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왜 직립 인간인가?" --- 2007.8.20 월요일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7-08-20 조회수497 추천수7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7.8.20 월요일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판관2,11-19 마태18,16-22

                                                         
 
 
 
"왜 직립 인간인가?"
 


자주 하늘 보며 기도하라고 직립 인간입니다.

비록 땅에 뿌리 두고 살아도
하늘 빛 가득 담은 직립의 나무들처럼,
하늘에 계신 하느님과 연결되어
하늘 빛 가득 담아 살라고 직립 인간입니다.
 
이 하늘과의 연결을 상실하면
곧장 짐승이나 악마로 변할 수 있는 존재가 사람들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
보이지 않는 하느님보다는 오관으로 확인할 수 있는
보이는 것들에 마음 집착하여 살아갑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맛보고,
코로 냄새 맡고,
손으로 만져보고 실감해야 비로소 만족하는 인간,
너무 자연스런 현실 같기도 합니다.

오늘 1독서의 판관기의
하느님 배반을 일삼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로 그러합니다.
 
오늘날 대부분 사람들의 모습 같기도 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 보다는
눈에 보이는 현찰과도 같은 바알과 아스타롯 신들을 섬기다가
하느님께 매 맞고 돌아오고,
그러다 판관이 죽으면
다시 다른 신들을 따라가서 그들을 섬기고 경배하는 이스라엘 자손들
참 대책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래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보다 눈에 보이는 좋은 것들을 찾아
교회를 떠나는 냉담자들이 그리도 많은 오늘의 현실 같습니다.
 
그러나 초월적 차원의 갈망은 막을 수 없거니와
세상 무엇으로도 해갈시켜 줄 수 없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보이는 것들이 아닌
보이지 않는 초월적 영적 차원의 하느님과의 관계입니다.

지난 번 ‘연결’에 대한 묵상을 나누었습니다만,
아무리 사방으로 평면적 차원의 사람들 간의 연결 잘 되어 있어도
수직적 차원의 하느님과의 연결이 끊겨 있으면 모두가 헛수고입니다.
 
오늘 복음의 젊은이
평면적 차원의 연결만으로는 영적 갈증이 해갈되지 않았음이 분명합니다.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이웃 사랑의 관련된 모든 평면적 차원의 계명들을 잘도 지켰는데
젊은이의 마음은 여전히 공허할 뿐입니다.
 
수직적 초월적 차원의 상실을 예리하게 진단하신 주님의 단도직입적 처방입니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바로 눈에 보이는 우상과도 같은 많은 재물을 처분하고
주님을 따라 하늘 길에 오르라는,
속히 초월적 차원을 회복하라는 젊은이를 향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사실 사막의 안토니오 성인은 물론
성 프란치스코, 그리고 무수한 수도성인들이
이 말씀을 곧이곧대로 실천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나서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과연 주님의 이 어려운 시험에 통과할 자 몇이나 될까요?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듯이,
하느님 아닌 재물에 마음 집착해 있으면 영원한 생명의 구원은 요원합니다.
 
어떻게 하면 세상 속에 살면서도 초월적 차원을 잃지 않고,
하느님과의 연결을 강화하며 살 수 있을까요?

무소유의 정신입니다.
 
매일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한 하느님 사랑의 체험이
우리를 이탈의 정신으로 살게 합니다.
 
하느님과의 연결을 강화하여
영원한 생명의 삶을 살게 하시는 성체성사의 주님이십니다.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