지향'을 또렷하고 확실한 발음으로 알렸다.

그리하여 우리 태안 성당은 8월 15일 '성모몽소승천대축일'의 본 미사를 아프가니스탄의 한국인 피랍자들과 탈레반에게 희생당한 두 명의 영혼을 위한 '청원미사'와 '위령미사'로 봉헌했다. 다시 말해 천주교 성당에서 개신교 신자들과 그 영혼들을 위해 '특별 지향'의 미사를 지낸 것이었다.

사제는 생미사 지향에 대해서는 미사 시작 부분에서 지향을 알리는 것으로 그쳤지만, 연미사 지향에 대해서는 '축성례' 이후의 '전구' 부분에서 간절한 음성으로 이런 기도를 했다.

"주님,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게 납치되어 목숨을 잃은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을 생각하소서. 그들은 세례를 통하여 성자의 죽음에 동참하였으니, 그 부활도 함께 누리게 하소서."
 

▲ 8월 15일 '성모몽소승천대축일' 장엄미사를 아프가니스탄의 한국인 피랍자들과 희생당한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씨의 영혼을 위한 '특별지향' 미사로 봉헌한 대전교구 태안성당의 미사 장면. 이 사진은 지난 5월 1일 '성모의 밤' 미사 장면 사진이다.  
ⓒ 지요하

나는 사제의 그 간절한 기도에 마음 깊이 동참하며 잠시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씨의 생전 모습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내 미사 봉헌이, 우리 태안 성당 신앙공동체의 일치된 기도가 그들의 영혼에 큰 위로와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빌었다.

<2>

천주교 신자인 내가 '갈라진 형제'인 개신교 신자들을 위해 생미사(살아 있는 이들을 위한 미사)를 봉헌해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또 연미사(세상 떠난 영혼을 위한 미사)도 개신교 목회자를 위한 미사 봉헌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개신교의 일반 신자들의 영혼을 위해 미사를 봉헌한 적은 꽤 많다. 개신교 신자로 살다 가신 내 장모님을 위해서는 계속 일 년에 몇 번씩(기일과 생신, 설과 추석 명절에) 미사를 지낸다. 올해부터는 개신교 권사였던 큰처남의 댁 영혼도 챙겨줘야 하는 의무 아닌 의무가 부과되었다.

가끔 주변에서 억울하고 안타까운 죽음을 보거나 듣게 되면, 아무 관계도 없고 전혀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그 영혼을 위해 미사를 봉헌하곤 한다. 또 설과 추석 명절에 '합동위령미사'를 지낼 때는 하느님을 모르고 살았던 내 '모든 조상님들'이 우선이지만, 예물봉투에 세상 떠난 이들의 이름을 최대한 많이 적는다.

하느님을 모르고 살았던 이들과 그리스도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신봉하다가 떠난 이들뿐만 아니라, 개신교 신자들의 영혼을 위해서도 미사를 지내는 것은 개신교에는 연옥 교리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개신교에는 세상 떠난 이들의 영혼을 위한 기도도 없고, 아무도 죽은 이들을 위해서는 기도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믿음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는 그들은, 그리하여 신자가 죽으면 곧바로 천당에 갔다고 믿는다. 그러니 죽은 이를 위한 기도가 필요 없다. 믿음이 곧 천국이니, "예수 천국/불신 지옥"이라는 구호도 가능해진다.

하지만 연옥 교리가 존재하는 천주교는 믿음만으로는 곧바로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한다. 믿음과 삶이 일치해야 하고, 많은 선행 공로를 쌓아야 하는데, 죽은 후 곧바로 천국에 가는 영혼은 극히 제한적이라고 한다.

심지어는 순교자도 모두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순교자들 중에는 죽음 직전에 배교 결심을 했으나 그 배교 결심을 미처 표시하기도 전에 목이 떨어진 이도 있을 수 있다. 그 '배교 결심'이 겉으로 나타난 순교와는 다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천주교 신앙은 어렵다. 세계의 종교들 중에 가장 어려운 종교가 천주교라고 한다. 지켜야 할 계명과 교회법도 많고, 반드시 치러야 하거나 평생동안 함께 해야 할 성사(聖事)도 많다. 착하게 사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죄짓지 않는 생활 외로 끊임없이 선행 공로를 쌓아야 한다.

그렇게 총체적인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서도, 아무도 자신이 곧바로 천국에 간다고 확신하지 못한다. 거의 모든 신자들이 신앙생활의 결과로 자신이 연옥에는 갈 것으로 믿는다. 지옥은 아무 희망이 없는 곳이지만, 연옥은 구원 영생에 대한 희망이 있는 곳이다. 이승의 죄와 죄의 때를 지닌 영혼이 천국에 가기 위해 '정화'를 겪는 곳이다. 모든 영혼은 정화의 과정을 거쳐야만 천국에 올라 하느님을 뵐 수 있다.

그러나 연옥(정화교회)의 영혼들은 자기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정화 기간을 단축시키고 천국에 빨리 오를 수 있는 길은 천국(천상교회)과 정화교회와 지상교회를 연결시키는 '통공(通功)'의 힘에 의지하는 것뿐이다.

천주교회에서 '통공 교리'는 참으로 중요하다. 지상교회의 미사와 살아 있는 사람들의 기도와 선행 공로가 연옥 영혼들을 천국으로 밀어올린다는 믿음으로 지상교회의 신자들은 죽은 이들을 위한 일에도 최선을 다한다.

▲ 우리 가정이 아프가니스탄의 한국인 피랍자들과 희생당한 두 영혼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려고 준비한 태안 성당의 '미사봉헌 예물봉투'.  
ⓒ 지요하

그리하여 천주교 신자들은 사제나 주교, 심지어는 교황이 운명해도 연도를 하고 연미사를 지낸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서거했을 때도, '살아 있는 성녀'로 추앙 받은 마더 데레사 수녀가 눈을 감았을 때도 세계의 가톨릭 신자들은 연도를 하고 위령미사를 봉헌했다.

완벽한 하느님의 종으로 살았던 이들도 사후에 '성인품'에 오르려면 여러 가지 까다로운 단계를 거쳐야 하고, '기적 심사'를 받아야 한다. 또 이승에서는 죽은 이들을 위한 일에도 최선을 다해야 하고, 자신이 죽은 뒤에는 지상교회로부터 오는 통공의 힘에 의지하여 천국에 오를 수 있으니, 이래저래 천주교는 가장 어려운 종교일 수밖에 없다.

<3>

연옥은 천주교 신자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품게 하는 곳이다. 곧바로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자만심이나 교만 같은 것을 경계하도록 만들어주는 곳이기도 하다. 내 삶이 좀 어긋나고 모자라더라도 연옥에는 갈 수 있다는 희망, 내 영혼이 연옥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빨리 정화되어 천국으로 갈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의지도 갖게 한다.

그리고 그 연옥은 천주교 신자들에게 하느님을 믿지 않았던 가족이나 친지들, 하느님을 전혀 모르고 살았던 조상님들까지도 구원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한다. 비록 하느님을 몰랐거나 믿지 않았던 이들도 착함과 의로움을 지니고 살았다면 연옥에서 정화를 거친 다음 구원될 수 있다는 믿음은 모든 천주교 신자들에게 각별한 위안과 희망의 실체가 된다.

그리하여 천주교 신자들은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믿는다. 오직 하느님을 믿었던 사람들만 구원되지 않고, 교회 밖에 있었던 사람들도 구원될 수 있다는 믿음은 연옥 교리와 불가분의 관련을 갖는다.

몇 년 전 김수환 추기경은 도올 김용옥이 '논어' 강의를 하는 방송에 출연하여, 도올의 이런저런 질문에 답하면서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 때문에 방송이 나간 직후부터 그 방송사의 모든 전화기들은 불이 났다고 한다. 개신교 신자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쳤기 때문이다.

개신교 신자들은 교회 밖에는 절대로 구원이 없다고 믿는다. 그것의 근거로 요한복음 14장 6절에 기록된 "나는 길이요 진리이며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든다. 또 사도행전 4장 12절에 기록된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든다.

그리고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실 필요도 없었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이유도 없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된 그 말씀들은 그리스도교의 명확한 존재 이유 중의 하나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두 가지의 상반된 신앙 태도(믿음과 가르침)를 가지게 한다.

한가지는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믿음과 가르침이다. 다른 한가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과 가르침이다. 이것은 연옥 교리의 유무(有無)와 직결되는 사항이기도 하다.

천주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 모든 이의 구세주로 생각한다. 예수는 '모든 이의 모든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예수를 모르고 하느님을 믿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가 극악무도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는 사후세계의 하나인 연옥(영혼을 정화하는 곳)에서 구원을 기다린다고 한다.

그리고 지상의 교회와 사람들이 연옥 영혼들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그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덕에 힘입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천주교 신자들은 세상 떠난 모든 영혼들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열심히 기도하는 것이다.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오직 '믿는 사람들만의 구세주'로 만드는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살았던 사람들, 그리스도교가 전파되지 않은 지역에서 산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태도이기도 하다. 예수를 믿지 않은 모든 사람들, 다른 종교를 신봉하며 착하게 산 사람들까지도 모조리 지옥에 갔을 거라는 치부이기도 하니, 생각하면 참으로 무서운 말이 아닐 수 없다.

또 그 같은 생각은 예수를 믿기만 하면 모두 구원을 받는다는 태도와도 연결된다. 그래서 신앙생활의 내용보다 믿음 자체만을 중요시하는 기형적인 경향도 생겨나게 되고,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는 난폭한 구호도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또 그것이 불상과 단군상을 파괴하고, 천주교의 성모상에 오물을 투척하고, 불우한 사람들에게 식사제공을 하기 위해 지하도에 앉아 시주를 받는 스님의 머리를 만지며 모욕하는 행위로까지 발전하게 되고….

<4>

며칠 전에 내 차를 집에다 놓고 나와 무슨 일로 택시를 탄 적이 있다. 택시기사와 나 사이에는 당연히 아프가니스탄의 한국인 피랍 사건이 화제가 되었다. 택시기사는 시종일관 흥분 상태였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무장 단체에 납치된 한국인들이 '기독교 신자'라는 사실 때문에 택시기사는 계속 흥분을 하는 것이었다.

단순한 성토가 아니었다. 차마 글로 옮기기 민망할 정도의 독설이 난무했다. 나는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상한 공포감마저 느꼈다. 한 마디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와 나 사이에는 이런 대화가 이어졌다.

"나도 기독교인인데, 듣기가 영 거북헌데요."
"그류? 난 선생님이 천주교 신자이신 걸루 알구 있는디요?"
"기독교라는 말은 천주교와 개신교를 다 일컫는 말이에요. 그리스도교를 한자로 적은 말이 기독교거든요. 그러니께 기독교는 그리스도교라는 뜻이지요."
"그러니께 천주교 개신교 모두 그리스도교, 기독교라는 말이군요?"
"그렇죠. 똑같이 예수님을 믿는 종교예요. 원래는 하나였던 교회이고…."
"그런디 워째 그렇게 다르대요? 천주교와 개신교는 같은 기독교라두, 서루 달른 게 너무 많은 것 같유."
"다른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거예요. 기사님이 지금 당장 세상을 뜬다면, 개신교 신자들은 기사님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에 갔다고 믿겠지만, 천주교 신자들은 그렇게 보지 않아요. 예수님을 믿지 않은 기사님한테도 구원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거죠."

다음에 이어진 말들은 소개를 생략하기로 한다. 나는 아프간의 한국인 피랍자들에게 마구 독설을 퍼붓는 택시기사의 태도는 옳지 않음을 지적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달린 사안인데, 그렇게 욕설을 퍼붓는 것은 정말이지 매우 온당치 않은 일이었다.

그날 집에 돌아와서 옷을 갈아입고 잠시 선풍기 앞에서 땀을 식힐 때였다. 문에서 벨 소리가 들려 문을 열어보니 두 여인이 서 있었다. 30대로 보이는 여성들인데, 한 사람은 어린애를 업은 채 땀을 흘리고 있었다.

하나님 말씀을 전하려고 왔다고 했고, 인근의 00교회 신자들이라고 했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나서 문 위에 붙어 있는 표식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보이시죠? 두 분 다 이게 뭔지 아시죠? 천주교 신자의 집이라는 표시예요. 두 개나 붙어 있어요. 두 분 모두 한글을 모르시는 분들이 아니시죠? 이 표식을 보셨으면 그냥 가시는 게 예의 아닐까요?"
"그래도…."
"미안합니다. 돌아들 가세요. 그리고 오늘 같은 결례는 다시 하지 마세요."

그리고 나는 먼저 몸을 돌리고 문을 닫았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조금은 화가 나기도 했고, 온몸에서 맥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여호아의 증인' 신자들만 오는 것이 아니었다. 얼마 전에는 다른 교회의 여성 신자들이 와서 벨을 누른 적도 있었다.

개신교 각 교회들의 공격적이고 전투적인 선교 방식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 기분이었다. 그들은 그것을 숭고한 사명으로 여기겠지만, 나로서는 씁쓸하고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2007-08-17 13:52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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