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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새끼나귀(복음상징)를 타고 오시는 예수님(마태복음21,1~46)/박민화님의 성경묵상
작성자장기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7-08-20 조회수532 추천수7 반대(0) 신고

 

2007년 8월 20일 마태복음

예루살렘 입성(마태 21,1~11)

 '예루살렘'이라는 뜻은

 '예루'는 하느님이라는 뜻이고 '살렘'은 평화라는 뜻입니다.

 이 예루살렘에의 입성은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기 위해서 가시는 길입니다.

 

     요한복음 17,1 에서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소서.

     그래서 아들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도록 하소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그 성혈로써 우리들의 모든 원죄와 본죄를 사하시고

     우리들의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들도 하느님께 영광을 바치는 것은

     세상의 어떤 일을 잘 해서 바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육 즉 육적인 마음과 생각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버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영으로 부활하는 것이 하느님께

    영광을 바치는 일입니다.

 

     예루살렘에 예수님께서 입성하시는 것은 영적으로는

     우리들의 육체 안으로 그리스도(진리 성령=말씀)께서

     지금도 매일 매일 오시는 것을 상징합니다.

 

     우리들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말씀,

     진리성령으로 우리들 안에 오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어둠에 있고 육에 있을 때는

     이 성서의 말씀이 이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고

     나와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이나,

 

     우리들이 깨닫고 보면 즉 예수님의 마음과 눈으로 보면,

     오늘 현재 나에게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으로 느껴져서

     우리들은 말씀의 능력으로 변화됩니다.

 

     - 전례력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33년을 사셨기 때문에,

     - 예수님의 성탄 -

     - 성가정 축일 -

     - 주님의 공현 대축일(삼왕래조 축일) 

       

       예수님이 만왕의 왕이시고  메시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이방인인 동방 세 박사와, 가난한 이스라엘의 목동들과,

       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양, 말, 소 등과 성모님과 성 요셉 즉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으로 나타남.

 

    - 예수님의 세례 축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시고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 보이십니다.

 

      땅에서는 세례자 요한이

      "세상의 죄를 없애 주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 저기 가신다." 고 증거를 하므로,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로 갑니다.

 

      그리고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음성이 들려오는데

       "이는 내 사랑하는(헤 아가페) 아들이다.

      

      너희들은 그의 말을 들어라." 라고

      하느님의 음성이 들려 왔으며,

      하늘에서는 하느님께서 친히 증거를 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례축일부터 연중 제1주가 시작됩니다.

 

     재의 수요일부터는 사순절이 시작되고

     사순절과 부활의 시기가 끝난 후에 다시 연중으로 계속 갑니다.

 

     그렇게 연중 33주기가 끝나고 그리스도 왕 축일이 끝난 다음에,

    대림 1주,  2 주, 3 주, 4주가 끝나고,

    예수님의 성탄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의 일생을 묵상하면

     그 내용이 우리들의 마음 안에 이루어지는데,

     즉 모든 주일과 대축일은 우리들의 마음 안에

     예수님의 몸을 만드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33년을 사셨기 때문에

     연중도 연중 33주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성모님과 사도들과 성인 성녀들의 축일을 함께 지내면서

    

    이 내용이 우리들 안에 이루어지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올리브 나무 가지를 땅에 깔았습니다.

 

     성지주일은 

    성지가지를 들고 우리도 주님을 환영하는 주일입니다.

 

     성지가지만 집에 가져와서 십자가에 걸어만 놓을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 안에 예수님을 모셔야

    우리들의 몸이 예수님을 모시고 있는 거룩한 성전이 되고

    감실이 될 것입니다.

 

  이럴 때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이고 우리들은 가지가 될 것입니다. 

 

4  이리하여 예언자를 시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설명: 암나귀는 율법을 상징하며

         새끼나귀는 복음을 상징합니다.

 

         이사야서 1,2~3을 보면 

        "하늘아 들어라, 땅아 귀를 기울여라.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자식이라 기르고 키웠더니 도리어 나에게 반항하는구나.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이 만들어 준 구유를 아는데,

         이스라엘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내 백성은 철 없이 구는구나.' "

 

         '하늘아 들어라.' 라는 말은

         하늘보고 하는 말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즉 하느님의 자녀들 즉 영의 자녀들을 상징합니다.

 

         '땅아 들어라.'는 이스라엘의 백성 지도자가 아니고 

         육의 자녀들을 말합니다.

 

        말도 나귀도 자기를 타는 주인을 알고 있습니다.

       소도 주인을 알고 있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소를 부릴 경우

       소가 말을 듣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율법으로 매어 있지 않는, 고삐가 없는

        새끼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을 하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구약에 예언되어 있는

         구세주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말구유에서 예수님께서 태어나시어 말의 음식으로 오셨다는 것은

    영적인 하느님의 자녀들의 영적인 양식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으신 하느님의 자녀들만이

    성체를 미사 중에 모실 수 있는 것도 좋은 예입니다.

 

5  "시온의 딸들에게 일러라. 보라, 네 임금님(메시아)이 오신다.

온유하시어 암나귀 타고 오신다. 짐바리 짐승 새끼나귀 타고오신다."

 

설명:  '시온의 딸들'할 때 이 딸이라는 말은,

        씨이며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들한테 없는 사람들로

        성서에서는 남자나 여자 모두 딸들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들 안에 들어오셔야 하느님의 아들들이 됩니다.

 

         그래서 창세기 6,3 에서

         하느님의 아들들과 사람들의 딸들이 결혼한 것은

        

    영의 자녀들과 육의 자녀들이 결혼한 것을 말하며

    영과 육이 결합했을 때 바벨탑 같은 거인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8  많은 군중이 겉옷을 벗어 길에 깔았고,

   더러는 나무에서 가지를 꺾어다 길에 깔았다.

 

설명: 나뭇가지의 가지라는 뜻은 헬라말로 '크레마' 인데

      요한복음 15장에서

      참포도나무인 예수님과 가지인 사도들과

      오늘날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을 말합니다.

 

       성지주일 때 가지를 들고 예수님을 환영하는 것은

       예수님과 가지인 우리들이 하나가 된다는 뜻입니다.

 

       또한 바오로 사도는 빵과 빵조각을

     이 '크레마('크라도스' 라는 말은 같은 어원에서 유래됩니다.)'

     라는 뜻으로 사용했으며,

     지체라는 말로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 전서 11장의 성 만찬을 보십시오.)

 

9  군중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외첬다.

     "다윗(메시아라는 뜻입니다.)의

    아드님께 호산나(하느님, 구원하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축복받으소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 호산나!" 

     

      요한복음은 2장에서

      성전에서 상인들을 쫓아내시나,

    마태복음에서는 21장에서 상인들을 쫓아내시는 말씀이 나옵니다.

 

      성전에서 소, 양, 비둘기를 바쳐서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나

      예수님께서는 그것은 구약의 제사이며 그림자이므로,

 

      신약의 제사에서는 그림자가 아닌 실체인

      하느님의 아드님이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구약의 제사를 지내지 말고

      하느님의 외아들인 나를 알아보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림자에 제사를 지내면

      영혼이 죽으니까, 복음인 내게로 오라는 것입니다.

 

     소는 전능하신 하느님 즉 성부를 상징하고

     양은 예수님을 상징하며

     비둘기는 성령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소, 양, 비둘기를 잡아서 바치는 제사는 구약의 제사이고,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와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에서

    안타까워서 사고팔고하는 자를 쫓아내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은,

    우리들의 마음 안에 예수님이 들어오셔야 성전이 이루어지므로

    우리들의 마음 안에 있는 소, 양, 비둘기를 버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율법으로 드리는 제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마음을 비웠을 때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우리 안에 오시어 성령이 계시는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가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율법으로 드리는 제사는 그만 두고

     새 계약의 성취를 이루러 오신 예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율법에서 차원을 달리해서

     복음의 차원인 예수님 믿고 자유가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상인들을 쫓아내시다(마태 21,12~17) 

 

14  성전에서 맹인들과 절름발이들이 다가오자 예수께서

    고쳐 주셨다.

 

설명: 율법 즉 하느님의 말씀을

      자기의 의로 지키고 행할려고 하는 사람들이 병자들인데,

      이 병자들이 중풍병자, 간질병자, 절름발이,

      소경들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율법을 지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안에 오셔서 사랑으로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람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느님께서는 하실 수 있다고 하십니다.

 

무화과나무가 말라 버리다(마태 21,18~22)

 

      무화과나무가 말라버리는 비유를 통해서 주시는 뜻은

      이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의 민족을 상징하며,

     

      말라버리는 것은 요한복음 15,6을 보면,

      열매를 맺지 못하면 가지를 쳐내어 말라버린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열매는 실제의 포도나무를 통해서

      참포도나무인 예수님과 가지인 사도들,

      또는 예수님을 믿는 모든 신자들이 하나가 되면

      성령의 열매를 맺는데 이 열매인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 등입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을 믿고 은사가 있다고 해도

      성령의 열매가 없으면 말라버려 죽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서 열매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면

      예수님께서 저주해서 말라 죽게 하는 것을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 뿐만 아니라 우리들도 신앙 생활을 하면서도

      성령의 열매인 사랑을 맺지 못하면

     저주와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19  마침 길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가 있는 것을 보고 다가 가셨는데,

    잎사귀밖에(잎사귀는 성령의 은사를 말합니다.

    고린토 전서 12,7)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나무를 향해 말씀하셨다.  

 

       "이제부터 너는 영영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그러자 무화과나무가 당장 말라 버렸다.

 

설명: 우리들도 성령의 열매가 없으면 무화과나무가 말라버리는

         것처럼 우리들도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21  예수께서 대답하였다.

        "진실히 말하거니와, 믿음을 갖고 의심하지 않는다면

      이 무화과나무에 일어난 일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서 저 바다에 던저져라.'  

     해도 그대로 될 것입니다.

 

22  기도할 때 믿으며 청하는 것은 모두 받을 것입니다.

 

설명: '이 산더러 저 바다에 던저져라 해도 던져진다.'는 말은

         기적적으로 하느님께서는 산을 들어서 바다로 옮길 수 있는

         것을 말하지만 차원을 달리해서 보면,

 

         산은 시나이산에서 모세가 발표한 율법의 산이 있으며,

       시온산에서 예수님께서 발표하시였던 복음의 산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산더러 옮겨져라.' 하는 것은

 우리들의 마음 안에 있는 율법의 산이 복음의 말씀으로 이루어지면,

         내 마음이 복음의 산으로 변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바다는 육을 말합니다.

우리들의 마음이 율법에서 복음인 사랑으로 변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으면

           '이 산더러 저리 옮겨져라.' 하면 옮겨진다는 것은 ,

         (언젠가 부르도저가 와서 그 산을 파서

         평지로 만들었다고 말하는 분도 있지만)

     

    기도를 했더니 영적으로는 우리들의 마음 안에 율법의 산이,

    하느님의 말씀이 들어와서 복음의 산으로 변화된 것을 말합니다.

 

 즉 우리들이 시기, 질투, 싸움 등을 하는 마음이 믿음으로 인해서 

 사랑, 기쁨, 평화 등의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된 것을 말합니다.

 

     마태복음 21장에서

     큰 제목을 보시면 예루살렘 입성이 나오는데

 이 예루살렘이 나의 마음 안에 예수님께서 오시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상인들을 쫓아내시는 것은 우리들의 마음 안에

있는 육적인 식구들을 정화시키는 것을 상징 합니다.

 

     무화과나무가 말라버리는 것은 예수님을 우리들 안에 모시기

    위하여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않기 때문에

     심판을 내리는 모습입니다.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을 맞아들여서

     성령의 열매 즉, 말씀의 열매인 사랑으로 살아가지 못하면

     무화과나무처럼 되어,

     영적으로 심판을 받아서 죽는다는 것을 설명해 주십니다.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맞아 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대표하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 논쟁을 벌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두 아들의 비유를 통해서

     맏아들이 바리사이들이지만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무화과나무처럼 말라버리고 심판을 받는다는 예화입니다.

 

  세리 창녀 죄인들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예화를 들어서,

  우리들도 외아들 예수님을 받아들여서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지만,

 

    외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심판과 멸망의 길로 간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권능에 관한 논쟁(마태 21,23~27)

 

23  예수께서 성전에 계셔 가르치고 계실 때 대제관과 백성의 원로

     들이 다가와서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합니까?  누가 이런

     권한을 주었습니까?"  하였다.

 

설명: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보는 눈이 어둠속에

      있어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로 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27  그래서 그들이 "모르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 말씀

     하셨다. "그렇다면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말해

     주지 않겠습니다."

 

설명: 열매를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자,

       말라버리는 기적을 예수님께서 하셨지만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인 바리사이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믿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 하느님으로 보지를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이는 구원을 받는다는 구원의 메세지입니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생명의 말인데

       예수님께서 입을 닫으시고 말씀의 문을 닫으신 것은

       천국의 문이 닫아지는 것입니다.

 

두 아들의 비유(마태 21,28~32)

 

     율법으로 볼 때는 이스라엘 백성은 큰 아들이고,

     특히 제사장, 바리사이, 율법학자들을 큰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작은 아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아닌 이방 백성들과

     특히 세리, 창녀, 죄인들을 작은 아들이라고 말했습니다.

 

     복음 즉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으로 볼 때는

     말씀(호 로고스)으로 태어난 사람이 큰 아들이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믿지도 않는 사람을 작은 아들이라고 합니다.

 

    루가 15,17~20 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도 참고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복음 말씀으로 태어난 사람이 큰 아들입니다.

 

28   "어떻게들 생각합니까? 어떤 이가 두 아들이 있었는데

     맏이한테  '얘야,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해라.'  했더니

 

29   '싫습니다.' 하고 대답했지만

     나중에 뉘우치고(회개) 일하러 갔습니다.

 

설명:   포도원은 요한 15장에서

        참포도나무인 예수님과 가지인 우리들이 붙어 있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열매는 갈라 5,22~23 에서 나오는 성령의 열매인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포도원에서 일을 하는 것은

        농부가 밭에서 일을 하는 것에 비유해서

        하느님의 밭에서 일을 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하느님의 밭에서는 일을 하는 것이 즉 레마 사역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포도원은 첫째로 우리들의 가정이고,

      교회이고 직장일 수가 있습니다.

      이 포도원이 길밭, 돌밭, 가시밭이 아니고 좋은 땅

 좋은 포도원이 되어야 영적인 많은 열매를 맺을 수가 있습니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교회에서나

 좋은 일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2 요한이 의로움의 길을 가르치러 왔건만 당신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세리와 창녀들은 믿었지만 당신들은 보고도 끝내 뉘우치지(회개) 

  않고 믿지도 않았습니다. "

 

 

     예수님을 그리스도 즉 하느님으로 알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두 아들의 비유를 들어 설명해 주시고,

     다시 포도원 소작인 우화를 들어서 설명해 주십니다.

 

     요한 복음 15,3 을 보면

     우리들이 깨끗해지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깨끗해지는데,

     예수님이 말씀으로 우리들의 마음 안에 들어오시면

    

     지금까지 나를 지배하고 있던 사탄이 죽고나니까,

     이제 죄에서 풀려나니까

     자유와 해방이 되고 마냥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포도원에서 일을 해서

     실제로 익은 포도를 수확하는 것을 예화로 들어서

     

     천국의 포도원에서 길밭 돌밭 가시밭이 아니고

     열매를 많이 맺는 좋은 땅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들의 마음의 밭에서 말씀의 열매인 성령의 열매로써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 등의 많은

     열매를 맺어야 소작인이 영적인 도지를 바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말씀으로 우리들 안에 들어오셔서

     그 말씀인 진리의 성령으로 살아갈 때

    

     열매인 사랑으로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평화 등으로

    우리들의 마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서 활동을 하십니다.

 

     성령의 빛으로 비추어 주실 때

     하느님의 속성으로 계심을 알게 되며,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알게 되며,

     예수님을 하느님의 외아드님이신 것을 알고 경배를 드리나,

 

     성령의 빛으로 비추어 주시지 않으면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것을 모르기 때문에 잡아 죽이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우리들의 마음 안에

     하느님의 속성인 사랑으로 계시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사랑을 만지고 느끼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포도원 소작인들의 우화(마태 21,33 ~46)

 

34  열매 거둘 철이 오자 종들(예언자들 사도들)을 보내어 소출

    (열매)을 받으려 했는데

 

35 농부들

  (이스라엘 백성들과 오늘날의 교회 봉사자들을 상징합니다.)은

  그 종들을 붙잡아 하나는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습니다.

 

36  주인이 다시 다른 종들을 먼저보다 더 많이 보냈더니

    그들에게도 같은 짓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이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고 잡아 죽였다.)

 

37  주인은 마침내 아들(예수님을 상징합니다.)을 보내면서

     '내 아들이야 존중하겠지.' 하였습니다.

 

38  그러나 농부들(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들을 보자, 서로 '저자는

     상속자다. 가서 죽여 버리고 그 유산을 차지하자.' 하고는 

 

42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성서에서 읽어 본 적이 없습니까?

     집짓는 자들이 버린 돌(새계약=예수님)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도다(새 계약=예수님).

     주님으로 말미암은 일이라,

    우리 눈에는 놀랍도다(시편118,22~23).  

 

44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사람은 부스러질 것이요,

     이 돌이 누구 위에 떨어지면 그를 으스러뜨릴 것입니다."

 

설명: 돌은 새 계약 (예수님)을 말합니다.

        모세는 돌판 위에다 십계명을 새겼으나

        새 계약은 우리들의 마음 안에 새겨져서 사랑이 옵니다.

        즉 새 계약은 사랑입니다.

 

        돌이 예수님이고 요한 복음에서는 말씀이시기 때문에,

        말씀이 아니 이루어지는 사람들은 말씀 심판이 됩니다.

 

        요한 12,48에서 그러나 말씀이 이루어지고

        예수님을 잘 믿는 자는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종들인 예언자들과 사도들과 믿는 자들을 박해하는 자들은

        죽는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외아들이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믿지 않고 죽이는 이들을 부스러지고 으스러뜨린다는 것은,

        말씀 심판을 받아서 영혼이 죽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종들 즉 예언자들이나 사도들

        또 복음을 선포하는 주님의 자녀들을 소출

        즉 열매인 도지를 받아 오라고 보내고,

        맨 나중에는 외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보냈으나

        때리고 죽였습니다.

 

        땅에서 나는 곡식의 열매를 바치는 것을 예화로 들어서

        하느님께 바치는 성령의 열매

        즉 말씀의 열매를 바칠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소작인들은 성령의 열매인,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 등의

        영의 열매는 가지지 않고,

 

        육의 열매인 시기 질투 미움 등의 열매만 있으므로

        그 육의 열매를 주니까 종들을 육의 매로 상처를 주고

        외아들인 예수님도 죽이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내가 성령의 열매(갈라 5,22~23)는 없고 육의 열매

있으면 만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또 그 영혼들을 죽이게 되는 것이므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열매로 살아갈 때

내가 가지고 있는 도지를 바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이 없으면 사랑을 줄 수가 없습니다.

내가 기쁨과 평화가 없으면 매일 만나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줄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도 하느님께 영적인 도지인 열매를 바칠 수 있도록

말씀 읽고 기도합시다.

우리들은 우리들 자신을

하느님께 산제물로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로마서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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