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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 분수, 제자리를 아는 지혜" --- 2007.8.22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7-08-22 조회수670 추천수8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7.8.22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판관9,6-15 마태20,1-16

                                              
 
 
 
"제 분수, 제자리를 아는 지혜"
 


남 판단하는 것이 가장 쉽고
자기를 아는 게 가장 어렵다고 합니다.

자기를 모르는 사람은 알려줘도 모를 뿐 아니라
오히려 반발까지 초래할 수 있으니 참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니 자기의 한계와 부족함을 잘 알아
언제나 배우는 자세로
이웃의 충고나 조언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사람이 진정 지혜로운 자요,
하느님을 향해 끊임없이 성장, 성숙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은 다릅니다.

하느님은 너그러우시고 자애로우십니다.
 
태평양 깊이의 하느님의 지혜라면
시냇물 깊이의 인간의 지혜요,
하늘 넓이의 무한한 하느님 사랑이라면
자그만 호수 넓이의 인간의 사랑입니다.
 
부단히 지혜를 깊이 하여,
사랑을 확장하여
하느님의 지혜를, 하느님의 사랑을 닮아가는 게
우리의 평생 과제입니다.

결코
인간의 이성과 합리의 잣대로,
실용성의 잣대로,
분배 정의의 잣대로 잴 수 있는 하느님의 사랑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잣대는 은총의 잣대이자 사랑의 잣대입니다.
 
이걸 모를 때 본의 아니게 월권하여 하느님의 영역을 침범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에서
아홉시에 온자,
열두시에 온자,
오후 세시에 온자,
오후 다섯 시에 온자 모두가 똑같이 한 데나리온 품삯을 받는 것,
우리 인간의 정상적 사고로는 너무나 불합리하고 불공평합니다.
 
먼저 온 자들의 불평에 충분히 공감합니다.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이게 바로 편협하고 옹졸한 인간의 생각입니다.
 
여기서 벗어날 사람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으로 상징되는 포도밭 주인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사람의 잣대와 하느님의 잣대는 완전히 차원이 다릅니다.
하느님의 잣대는 이해관계의 잣대가 아니라,
무사(無私)한 사랑의 잣대입니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내 것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바로 이게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불평하던 옹졸한 일꾼들,
꼭 자비로운 아버지의 비유에 나오는 큰 아들을 닮았습니다.
 
이 말씀 듣고 불평하던 이들의 반응이 궁금합니다만,
진정 참 하느님을 찾는 이들이라면
즉시 회개하여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를 깨달았을 것입니다.
 
하느님 마음을 닮아
자신들의 옹졸하고 편협한 마음을 깊고 넓게 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이 말씀 우리 모두에게 평생 화두 같은 말씀입니다.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이 말 전에,
이미 자비로운 포도밭 주인의 마음을 헤아렸다면
비교로 인한 불평 없이
자신의 몫에 감사하며 돌아갔을 것입니다.
 
잠시 무지와 욕심의 유혹에 빠져
제자리를, 제 분수를 잃고 불평했던 사람들 같습니다.

1독서에서 요탐이 들려주는 예화가 의미심장합니다.
 
나무들의 왕이 되어달라는 유혹에 세 나무들의 지혜로운 답변입니다.

“신들과 사람들을 영광스럽게 하는 이 풍성한 기름을 포기하고,
  다른 나무들 위로 가서 흔들거린단 말이오.”

제분수를 알아 제자리에 충실하겠다는 올리브 나무입니다.

“이 달콤한, 이 맛있는 과일을 포기하고,
  다른 나무들 위로 가서 흔들거리란 말인가?”

역시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제자리를 고수하는 무화과나무입니다.

“신들과 사람들을 흥겹게 하는 이 포도주를 포기하고,
  다른 나무들 위로 가서 흔들거리란 말인가?”

자기를 아는 겸손한 포도나무,
제 분수에 충실하겠다며 유혹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결국 문제투성이 쓸모없는 가시나무가
제자리를 떠나 폭정을 행사하는 왕이 되는 데
바로 아비멜렉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사실 오늘날도 이런 백해무익한 정치지도자들 많습니다.

제분수를 알아
제자리에 충실한 사람들,
남을 부러워하지도 않고
비교로 인해 불평, 불만하지도 않습니다.
 
대부분 불평을 일삼는 이들
십중팔구는 제분수를 몰라 제자리에 불충실한 이들입니다.
 
사실 제자리에 충실하면 비교로 인해 불평하거나 남 부러워할 시간도 없습니다.
 
단 하나 비교한다면 하느님의 자비의 거울에 나를 비춰보며 비교하는 것입니다.
 
하여
내 사랑, 내 생각을
하느님의 사랑, 하느님의 생각으로 계속 확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바로 매일의 거룩한 이 미사를 통한 은총이기도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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